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경제는 다시 오지 않는다

2019.06.23 20:39 입력 2019.06.23 20:41 수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 경제는 ‘마법의 경제(magic economy)’라 불린다. 1947년부터 1973년까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4%다. 얼핏 그리 훌륭한 성적 같아 보이지 않지만 연평균이라는 게 무섭다. ‘72의 법칙(매년 r%로 증가할 경우 약 72/r년 후에는 2배가 된다는 복리의 효과)’으로 계산하면 20여년 만에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두 배로 불어난 엄청난 성장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의 희망 속에 살던 시절이다. 그 마법의 경제가 1973년 막을 내렸다. 오일쇼크가 결정타다. 미국 경제는 1974년과 1975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추락한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도 함께 치솟으며 미국인들은 경제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침을 열며]마법의 경제는 다시 오지 않는다

당시 힘겨웠던 경제 상황 속에서 탄생한 경제 이론이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이다. 세금을 낮추고, 정부지출은 줄이고, 규제를 풀어 경제를 살린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보수 일간지 ‘월 스트리트 저널’을 중심으로 주창되던 이 이론은 사실 진보는 물론, 정통보수주의 경제학자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와 결합하면서 강력한 힘을 얻는다. 로널드 레이건은 이 이론을 내세워 1980년 미 대선에서 승리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레이거노믹스’가 펼쳐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시절 주창한 ‘줄푸세(세금과 정부지출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와 비슷하다.

한국도 고도성장이 이어지던 1970~1980년대가 ‘마법의 경제’ 시기였다면, 요즘 상황은 40년 전 미국과 많이 닮았다. 성장, 고용, 투자 등 경제지표가 악화되면서 레이거노믹스나 줄푸세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보수언론과 보수 정치권이 결합돼 추진된다는 점도 40년 전 미국과 비슷하다. 보수언론은 연일 ‘세금폭탄’ ‘규제공화국’을 비판하고, 자유한국당은 경제를 살리는 정책 대안을 내놓겠다며 ‘2020 경제대전환위원회’를 출범시켜 화답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도 유사하다. 40년 전 미국인들이나 요즘의 한국인들이나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살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속에 살고 있다. 경제가 어렵고,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시절에는 경제를 살린다는 장밋빛 청사진에 혹하기가 쉽다. 그것이 오래된 유행가처럼 수십년 동안 반복되는 얘기라 할지라도.

레이거노믹스나 줄푸세는 장밋빛 미래로 이어졌을까.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 경제는 성장률이 회복되고, 집권 후반기에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도 완화되긴 했다. 하지만 세금 감면으로 인해 미국 역사상 최초로 비 전쟁기간 중의 재정적자가 발생했고, 이후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무엇보다 이때부터 소득 양극화가 본격화돼 이제는 미국 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돼 버렸다. 줄푸세의 효과는 이를 기반으로 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과연 얼마나 경제를 살리고,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했는지 되새겨보면 짐작할 수 있다.

경제는 정답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어쩌면 정답이 없을 수도 있다. 경제정책의 기본 원칙이 효율성과 공평성의 추구인데,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두느냐에 따라 정책의 결과와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효율성은 보수가 선호하고 공평성은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라고들 하지만 칼로 무베기 식으로 나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경제정책을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경제를 아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내 주장만 정답이고, 내 생각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소리치는 것은 자칫 오만이나 사기, 또는 무지 중 하나에 해당될 공산이 크다. 이제 경제를 불같이 살리는 마법은 전설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우화가 된 시대다.

그래서 경제는 쉽게 생각하고 쉽게 얘기할 일이 아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얼마 전 “외국인 근로자에게 똑같은 임금을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됐다. 황 대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차원이었다고 했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싶어하는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인들에게 어필하려는 의도였을 것 같다. 하지만 차별·혐오적인 표현이라는 지적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면 한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노동시장 원리도 모르면서 한 얘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앞으로도 경제가 계속 어렵다면 이런 종류의 경제해법은 마구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렇게 대중들의 즉자적인 정서에만 호소하는 해법들이 경제를 살리고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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