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한 자들의 연대를

2014.12.14 21:34 입력 2014.12.14 22:26 수정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미국에서 경찰이 체포 과정에서 흑인 용의자를 목 졸라 죽인 사건이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며 죽어가던 그가 했다는 마지막 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숨을 쉴 수 없어요.”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나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은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랬다. 2014년 올해 내내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 모녀 사건에서부터 세월호,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분신, 그리고 땅콩 회항 사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없다”고 아우성을 쳤다. 피해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건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우리 목을 쥐고 있는 그 손은 결코 힘을 풀지 않았다. 점점 더 조여왔다. 정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토요일 아침 친구들로부터 날아온 소식에 나는 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쌍용자동차의 두 명의 해고노동자가 이 추위에 굴뚝 위로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이창근 정책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다. 이들은 고등법원의 해고무효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힌 이후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고 했다.

지상에서 숨을 쉴 수 없는 해고노동자들이 운명처럼 굴뚝 위로 올라가고 있다. 이 매서운 추위에, 칼 같은 바람에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70m의 굴뚝 위에 올라 위태롭게 서 있다. 그 공간이 아니면 이들이 설 자리가 없고 그 매서운 바람이 아니면 이들이 쉴 공기가 없는 곳이 이 땅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숨을 쉬게 해달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법과 정치가 목을 조르는 손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손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상의 현실이다.

그래서 공중에 올라간 그들을 바라보는 지상에 남은 자들도 숨쉬기가 힘들다. 저들이 또 저렇게 공중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서글픔과 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무력감에 숨을 쉴 수가 없다. 절박감은 이해하지만 저런다고 뭐가 될까 싶은 패배감이 먼저 나온다. 사람만 더 상하고 다칠 것이라는 절망감이 먼저 엄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덜 괴로울지 모른다는 무력감이 온몸을 감싼다.

이 무력감은 매우 낯익은 무력감이다. 언제부터인가, 특히 올해는 내내 뭘 해도 안 되고 어떻게 해도 별수 없다는 무력감이 내내 내 목을 조여왔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 수많은 애도와 분노의 물결에도 세상은 1㎜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법과 정치는 끊임없이 약자를 외면했고 강자들은 약자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버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법과 정치에 의해 가장 발가벗겨진 저들이 공중에서 말을 걸고 있다. 법과 정치에 의해 발가벗겨진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이 지상의 ‘무력한 자들’밖에 없다고 말이다. 이창근 정책실장은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굴뚝에 오른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고 무서움 또한 많고 여린 인간인지를 알리기 위해” 올라왔다며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공장 안의 옛 동료들에게 손잡아 달라는 마음으로 굴뚝에 올랐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쳐도 상관없다”면서 “해고자들의 손을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동료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이 무력한 사람들에게 동료가 되어 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저들은 우리에게 동료가 되어 달라고 하지만 그들이 먼저 무력한 우리의 동료가 되고 있다. 무력한 지상에 남은 자들을 ‘동료’라 부르며 그것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이 무력한 자들이 자신들이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을 걸고 있다. 무력한 자가 희망이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들은 말한다. 무력한 자들이 믿을 것은 무력한 자들뿐이라고. 저 법과 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 희망은 ‘무력한 자들의 연대’뿐이라고 말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