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법’을 만들어라

2015.01.25 21:01 입력 2015.01.25 21:37 수정
최우규 산업부장

예전에 모직 반코트를 입고 다녔다. 그러다 좀더 어른스러워 보이는 ‘바바리’를 처음 산 게 20년 전이다. 패션의 ‘ㅍ’자도 모르던 터라 무릎까지 덮이고 어느 정도 방수가 되는 그 국산 코트를 바바리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바바리가 실제로는 ‘버버리(Burberry)’라는 특정상표이고, 그런 유의 옷은 ‘트렌치코트, 레인코트’라고 부른다는 것은 수년 뒤에나 알게 됐다.

[아침을 열며]‘이완구법’을 만들어라

영국 패션 브랜드 버버리는 1856년 토머스 버버리가 설립했다. 야외 활동에 적합한 소재인 개버딘(방수가 되는 면)으로 만든 비옷(레인코트)으로 유명해졌다. 1차 대전 때 ‘참호(트렌치)’전에 입는 장교용 트렌치코트도 버버리가 납품했다. 레인코트 형태에 야간에 덮고 잘 수 있게 어깨 덮개가 추가되고, 수류탄이나 지도 등을 걸 수 있도록 D자형 고리를 달았다.

트렌치코트는 전후 민간에서 인기를 얻었다. 멋쟁이 국왕 에드워드 7세는 늘 “내 바바리를 가져오게”라고 했단다. 그렇게 ‘바바리 = 트렌치코트’가 됐다.

영국 제품 중 이런 것이 또 있다. 고급 스피커 ‘타노이(Tannoy)’다. 가이 R 파운틴이 1926년 설립한 타노이는 그 명성에 힘입어 보통명사와 동사로 웹스터 사전에 올랐다. 명사는 ‘공공 음향 재생 시스템 (Public Address System)’이고, 동사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압도적인 명성과 전통을 갖는 것은 모든 업체의 꿈일 것이다. 소위 ‘짚차’라는 말은 완성차 업체 크라이슬러의 ‘지프(Jeep)’에서 나왔다. 2차 대전 때 모든 종류의 지형에서 운용이 가능하도록 만든 군용 차량으로, 네 바퀴가 구동하는 방식이다. 이름을 ‘다용도’라는 뜻의 ‘제너럴 퍼포즈(General Purpose)’ 발음에서 따왔다고 한다.

건설현장에서 굴착 작업에 쓰는 중장기 ‘포클레인’은 프랑스 업체 ‘Poclain’이고, 쇠침을 박아 종이를 묶는 지철기(紙綴器) ‘호치키스’도 상표 ‘E. H. Hotchkiss’다.

이젠 물품의 종류가 폭증하고, 경쟁도 치열지면서 특정 제품, 상표가 보통명사 반열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구글’은 치열한 인터넷 검색 엔진 간 경쟁을 뚫고 보통명사화했다. 2006년 메리엄 웹스터 사전 및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동사로 등재된 것이다. ‘구글을 이용하여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다’라는 뜻이다.

인물 중에는 어떨까. 위인, 영웅이 아닌 이 중에도 그런 위상을 가진 이들이 있다. 미국 인권운동가 로자 파크스는 1955년 12월1일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운행되던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이는 흑인 민권운동을 촉발시켰고, 1년 뒤 버스 안 인종분리 정책은 폐지됐다. 파크스는 인종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인 셈이다.

한국에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안철수현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개인 안철수씨가 아니라, 참신하고 깨끗한 정치인으로서 ‘안철수’를 유권자들이 정치의 장으로 소환한 것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보통명사처럼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그는 2004년 1월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배수진을 친 뒤 정치관계법 개정을 주도했다.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금품·향응 50배 과태료 등을 도입했다. 이들 법에는 정당법 등 실제 이름이 있지만, ‘오세훈법’으로 기억된다. 이 법은 돈 정치를 크게 줄이는 계기가 됐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변호사는 ‘김영란법’ 제정을 주도해왔다. 바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 금품·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법이 시행되면 공직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마침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무총리에 지명됐다. 그는 “대통령에게 쓴소리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총리직을 쓴소리 하는 자리로 한계 지을 일이 아니다.

대신 총리직을 걸고 ‘이완구법’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든, 보편적 복지이든, 부패방지든, 사회적 대타협이든 우리 사회 일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 일반을 위한 법 말이다. “ ‘이완구법’ 덕분에 한국이 ○○○가 됐다”는 말이 ‘타노이’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게 총리직 이후 행보 때 ‘충청도 대망론’ 같은 정치공학을 내세우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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