‘비극’ 앞에서 정치가 할 일

2014.08.24 20:39 입력 2014.08.24 22:16 수정
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세월호 사고 자체도 비극이지만 특별법을 둘러싼 지금의 사태 역시 또 다른 비극이 아닐까 한다. 사회로부터 위로와 치료, 보호를 받아야 할 유가족이 사태의 당사자-해결자-입법자의 역할까지 요구받게 된 현실을 지켜보는 일은 괴롭다. 비극과 맞서 싸우면서 민주정치의 힘도 보여주고 공동체의 덕목도 다져가면서 더 나은 사회로의 전망을 발전시킬 수는 없었을까. 인간의 삶에서 슬픔과 고통은 피할 수 없다지만, 그럼에도 좌절을 넘어 더 단단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될 수는 없었을까. 꼭 이렇게까지 될 일이었을까.

[정동칼럼]‘비극’ 앞에서 정치가 할 일

필자는 세월호 사고가 ‘합의 쟁점’으로 다뤄졌으면 했다. 이념이나 계층, 세대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가져야 할 ‘갈등 쟁점’이 아니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갈등 쟁점은 선거 경쟁을 통해서건 아니면 여론 동원을 통해서건 정당 간 다툼을 필요로 한다. 반면 합의 쟁점이란 정당들 사이에 ‘공동의 통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안을 말한다. 어느 특정 정당도 쟁점의 점유권을 두고 배타적인 영향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대안을 형성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갈등 쟁점의 경우는 정당 간 경쟁의 결과에 따라 사후적으로 해결책을 결정하는 것에 비해, 합의 쟁점의 경우는 정당 간 경쟁 이전에 처음부터 조정 방법으로 공동의 해결책을 만들어간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합의 쟁점이냐 갈등 쟁점이냐가 고정적으로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합의 쟁점이 갈등 쟁점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정당 간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수결로 수렴되는 지점을 최선의 공익으로 본다면 모든 사안을 갈등 쟁점으로 다룰 수 있다. 그럴 경우 정치의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반면 갈등 쟁점으로 다뤄질 경우 사회통합을 크게 위협할 사안이라고 본다면, 정치가 갖는 조정자 역할을 통해 합의 쟁점으로 전환시켜 공익적 결과를 의식적으로 창출하려 할 수도 있다. 다소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필자가 말하려는 바는 단순하다. 정치란 갈등과 통합의 변증법을 다루는 기예를 말한다. 모든 사안이 다 다툼의 소재가 될 수는 없다. 갈등 쟁점으로 다뤄져야 할 사안이 인위적으로 합의 쟁점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역으로 합의 쟁점이 되어야 할 사안이 갈등 쟁점이 될 때 그 부작용도 만만찮다.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면, 어떤 경우든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합의 쟁점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사건 초기 실종자 가족을 도우러 온 사람들 가운데 “정치인이 있다”고 공격한 한 종편 채널의 보도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정치인이 그럼 달리 어디에 있어야 할까. 더 안타까운 것은 다른 언론의 역할도 별다르지 않았거니와, 해당 정당은 문제가 된 사람을 영구 제명함으로써 세월호 사고를 순수 비정치적 의제로 만드는 데 공조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정당 간 공동 대응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그 기초 위에서 시민사회의 참여를 결합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정치를 배제한다고 사안이 순수해지지는 않는다. 큰 사건일수록 더 그렇다. 국가와 가족 사이에 있어야 할 정치가 그 외부에서 제3자로 머물게 되면, 갈등은 조정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가게 된다. 여야 지지자 사이 나아가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사태의 해석을 두고 전개될 적대적 갈등을 누가 조정할 수 있겠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여론은 분열되기 시작했고, 구원파로 책임을 돌리려는 집권파의 노력이 이어졌으며, 지방선거를 거치면서는 여느 파당적 갈등 쟁점과 다르지 않은 사안이 되고, 집권당의 ‘경제 살리기’와 야당의 ‘세월호 책임론’이 맞붙은 보궐선거에 이르러서는 세월호 사태의 미래가 선거 승패에 딸린 문제로 치환되어 버린 그간의 상황 전개 과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도 남는다. 지금에 와서 어찌해야 할지 답답한 것은 필자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에라도 세월호 사태를 우리 사회 전체의 지혜를 모아야 할 합의 쟁점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태를 그렇게 바꾸는 것도 결국 정치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가능할 텐데, 여야 어디에서든 그런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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