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속 ‘공주님’

2015.01.18 20:45 입력 2015.01.18 20:47 수정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을 ‘공주의 귀환’으로 묘사했다. ‘박근혜 공주가 파리에 다시 온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셰익스피어 소설 속 인물과 같은 운명을 가진 후계자”로 매김했다. 부모를 흉탄에 잃고 은둔의 17년을 견뎌내 마침내 권좌에 오른 삶의 여정을 부왕(父王)의 복수를 위해 걸었던 ‘햄릿’의 길에 비유한 것이다. 39년 만에 프랑스를 찾은 박 대통령에게 바친 일종의 문학적 헌사였다.

[아침을 열며]유리벽 속 ‘공주님’

하지만 당시 그들의 ‘왕조’적 묘사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들 인식 속에서 한국과 그 대통령은 여전히 1970년대에 뿌리를 둔 것 같은 마뜩잖음 때문이었다. 조금은 국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 걸렸다. 프랑스 언론의 이 같은 프리즘은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복고(復古)’적 아우라에 싸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1년여 지난 지금 프랑스 언론들의 ‘왕조적 헌사’는 예언이 된 것 같다. 청와대라는 무대 위에선 ‘십상시’로 상징되는 암투 드라마가 연일 ‘파문’을 그리고 있다. 왕조시절 ‘환관 정치’를 연상시키는 ‘문고리 권력’은 주요 등장인물이다. 가깝게는 40여년 전 ‘유신’, 멀게는 2000여년 전 ‘십상시’까지 과거의 언어들이 장식처럼 무대(청와대) 위에 걸렸다.

근심에 젖은 주인공은 지난 12일 신년 회견에서 암투 드라마를 두고 “터무니없는 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고 일갈했다. 암투 배경이 된 비선에 대해선 “답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바보 같은 짓”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보기 드문 꾸짖음도 들렸다. 세상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을 요구하는 비서실장을 향해선 “드물게 사심 없는 분”이라고 했다. ‘사심-충성심’의 이분법이 사람을 쓰는 기준이다. 특히 ‘드물게’란 말 속에선 ‘믿을 사람이 없다’는 1인 권력의 고독도 느껴진다.

실상 지금 청와대의 모습은 ‘유리벽’에 둘러싸인 외딴 성(城)과 같다. 유리벽은 투명하기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유리벽 속 그들은 그 벽에 부딪쳐 피를 흘리기 전까지는 알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민심은 유리벽을 통해 굴절된 후에야 다가갈 수 있다.

관객들은 ‘탄식’한다. ‘비선 의혹’부터 ‘항명·수첩 파동’까지 청와대를 둘러싼 일련의 파동에 “그 어떤 막장 드라마가 이보다 흥미진진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그저 농담만은 아니다. 그 속엔 설정(구도)이 있고, 갈등이 있으며, 음모의 향기도 피어난다. 특히 청와대발 권력 파동들을 보며 사람들은 저마다 한두 가지씩의 ‘분노’를 읽는 것 같다. 최근 만난 어느 공무원은 유진룡 전 문화부 장관의 ‘해외출장 경질’에 분노했다. 어느 기자는 통합진보당 해산에 “그들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유신’이 생각난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신년 회견을 보며 “절벽”이라고 탄식했다. 이런 분노들이 마음속에서 하나둘씩 늘어갈 때 그만큼 불신의 유리감옥은 더 단단하게 청와대를 옥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1월 한 심포지엄에서 한국 정치를 ‘퇴행과 혼란’으로 규정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승자연합을 대표하고, 그들 이익을 우선 실현함과 아울러 그것을 사회전체 일반이익으로 정의해 부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유리벽 뒤 ‘지지층 정치’를 퇴행과 혼란의 중요한 한 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청와대는 그들을 안온하게 감싼다고 믿는 유리벽 너머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국정이 어떻게 흔들리고, 비틀어지고 있는지, 민심은 그것을 어떻게 싸늘하게 보는지 그들은 모른다.

신년 회견 후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민심은 청와대에 ‘절벽 같은 절망을 절감’하는 듯하다. 철옹성 같던 국정 지지율은 여기저기서 허물어지는 굉음이 들린다. 특히 지난 16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나타난 박근혜 정부의 충실한 지지층이던 ‘50대와 TK(대구·경북)’의 이반이 뼈아프다. 이들에게서도 부정평가가 처음으로 긍정평가를 앞질렀다. 이들 지역·세대의 ‘박정희 왕조’에 대한 부채의식과 막연한 자부심도 이제 희미해지는 듯하다.

청와대는 그들이 대선에서 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처럼 다시 고급 ‘정치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통합일 수도, 통일일 수도, 심지어 국가혁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출발은 유리벽 속 자신들만의 언어가 아닌 유리벽 밖 ‘그들’의 ‘정치 의식’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상식은 열여덟 나이에 얻은 모든 편견들의 집합체다.” 박 대통령이 즐겨 쓰는 ‘상식·원칙·정상화’의 유리벽 속 언어가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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