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국인 처형’과 한중관계

2001.11.01 18:59

〈정재호·서울대 교수〉

1997년 마약범죄 혐의로 중국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던 한국인 정모씨가 지난해 11월 옥중에서 사망했으나 중국정부는 7개월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한국 측에 통보하였다. 공범 신모씨는 지난 8월 사형이 확정되어 9월25일에 집행되었으나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확인은 10월 말 그 관련보도가 나온 후에야 이루어져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마약과 관련한 범죄에 대하여 극도로 엄한 처벌을 내리는 중국의 국내법에 대하여 따로 이견을 달기는 어렵겠으나 외국인 피의자의 구금과 체포, 형의 집행, 그리고 피의자의 사망 사실을 당사국에 즉각 통보해야 하는 ‘빈 영사협약’의 이행의무를 중국정부가 성실히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급증하는 한·중간의 인적교류를 감안할 때 이의 재발방지에 대한 중국정부의 약속 또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겠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중국에서의 ‘빈 영사협약’의 이행 행태를 단순히 성 단위 지방정부의 실수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비교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계 미국인 학자인 리사오민(李少民)을 간첩행위로 구금하고 있던 기간 내내 중국정부는 미국에 대하여 충실히 ‘빈 영사협약’을 이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유사한 사건들과 관련하여 호주 등에 대하여도 핵심적인 영사상의 편의를 제공하는 데에 미진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중국의 제3대 교역국이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1992년의 관계정상화 이후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흔히 ‘밀월’로 비유될 만큼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어 왔다. 중국의 ‘부상’(浮上)에 대하여 대중적인 우려가 많은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오히려 ‘무조건적 호감’이 널리 공유되어 왔다. 최근 중국에서의 한국의 인기(韓流)가 역수입되어 중국에 대한 열기(華風)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면적인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외면상의 호칭과는 달리 한·중간의 관계는 지난 몇 년간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말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중국이 바라보는 한국의 위상에는 큰 편차가 생겼다는 평가를 중국 내에서 적지 않게 듣게 되는데 이는 한국이 더 이상 중국의 발전모델로 고려되지 않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중간의 밀월이 끝나고 보다 ‘현실적’인 관계로의 전환을 알려주는 단서로 탈북자 처리, 달라이 라마의 방한, 그리고 대만과의 국적기 복항문제 등과 관련하여 당시 주한 중국대사가 행했던 부적절한 언급들을 들 수 있다.

더 나아가 작년 여름에 있었던 한·중간 ‘마늘분쟁’의 경우 양국 간의 만남이 보다 현실적인 관계로 전환되고 있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특히 한국과의 무역분규를 활용하여 중국이 많은 다른 나라들에게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명확히 보냈다는 점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즉 ‘관중’을 염두에 둔 대외관계에 우리도 하루 빨리 눈을 떠야한다는 점이다. 국가미사일방어계획(NMD)과 관련된 한·미간의 외교 해프닝이나 일본과의 어업관련 정책실수 등이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에 분명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01년 오늘 한·중간의 관계는 이미 1992년의 첫 만남으로부터 적지 않은 제한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교 자체에만 매달려 적지 않은 것을 잃어야만 했던 우리로서는 그 당시에 실현되지 못했던 선양 총영사관의 설치가 8년이나 늦게 영사사무소로 나타남에서 어쩌면 이번 사건의 단초를 이미 본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자주 언급하는 ‘작은 나라의 서러움’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국민 보호에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중국(그리고 다른 많은 나라들)도 한국에 대한 평가를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爲人民服務) 보다 낮은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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