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辯’과 ‘姜辯’이 나올수 없다면

2006.04.03 18:05

〈손동우 논설위원〉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번역되는 로스쿨의 모습이 국내에서도 제법 알려지게 된 것은 20여년전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란 미국 TV드라마가 방영되면서부터가 아닌가 한다. 실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하버드 로스쿨 계약법교수 킹스필드의 엄격한 훈도 아래 미국 전역에서 모인 준재(俊才)들이 법조인의 소양과 자질을 기르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쌓던 장면들이 지금도 떠오르곤 한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미국의 법조인 양성과정과 판례중심의 영미 사법체계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부터 미국식 로스쿨제도가 도입되는 모양이다. 당연히 사법시험도 없어지게 된다. 로스쿨 도입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하나 둘이 아니다. 사법시험합격을 목표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통에 생겨나는 이른바 ‘고시 낭인(浪人)’의 폐해를 막고 한해 수조원으로 추정되는 시험의 시회적 비용을 줄이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던 터였다. 고시학원이나 고시원에서 중요한 법률지식이 습득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순수학문으로서의 법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하게 된 셈이다. 또한 사법시험이라는 ‘단판승부’ 대신 로스쿨에서 충분히 법학교육을 받은 사람 가운데서 일정한 능력과 지식을 측정하는 자격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것이 법조인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한다.

-로스쿨 3년 약 1억원의 부담 -

그러나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은 ‘유전입학(有錢入學) 무전불허(無錢不許)’의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로스쿨 학생들이 1년동안 지불해야할 돈은 등록금과 교재비 등을 합쳐 대략 3천만원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3년 과정을 마치는 데는 1억원이라는 큰 돈이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불타는 향학열을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부유층의 아들딸로 태어나지 않는 한 법조인의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 제2의 ‘노변(盧辯)’과 ‘강변(姜辯)’도 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노변. 노무현 대통령이 고졸출신 인권변호사시절 주위에서 부르던 별명이라고 한다. 통상 변호사들은 자신의 성(姓) 뒤에 ‘변’자가 붙은 별호를 갖게 마련이지만 지명도가 높아지면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지게 된다. 조(趙)씨 성을 가진 수많은 변호사들 가운데서도 ‘조변’하면 고 조영래 변호사를 떠올리듯이. 어쨌거나 노변은 고졸 학력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판사-변호사-국회의원-장관을 거쳐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지금까지의 정치적 공과(功過)와는 별개로 집안배경이나 명문대 졸업장없이 실력과 재능만으로도 뜻한 바를 이룬 ‘코리안 드림’을 몸소 보여줬다는 점에서 노변의 성취는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강변. 내가 몸담고 있는 경향신문에서 10여년 기자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친정’의 감사로서, 언론개혁단체의 갖가지 법률자문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강병국 변호사를 주위의 선후배들은 이렇게 부른다. 나는 강변이 언론인으로서도 뛰어났지만 법조인의 자질과 재능을 좀더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강변도 로스쿨 체제 아래서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기자를 그만둔 뒤 퇴직금을 몽땅 학비로 털어 넣는 무책임한 가장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로서의 폭넓은 교양과, 기자생활 10년의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된 변호사로서의 활약상도 사법시험 체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든다.

-경제력 때문에 차별받지 않게-

고졸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에서 고졸 법조인의 출현이 원천봉쇄되는 현실은 우울한 아이러니다. 더구나 로스쿨 도입은 이른바 사법개혁조처의 하나로 시행되는 것이다. 어차피 도입할 로스쿨이라면 장학금 수혜의 폭을 넓히든지, 국가가 지원을 하든지 간에 재능과 노력만으로도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길은 터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국민은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1조1항에 “단, 로스쿨 입학시 경제력의 차이로 발생하는 차별은 예외로 한다”는 대목을 추가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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