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야에서 일자리 대박 나려면

2015.03.29 20:39 입력 2015.03.29 20:40 수정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취업 잘된다는 과대광고에 속았습니다.” 필자의 수화기 너머로 A씨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재수 시절에 취업 걱정 없다는 말을 듣고, 지방 전문대 임상병리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졸업 즈음에 산산조각이 났다. 졸업 동기의 절반 정도가 병·의원에 취직했는데, 이 중 번듯한 대형 병원에 취직한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고, 자신을 포함한 대다수는 월급이 200만원에도 못 미치는 계약직으로 중소 병·의원에 취직했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 동기의 나머지 절반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공과는 상관없는 진로를 선택했다. 그는 얼마 전 병원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더 있어도 지금보다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아서다. 그는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의료기사 관련 학과를 계속 늘리고, 대학은 등록금 수입만 올린다. 학생들만 등골 빠진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동칼럼]의료분야에서 일자리 대박 나려면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 해에만 1만6000여명의 의료기사가 배출되었지만, 병·의원, 보건소 등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6000개도 안 된다. 단독 개원이 가능한 안경사나 타 분야 취업을 감안해도 취업률은 50%에도 못 미친다. 간호사는 그나마 취업이 잘되는 편이지만, 중소 병·의원에 신규 취업한 간호사 중에서 1년 후까지 남아 있는 수는 3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박봉에다 일도 고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의료가 일자리 동력 산업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참여정부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의료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핵심 국정과제였다. 그러나 새로운 일자리는 고사하고, 당장 배출되는 인력조차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그간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의료관광, 병원수출,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병원의 영리적 부대사업 확대 등 온갖 의료 정책의 추진 근거가 일자리였다. 심지어는 일자리 창출과는 아무 상관없고, 오히려 악화시킬 영리법인병원 도입도 일자리를 명분으로 추진되었다.

국내 병·의원을 찾는 해외 환자가 꾸준히 늘고, 한국 의료가 해외로 수출되는 것은 뿌듯한 소식이다. 한국 의료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간의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지니 더 반갑다. 국민의 다양한 건강 욕구를 충족시키는 서비스 직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의료 분야 일자리의 몸통은 전체 의료 인력의 95%를 고용하고 있는 병·의원이다. 여기서 일자리의 숨통이 트여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병·의원은 일자리에 관한 한, 중증 불임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 병원은 한 병상당 종사자 수가 0.5명에 불과한 데 반해, 다른 국가들의 평균은 3.7명, 한국의 7.6배에 달한다. 미국과 영국은 6.4명, 7.6명이나 된다. 만약, 한국 병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을 따라간다면, 산술적으로 185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선진국에서 의료가 일자리 동력 산업이 된 이유는 이처럼 병·의원이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여러 국책, 민간연구소의 주장처럼 규제 완화를 통한 병·의원 밖의 다양한 유관 일자리가 미친 영향은 크지 않다.

한국 병·의원이 일자리를 못 만드는 첫째 원인은 선진국에서는 기본 입원서비스로 제공하는 환자 간병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더 중요한 둘째 원인은 건강보험이 병·의원에 돈을 주는 방식에 있다. 한국 건강보험은 사람을 줄이고 기계를 늘리면 병·의원이 이득을 얻도록 돈을 주고 있다. 선진국은 이와 반대다. 건강보험이 병·의원에 주는 돈에서 사람값에 해당하는 진찰료나 수술료 등은 박하다. 원가에도 못 미친다. 이에 반해 기계값에 해당하는 각종 검사료는 상대적으로 후하다. 병·의원 입장에서 더 많은 인력, 더 좋은 인력을 쓸 이유가 없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기계 한 대 더 들이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술 혁신의 속도가 그 어떤 산업 분야보다 빠른 곳이 의료이고, 이 때문에 새로운 기계가 일자리를 앗아갈 위험이 상존하는데, 돈을 주는 방식까지 이렇게 해 놓으니 일자리가 생겨날 재간이 없다.

의료는 일자리 대박을 낼 수 있는 몇 안 남은 유망산업이다. 변죽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몸통을 건드려야 하고, 애드벌룬만 띄울 것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난데없이 단두대로 규제의 목을 내려치겠다고 겁박할 일도 아니다. 이제껏 그렇게 해서, 아직도 의료에서 일자리 대박이 안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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