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 발목잡는 밥그릇 싸움

2007.06.18 18:31

정보기술(IT) 세계의 특징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소비자의 욕망은 하루하루 변화무쌍하다. 어느 상품, 어떤 서비스가 시장에서 성공하고 실패할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당장이라도 한국 경제를 먹여살릴 기술처럼 떠들썩하던 휴대인터넷(와이브로)이 상용화 1년도 못가 시장의 천덕꾸러기 비슷한 신세로 전락하는가 하면, 다 죽어가는 줄 알았던 IMT-2000이 HSDPA라는 진화된 화상통화 기술을 만나 가입자 100만명을 가볍게 넘어서며 다시 살아나기도 하는 게 IT 세계다.

그야말로 시장은 신기술의 경연장이다. 더 쉽고 더 편리한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술만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살아남을 수 있다. 산업은 우수성이 입증된 기술을 중심으로 변화하며 발전한다. 정부가 개입할 공간은 점점 좁아진다. 시장에서 펼쳐지는 기술의 경연을 일일이 따라가는 것조차 벅찰 지경이다. 경연장 분위기를 북돋워주고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으로 정부 역할을 최소화한다는 ‘열린 마인드’가 요구된다. 섣불리 규제에 나섰다간 낡아빠진 잣대로 앞서가는 기술의 발목을 잡는다는 핀잔을 듣기에 딱 알맞다.

-‘TV+PC’ 잠재력 큰 신기술-

최근 몇 년간 논의만 무성한 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IPTV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IPTV는 말 그대로 인터넷망을 통해 TV 방송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다. TV와 PC의 장점이 녹아있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선택해 볼 수 있고, TV 시청 중 즉석 설문과 같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이 IPTV 또한 서비스를 거듭하면서 진화할 것이라고 보면 끝이 어디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국민에게 지금 당장 이용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다고 해서 국가적으로 하등 나쁠 게 없는 서비스다. 기술적인 준비는 모두 갖춰졌고, 지난해말에는 시범 서비스까지 마쳤다. 세계적으로 576개 사업자가 이미 서비스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IT 강국이라는 우리가 IPTV 서비스를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 정부의 관할권 다툼 때문이다.

올들어 7차까지 열린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는 IPTV를 둘러싼 논의가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 4월 4차 회의에서 의원들은 “IPTV가 방송이냐, 통신이냐”고 물었다. 이에 조창현 방송위원장은 “방송”이라고 대답하고, 노준형 정통부 장관은 “기본적으로 통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맞섰다. 온 세상 사람들이 IPTV는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서비스라고 하는데, 방송위는 여전히 ‘방송’으로, 정통부는 그래도 ‘통신’이라고 고집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부처이기주의 때문에 방송위와 정통부는 합치기로 돼 있으나, 그 두 기관의 수장이 국회 공식석상에서 “IPTV는 내 관할”이라며 으르렁대는 판이니 기구 통합 또한 잘 될 리가 없다. 이들의 한도 끝도 없는 다툼에 지쳤던지 임상규 국무조정실장은 “IPTV의 가장 큰 쟁점은 기관간 관할의 문제”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방송위와 정통부의 밥그릇 싸움이 국민의 IPTV 접근권을 원천 봉쇄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 확인한 셈이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방송위와 정통부에 이런 예를 들어 물어보고 싶다. ‘카메라 달린 휴대폰은 카메라인가, 전화기인가.’ ‘휴대폰을 이용한 모바일 뱅킹은 통신인가, 금융인가.’ 이 역시 개념 정의에 따라 관할권이 달라진다면 해당부처에서 박 터지게 싸울지 모르겠다.

-정부 관할다툼에 올스톱 ‘한심’-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개념 구분을 할 필요를 못느낀다. 카메라든 전화기든, 통신이든 금융이든 필요에 따라 가능한 기능을 꺼내 사용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요즘 시대의 화두인 결합이고, 통합이고, 융합이다. 디지털 분야만이 아니라 학문에서도 벽을 허물고 통합하는 통섭(通攝)이 중요시되는 세상이다. 방송이든 통신이든 국민의 눈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서비스를 두고 서로 ‘내것’이라며 싸우는 것은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국가경제에 해악을 끼칠 뿐이다. 때마침 국회에서 IPTV를 위한 세 가지 법안이 발의된 만큼 이번 기회에 법제화가 이뤄지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우리 국민에게도 IPTV가 어떻게 생긴 서비스인지 알 권리가 있다.

〈이종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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