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로 교육을 바꾸겠다고?

2017.01.18 20:52 입력 2017.01.18 21:01 수정

[경향의 눈]입시로 교육을 바꾸겠다고?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입시제도를 또 바꿀 모양이다. 지금의 입시제도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제해야 한다. 시점도 좋지 않다. 입시 개편은 정권 교체기에 얼렁뚱땅할 일이 아니다. 꼭 바꿔야 한다면 책임 소재라도 명확히 가릴 수 있도록 새 정권이 들어선 뒤에 해야 한다. 입시는 휘발성과 폭발력이 엄청나다. 잘못 건드리면 이번엔 교육부가 당할 수 있다. 안철수·박원순 같은 대선 주자들은 교육부 폐지론을 얘기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누리과정 예산 시·도교육청에 떠넘기기,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의 ‘개·돼지’ 발언 등으로 교육부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도 크다.

입시는 기본적으로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한 사람이 이득을 보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본다. 냉혹하지만 승자와 패자를 가려야 한다. 1등부터 50만등까지 줄도 세워야 한다. 예비고사든 학력고사든 지금의 수능이든 이 같은 입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 시험의 횟수, 방식, 과목, 난이도, 원점수·표준점수 등의 조합을 추가해도 마찬가지이다. 해방 이후 70년간 우리는 입시에 관한 한 모든 시도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체득한 결론은 하나, 입시로는 교육이나 사회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입시를 바꾸면 눈에 보이는 몇 가지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만 그만큼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내신 반영 비율을 올리면 학교 교육이 중시되고 교사 권위가 살아날지 모르지만 교실은 대입 전쟁터로 변한다. 수능 비중을 높이면 교내 경쟁은 줄지만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좌우되는 문제가 재발한다. 질량 불변의 법칙처럼 어느 것을 택하든 입시 경쟁과 입시 폐해의 총량은 달라지지 않는다. 수능과 교육방송(EBS) 교재 연계 정책도 마찬가지다. 연계율을 높이면 수험생 부담이 줄지만 일선 학교의 수업이 획일적인 EBS 교재 풀이로 전락한다. 연계율을 낮추면 그 반대다. 결론은 제로섬이다. 수험생들의 부담과 경쟁을 완화하는 것이 최선인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 구조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해답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만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특히나 요즘은 입시 개편 논의를 사교육계가 주도한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됐다. 수능으로 먹고사는 대형 학원들은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이 날조된 학생부에 기반을 둔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학종 서비스 전문 소규모 학원들은 수능의 문제점을 강조한다. 입시 개선책을 논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기들 밥그릇 싸움이다. 사교육업자들은 언제부턴가 입시 전문가로도 불린다. 학교나 교사보다 늘 한발 앞서고, 입시 당국 머리 위에서 논다. 정부의 입시안이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서울 대치동과 목동 학원가는 이미 ‘문·이과 통합 수능’ 마케팅에 돌입했다.

교육부는 오는 5월까지 수능 개편 등 입시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확정되면 올해 중3이 되는 학생들부터 적용된다.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 후속조치라고 설명했다. 교육과정을 바꿨으니 평가도 그에 맞춰 바꿔야 한다는 논리다. 개정 교육과정은 융합형 인재 육성이 목적이다. 고교에서 문·이과 구분 없이 국어·수학·영어·통합사회·통합과학·한국사·과학탐구실험 등 7개 과목을 공통으로 가르치는 것이 핵심이다. 학원가는 4년 뒤 수능에서 문·이과생 모두 통합사회·통합과학 과목을 치르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도 학원가 예측이 맞을 것이다.

입시가 바뀌면 학생과 학부모는 혼란스럽다. 수험생들의 부담이나 입시 경쟁은 줄지 않는다. 반면 사교육시장엔 ‘블루 오션’이 열리고 활력이 돈다. 그렇잖아도 낮은 교육부 신뢰도는 더욱 추락한다. 그런데도 정권은 입시 개편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왜일까. 전직 교육부 관료는 “잘 고치기만 하면 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돈도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입시는 사람들의 불만이 늘 많다. 복지 정책은 작은 것에도 수백억·수천억원이 들지만 입시 정책은 세금을 더 걷을 필요도, 예산 당국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말짱 도루묵이 될 게 뻔한데도 대통령이나 장관이 입시 개편의 신기루를 좇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입시의 본령은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학생이 원하는 대학·학과에 가게 하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려면 저소득층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 정도다. 사교육을 줄이려면 학교에서 교사들이 좀 더 열심히 가르치게 해야 한다. 인재를 양성하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런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입시를 약간 손보는 것으로 양극화를 완화하고, 사교육을 줄이며, 대한민국에 필요한 미래 인재를 길러내겠다고? 이건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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