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에 웃지않는 정치문화

2006.03.20 17:54

〈송충식/ 논설위원〉

작심하고 농담 한번 했다가 아무 반응이 없는 것처럼 민망스러운 일도 없다. 기발한 유머라도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유머에 익숙지 않으면 분위기만 썰렁해지기 일쑤다. 임어당(林語堂)의 말대로 유머감각은 문화생활의 내용을 변화시킬 중요한 요소다. 한마디의 유머와 웃음이 숨막히는 인생에 활로를 열어줄 수도 있다.

미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는 기자들에게 자신을 ‘위기의 주부’라고 말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인기드라마에 빗댄 농담이지만 실은 몇 차례의 전략회의와 리허설 등 치밀한 사전 각본에 의해 준비된 유머였다. “남편은 걸핏하면 크로퍼드로 달려가지만 사실 목장 일은 잘 모른다. 한번은 말젖을 짜겠다며 수컷과 씨름했다”며 좌중을 뒤집어지게 한 농담도 마찬가지다. 농담까지 기획하는 ‘이미지 정치’의 실상을 보여주는 일화지만, 그만큼 유머의 정치적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윈스턴 처칠의 촌철살인 압권-

정치인의 유머는 삭막한 정치 세계에서 윤활유 같은 구실을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촌철살인의 메시지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고, 정치적 곤경(困境)을 타개하는 묘약이 될 수도 있다.

유머의 달인을 꼽으라면 단연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다. 정치적 처신이 어려울 때마다 유머로 넘겼던 그는 연설 도중 야당의원들이 소란을 피우자 구약성경 전도서를 인용해 “(어리석은 자는) 가마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아 (헛되도다) 아무렇지 않소”라고 일축했다. 장황한 추궁이 계속되면 “의원께서 정보를 얻기보다 나눠주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고 응수했다. 1984년 미 대선 때 레이건 후보는 경쟁자 먼데일이 “너무 늙지 않았느냐”며 나이를 문제삼자 “나는 너무 젊다거나 경험이 없다는 것을 정치목적에 이용하지 않겠다”고 되받았다.

박정희 정권 당시 신민당 당권투쟁에 나선 유진산은 강경파인 정일형의 공세에 “당나귀(鄭)는 버드나무(柳)에 묶여야 안전한 법이야”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1987년 대선 당시 ‘충청도 무대접’론 등 숱한 재담과 유머를 구사하며 유세를 벌였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특유의 저돌성과 말실수로 유머 이상의 웃음을 선사했다. 향토색 풍기는 유머의 대가였던 이철승 전 의원은 정적인 DJ·YS에 대해 “밤새 불켜 들고 돌아다니다 새벽이면 제집 싸리 문앞에 서있는 사람들”이라고 비유했다.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자신이 ‘서산에 지는 해’라는 주장에 “태양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잔잔한 일몰이다. 서산을 벌겋게 물들이겠다”고 반박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유머감각이 있는 편이다. 그는 해외순방에 나서며 “대한민국의 두 가지 걱정거리는 태풍과 대통령”이라며 자신의 부재중 태풍만 막으면 나라가 조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퍽 재치있는 유머였지만 워낙 대통령의 말이 갈등의 진원지로 인식된 탓인지 ‘대통령이 할 소리냐’는 냉담한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한국정치는 비약적인 변화와 개혁을 이뤘지만 유머 문화는 갈수록 척박해져가는 느낌이다. ‘상대를 망가뜨려야 내가 산다’는 네거티브 정치전략 때문에 경멸과 조소 일색의 ‘저질 유머’만 득세할 뿐, ‘유머의 정치’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듯하다.

-좀 썰렁하다고 면박까지야…-

한국야구팀이 미국을 이겼을 때 “일본과 미국을 자극해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기거나 동북아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는 등의 반어적 축하논평을 낸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이 당 안팎에서 십자포화를 받고는 ‘소변인(笑辨人)’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좀 썰렁한 유머였지만 한번 웃겨보겠다고 튀어본 것을 ‘뭐가 웃기냐’고 면박주고 그 때문에 ‘소변인’마저 포기할 지경이라면 세상이 너무 각박한 게 아니냐는 느낌이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은근한 익살과 해학을 즐겼다. 정치의 세계에서 그런 전통이 되살아날 수만 있다면 정치인과 국민들의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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