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에 숨은 악마

2015.10.29 20:33 입력 2015.10.29 20:42 수정
김준형 | 한동대 교수·정치학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은 자주 회자되는 표현이다. 중요한 일에서 실수는 작은 것에서 나온다거나 또는 합의나 계약에서 세부조항에 함정이 숨어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정형화시키고 싶지 않지만 한국 사람들이 디테일에 다소 약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숨어 있는 디테일을 살피는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동칼럼]디테일에 숨은 악마

계약할 때 너무 따지면 깨질 수도 있고, 분위기도 어색해질까봐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계약조항을 꼼꼼히 살피는 것을 상대가 자신을 불신하는 행위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래서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들면서도 상대의 양심과 호의에 맡기게 된다. 그런데 상대의 호의에 기댈 것이었다면 애초에 계약 자체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일반 대중의 삶만이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인 외교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는데, 국익이 달린 일에서 이런 일처리는 훨씬 심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는 특히 심하다. 그중에서도 차기 전투기 FX 사업은 대표적 사례다.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전투기 40대를 7조3000억원의 거금을 들여 산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핵심기술 이전에 관해 조건을 확실하게 하지 않고 얼렁뚱땅 계약해버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점점 베일을 벗는 부분은 디테일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실수보다는 알고도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안보 공포를 자극하면서 무조건 무기를 사재기해온 국방부의 국익 훼손 행위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긴 하다.

일본의 집단자위권에 관한 정부의 행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테일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일본이 한반도를 재침략할 수는 있는가 또는 없는가의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논쟁만 한다. 미국과 일본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기 위해 안보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기로 한 것은 2013년 10월 양국의 국방외교회담 2+2였다. 그리고 확정·발표한 것이 올해 4월 아베의 방미 때였다. 무려 18개월 동안 한국 정부는 우리의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 개입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했고, 이를 명문화시킬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에는 주변국들의 동의를 얻겠다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고 넘어갔다.

한·일 국방장관회의에서 여지없이 문제는 불거졌다. 북한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운운하며 일본은 개입의 여지를 남겼다. 한국 국방장관의 비공개 부탁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공개해버렸다. 우리는 또 디테일에서 허술하게 당했다. 미·일은 당연히 여지를 남길수록 운신하기 좋기에 가능한 한 제한을 두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우리는 함정과 덫에 대비한 안전장치들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 아시아의 군사전략을 일본에 아웃소싱하고, 미·일 동맹의 통합성과 공동작전 수행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어디까지가 일본이고, 어디까지가 미국인지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게다가 우리는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다.

일본의 자신감이 예사롭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회의 이후 일본과 정상회담을 할 것을 제의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관방장관의 입을 통해 제의를 받은 바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아베 정부는 올해 목표한 바를 다 이루었다. 안보법과 미·일 안보 가이드라인의 개정을 통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고, 개헌이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과거사 문제도 한국과 중국 정도를 제외하고 아베의 담화 수위에 대한 국제여론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아베는 일본 내 혐한 분위기와 지지층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감안해 더 이상 한국에 저자세 외교를 하지 않겠다는 것 같다. 미국이 든든한 지원군이라는 인식도 물론 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또 우리만 실질적 방안 없이 남의 장단에 춤추는 양상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와 안보는 무능과 거짓 사이의 어떤 지점에 있을 것이다. 비난 수위는 달라지겠지만 어느 쪽이든 국익에 손해를 끼치는 결과는 동일하게 심각하다. 그래도 후자가 나쁜 것은 명약관화다. 악마가 디테일에 숨은 것인데 찾지 못하는 것이라면 무능이겠지만, 사익 또는 정권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내팽개치는 것이라면 숨어든 악마는 바로 그들 자신이 될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 누가 악마인지 알게 되었다. 최소한의 양심과 지각이 있다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최소한 악마라는 소리는 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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