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 민주주의

2020.02.05 20:42 입력 2020.02.05 20:45 수정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시론]이율배반 민주주의

국회의원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당들이 후보 공천과 인재영입, 세력 간 통합 논의로 바쁘다. 여론 동향과 투표 전망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 관심사는 누가 이길 것이냐다. 민주주의는 정치경쟁의 제도화이니, 정치인들이 더 많은 지지를 얻으려 다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흥미로운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정치권과 지지층이 똘똘 뭉쳐 자기편을 지키고 상대편을 타도하려는 공동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갈등구조는 복잡한데, 정치는 양쪽으로 쩍 갈라진 대립 구조다.

[시론]이율배반 민주주의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현실을 평가하고 재단하기 전에 우리는 조금 더 긴 역사적인 관점을 취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대결정치는 완전히 새로운 것도, 특별히 극심한 것도 아니다. 노무현시대에 강경 보수우익의 언행을 기억한다면 그때의 증오와 적개심이 지금보다 덜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시대에도 야권의 격렬한 비난과 반대행동은 끊이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도 정치 문제로 사람들이 갈라섰다. 진영 대결은 장기 현상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우선 정치제도 환경을 들 수 있다. 한국은 강력한 대통령제와 소선거구 단위의 단순다수결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이것은 승자독식의 제도다. 승자 아니면 패자다. 그래서 합의정치의 공간이 좁다. 대결정치의 잠재성이 강한 제도 환경인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제가 죄인은 아니다. 지금 민주주의의 쇠퇴가 심각한 헝가리는 내각제이고 폴란드는 혼합제이다. 비례대표제가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전후 유럽의 합의민주주의는 비례제하의 연합정치로 작동해왔지만, 최근 극우 정당의 급부상 역시 군소정당에 유리한 비례제의 덕을 봤다. 단지 어떤 제도로 갈아입느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이냐가 관건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 이후 언제나 정치세력 간의 불신과 대립이라는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그 강도와 양상은 변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가 이끈 ‘3김시대’는 보스정치였다. 비록 이들 간의 경쟁이 대단했지만, 이해관계가 맞으면 보스끼리 담합도 타협도 가능했다. 유권자들은 지역 균열이 깊었지만, 선거에서 그것을 드러냈을 뿐 직접행동으로 지역주의를 표출하고 정치권을 압박하는 일은 드물었다. 즉 민주주의가 미발전한 만큼, 정치 대립의 폭과 강도도 제한적이었다.

포스트 3김시대는 달랐다. 정치인들의 대중 활동과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안으론 동지적 정체성, 밖으론 적대적 정체성이 강해졌다. 정보사회에서 시민들의 행동능력이 커짐에 따라 단지 정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내가 뽑은 대통령’ ‘우리가 만든 정권’이라는 자의식이 커졌고 정권 비판이나 수호 행동에 점점 많은 시민이 가담하게 됐다. 이런 변화는 처음엔 진보층에 국한됐지만 나중엔 보수층까지 확대됐다. 정치권과 지지층이 융합하여 진영을 이루고 반대 진영과 싸우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 같은 양상은 정치이론에서 민주주의의 이율배반 또는 역설이라고 부르는 난해한 문제를 드러낸다. 민주주의는 모든 좋은 것을 담은 선물상자가 아니라, 상충하는 원리와 내적 모순을 안고 있는 체제다. 그래서 종종 역설이 생겨난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국민주권인데, 한 집단이 ‘국민’의 이름으로 전횡을 휘두르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활발한 정치참여는 민주주의의 생명인데, 그 참여가 법치를 훼손하면 반대자에게 폭력이 된다. 참여도 옳고, 법치도 옳다. 이율배반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한국의 정치 대결은 민주적 경쟁과 참여 확대를 방증하는 현상이면서,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기도 하다. 정치경쟁이 격해질수록, 정치의 주체가 확대될수록, 정치적 정체성이 뚜렷해질수록 점점 더 많은 개인이 정견을 중심으로 뭉치고, 집단 간의 차이가 분명해지며 그 균열이 깊어진다. 그런데 그런 대결의 정치는 사람들을 적과 동지,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 안에 가두며, 상호 인정과 관용, 공동선을 위한 대화와 승화의 공간을 질식시킨다. 이념, 정책, 도덕이 모두 권력을 위한 명분과 수단이 된다. 민주주의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대결의 정치가 민주주의의 생기와 위험을 함께 담고 있다면, 그 생기를 보지 못하고 대립하는 양쪽을 배척하기만 하는 냉소주의와 중도주의, 그리고 그 위험을 보지 못하고 열정만 불태우는 자기중심적 행동주의를 모두 극복해야 한다. 서로 다투는 주체들의 합리적 핵심을 취하여, 그러나 대립의 경계를 넘어, 정치의 대안을 구체화하려는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큰 정치를 먼저 개시하는 쪽이 다음 단계의 한국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주역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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