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16.08.03 20:43 입력 2016.08.03 20:50 수정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시론]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세계적인 화가 폴 고갱이 말년에 그린 명작의 제목이다. 그는 이 작품명을 통해 인간과 인류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요즈음 이 제목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현재 세계를 뒤덮고 있는 것은 끝없는 테러와 증오의 정치다. 미국이 9·11테러 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 침공 등 세계를 전쟁으로 끌고 간 결과가 바로 테러와 증오의 지구화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방에 보이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다. 오죽하면 헬조선이란 섬뜩한 표현이 일상화됐겠는가? 내년이면 민주화도 30년을 맞는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러나 민주화 30년을 돌아보며, 흐뭇해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엄중하고 암담하다. 오히려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근본적인, 실존적인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30년 전 거리로 뛰어나온 국민들이 만들고 싶었던 사회가 지금과 같은 헬조선이었을까?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절망하는 것은 지도층의 타락이다.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 구속사태를 불러온 진경준 사태를 바라보며 국민들은 절망하고 또 절망한다. 각종 의혹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은 또 어떠한가? 지도층이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 지도층일수록 개처럼 행동하는 ‘노블레스 개블리주’에 다름 아니다. 지도층이 타락했어도 최소한 유능해 민초들을 살 만하게 만들어준다면 그래도 참을 만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민초들의 삶은 헬조선이다. 게다가 헬조선의 돌파구를 새마을운동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놀라운 것은 사드다. 박근혜 정부는 21세기 한반도의 미래가 달린 사드 문제를 정치권, 나아가 국민적 논의와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북한의 핵무기는 막아야 한다. 그러나 사드는 단순한 무기체계가 아니다. 이는 21세기 세계패권을 놓고 벌어질 미국·일본 대 중국의 대결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21세기 민족의 진로를 결정할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현 정부는 일방적으로 배치를 선언함으로써 한반도를 한·미·일 대 북·중·러의 새로운 냉전으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러함에도 사드 논쟁을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일축하니 대통령이란 자리가 ‘무오류의 신’이라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진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따라서 조금만 버티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현 정권이 끝난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진짜 문제는 현재가 절망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당도, 정의당으로 상징되는 진보정당들도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조직인 이상 정무적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아니 해야 한다. 그러나 제1야당이 사드와 같이 민족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정무적 판단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은 정당으로서 해야 할 기능을 스스로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정하는 것이 수권정당으로 바람직하느냐”는 우상호 원내대표의 말을 듣는 순간 절망감은 배가된다. 제1야당의 정치적 책무 포기와 ‘회피의 정치’를 노회한 원로정치인이 아니라 앞으로 당을 이끌어갈 ‘젊다면 젊은’ 386출신의 차세대 리더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진통일론이 난무하고 냉전논리가 팽배했던 1970년대 초에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선거에서 충격적이고 선구적인 4대국 안보론을 들고 나왔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새 정치를 내건 안철수당도 다르지 않다. 박선숙·김수민·박준영 의원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다시 한번 기각함으로써 일단 한시름을 놓았다고는 하지만, 국민의당의 새 정치는 낡은 ‘돈 정치’에 발목이 잡혀 출발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아예 존재감이 없는 녹색당이나 노동당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 역시 대중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그렇다고 치자. 소위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이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런 것 같지 않다. 민중운동도, 시민운동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희망은 우리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할 때 가능하다. 민주화 3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30년을 기획하기 위해 우리 모두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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