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함정

2011.08.01 20:34 입력 2011.08.01 21:16 수정
노응근 | 논설위원

서울시가 어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시민단체 등이 법원에 제기한 주민투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오는 24일 투표는 이뤄진다. 주민투표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시의회의 싸움이 아니라 여야 정치권, 나아가 진보와 보수 세력의 대격전으로 확산될 것이다.

무상급식이 단순히 아이들의 먹는 문제 차원을 넘어 복지사회란 가치에 대한 큰 시각차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만큼 어떻게든 승부는 날 것이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수용하면 승부가 10월 이후로 연기될 뿐이다. 민주당이 주민투표 발의 효력 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낸다면 그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어쨌든 서울시 주민투표를 통한 민의 확인 절차는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경향의 눈]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함정

그렇다면 주민투표 사안의 핵심부터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투표 문안은 ‘2014년까지 소득하위 50% 단계적 무상급식’과 ‘2012년까지 초·중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이다. 전자는 오 시장 측, 후자는 시교육청 측 입장이라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전혀 문제가 없는 듯하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오 시장 측에 유리하도록 왜곡됐음이 금방 드러난다. 당초 주민투표가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며 추진된 점을 고려하면 문안은 ‘전면 무상급식 반대’가 돼야 마땅하다. 그게 아니라면 ‘선별적 무상급식’과 ‘보편적 무상급식’으로 압축돼야 한다.

시기는 예산 사정에 따라 조정될 수 있는 만큼 굳이 못박을 필요가 없다. 시기를 굳이 넣는다면 ‘선별적 무상급식 단계적 실시’와 ‘보편적 무상급식 단계적 실시’가 맞다. 이런 문안이면 보편적 무상급식에 극구 반대하지 않는 시민은 굳이 투표장에 갈 이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투표 문안은 ‘단계적’과 ‘전면’이란 용어를 교묘하게 대비시켜 시민의 오인을 꾀하고 있다. 더욱이 시교육청은 전면 무상급식을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관심은 주민투표 결과와 함께 그 뒤의 상황으로 모아진다. 오 시장 측은 여론조사 추이를 볼 때 투표율이 33.3%를 넘어 투표함을 연다면 이길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문제는 오 시장이 이기더라도 싸움의 끝이 아니라는 데 있다.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망국적인 복지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었다고 의기양양해할 것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시작된 초등학교 1~4학년 전면 무상급식은 계속될 것이고, 확대 중단은 오 시장에게 역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편 시장으로서는 더 심한 질곡의 세월을 보낼 것이 뻔하다. 시의회와의 갈등이 더 첨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 시장은 이왕 시의회와 기싸움을 시작한 만큼 이런 점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터다. 시의회가 시와 진행한 무상급식 협상이 결렬되자 무상급식조례를 제정·공포했고, 이에 반발한 오 시장은 시의회와 시정 협의를 중단했다.

오 시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정 협의 중단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안 그러면 4년 내내 ‘식물시장’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나도 시민이 뽑아줬다”는 오 시장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시의회와 그렇게 극단적으로 맞서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그 답은 “무상급식으로 상징되는 복지 포퓰리즘이야말로 한나라당이 타협해서는 안될 가치”라는 그의 주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장이라기보다 잠재적인 대권주자로서의 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서 이기면 민주당의 복지 구상은 일단 타격을 받을 것이다. 무상급식이 서울시민에게 거부된다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는 폭넓은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왜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여야 하는지 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설득하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 진짜 승부는 내년 총선, 대선에서 날 것이 아닌가. 그렇더라도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33.3%를 넘지 않도록 불참 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는 처지는 안쓰럽기만 하다.

반대로 오 시장이 지면 시장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민투표에 따른 혼란과 비용을 모두 책임지라는 질타가 쏟아질 것이 뻔하다. 오 시장은 차라리 주민투표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가치를 주창하며 도전한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이미지는 남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장기적으로 보면 오 시장에게는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도 있다. 정치판의 승부가 꼭 한 판으로 결정나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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