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으로 가는 지름길

2007.10.01 17:55

〈박영호 /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7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평화, 민족번영과 화해·통일을 큰 의제로 삼아 여러 가지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0년 6월의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남북 관계는 꾸준히 진전을 이루어왔다. 그런데 남북 관계의 행위자는 남한과 북한만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에 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주변국들도 주요 영향자이다. 그중 미국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사실 1990년대 이후의 남북 관계는 북·미 관계와 상호 연관 속에서 전개되어온 측면이 강하다.

박영호 /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박영호 /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북핵문제가 준 위기와 기회들-

동서 냉전구조가 해체되면서 북한 외교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되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매개로 미국에 접근했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 이후 미사일 회담, 6·25 전쟁 실종 미군 유해 발굴·송환 등으로 대미접근 통로가 마련되었다. 남북 간 인적, 물적 교류가 증가 추세를 보였으나, 북한에 대남 관계는 부차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남한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한·미 공조는 주요 절차가 되었으며,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조화와 병행 발전’이 공동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대체하려는 목적의 4자회담은 북한의 대미접근 일변도 정책 등에 따라서 실패하고 말았다. 마침내 북한은 서울을 통해서 워싱턴으로 가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첫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관계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북·미 관계에도 자극제가 되었다. 북·미 접촉이 가속화되었고 2000년 10월 사실상 2인자인 조명록 군총정치국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했다. 양자 간 현안을 해결하며 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이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하여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했다. 성사되지는 않았으나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계획도 세워졌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관계는 퇴보했다. 9·11 테러는 미국의 안보전략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북한에 대한 시각을 더욱 강경하게 만들었다. 북한으로서는 대미 ‘공세외교’를 통한 양자관계 개선의 기대가 좌절되는 상황이 초래됐다. 제2차 북핵 위기는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양자관계를 악화시켰다.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 북·미 관계도 위기로부터 새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이 시작됐고, 2006년 후반기부터 미국의 대북정책도 변화되었다. 미국은 포괄적 접근정책으로 전환했다. 북·미 직접 협상도 이루어졌다. 남한의 적극적 대북접근정책을 일면 북·미관계 교착의 대체재로 활용해왔던 북한은 대미접근 기회를 다시 포착하게 되었다.

-정상 회담 북미관계 개선 열쇠-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자신의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경제회복의 빠른 길을 열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로 비난하는 미국으로부터 체제생존을 보장받으려는 것이 북·미 관계의 본질적 모순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에 이 같은 모순을 극복하는 기회를 또 한 번 열어줄 것이다. 북한에 워싱턴으로의 진입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임기 내 북핵 문제의 완전해결을 목표로 세운 부시 행정부로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2000년 10월 수준의 고위급 교환을 시도하면 마다하기 어렵다. 북한이 핵문제에 대한 전략적 결단을 내리고 이를 보여준다면 그 이상의 교환도 가능하다. 북·미 관계정상화는 예상보다도 빠를 수 있다. 1970년대 초 냉전의 절정 시기에 중국과의 적대관계를 푼 것은 보수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었다. 북한이 중국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과 양자관계를 풀 것을 권유한다. 남북정상회담이 주는 기회를 활용해서. 그러나 정상회담이 위기 탈피를 위한 전술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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