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캠프 데이비드의 교훈

2007.06.04 17:58

2·13 합의 이행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처리 문제로 50여일 지체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 시간 내에 BDA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며칠이면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하던 정부 고위 당국자들도 이제는 먼 하늘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쉴 뿐이다.

2·13 합의 이행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곳곳에서 흉흉한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으며 후유증마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주 성과 없이 끝난 남북 장관급회담은 2·13 합의 지체에 따른 후유증의 대표적인 예다. 한국이 지난 4월 평양에서 열린 경추위에서 대북 쌀 지원과 2·13 합의 이행을 연계한 것에 대해 북한도 열차 시범운행에 응한 것을 보면 문제가 이렇게 꼬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흉흉한 소리로는 미국의 인내심 한계론을 들 수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이 ‘판단 잘못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일부 국내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달을 미국이 인내할 수 있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2·13 합의문이 이미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BDA 매달려 ‘2·13’이행 교착-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데 있어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2·13 합의를 본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관련국들이 발상을 전환하면 해법을 찾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러스 밴스(1917~2002)는 1970년대 말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1967년 이스라엘과 중동국가간에 벌어진 이른바 ‘6일 전쟁’의 긴 그림자를 해결했다. 이집트는 자존심을 내세워 전쟁에서 빼앗긴 시나이 반도를 완전히 되찾아야 한다고 고집했으며 이스라엘은 안보를 위해 시나이 반도로부터 절대 철수할 수 없다고 맞섰다. 밴스가 내놓은 해결책은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되 그곳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양측은 이에 동의하고 1979년 미국 대통령 별장이 있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밴스의 지혜를 빌리면 답은 의외로 간단할 듯하다. 현재 관련국들의 입장은 그동안 줄다리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북한은 BDA 자금을 이체받으면 영변 핵시설 폐쇄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이 BDA 이체 문제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북한도 알 것이다. 한국은 영변 핵시설이 폐쇄되면 대북 쌀 지원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관련국들이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만 인정한다면 문제 해결책이 있는 셈이다. 현재 2·13 합의문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각국이 해야 할 일을 초기 단계와 다음 단계로 구분하고 있지만 발상을 전환해 두 단계를 병행해 실시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즉 BDA 계좌 이체와 북핵 시설 폐쇄 조치, 한국의 대북 쌀 지원은 각국이 연계하고 있어 당장 해결 가능성은 낮다. 그렇지만 BDA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 사항들은 저절로 굴러갈 사안들이다. 각국이 BDA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 사항 이행을 위해서도 노력한다면 문제 해결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초기 단계 해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 프로그램 목록 작성을 들 수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이 6자회담 참가국들과 협의를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국도 테러 지원국 지정 및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해제하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두 단계’병행 협상 발상 전환을-

사실 2·13 합의가 지금 진퇴양난에 빠진 데는 어느 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은 베를린 합의에서 BDA 문제 해결을 약속해 놓고도 경우야 어쨌든 지금껏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처음에는 자금 인출을 요구했다가 송금으로 요구 수준을 높여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 중국은 북한이 중국은행 베이징 지점의 계좌를 이용하겠다고 했으나 자국의 이익만 생각해 협조를 거부했다. 한국도 북한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모두들 현재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각국이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고 현 시점에서 가능한 일을 착수한다면 2·13 합의는 새 생명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승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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