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기관·출연연구원, 이래선 희망 없다

2020.03.05 20:50 입력 2020.03.05 20:56 수정
엄치용 코넬대 의생명공학과 연구원·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시론]국가연구기관·출연연구원, 이래선 희망 없다

지난 1월20일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이후 누적 확진자 수가 3월4일 현재 5000명을 넘어서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국민의 눈은 감염병 관리 주체인 질병관리본부와 더불어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감염병 연구를 수행하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한국화학연구원 신종바이러스(CEVI)융합연구단에 쏠렸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국민이 거는 기대감은 쉽게 무너진다.

[시론]국가연구기관·출연연구원, 이래선 희망 없다

우선 정부의 조직을 보면 보건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 하부기관으로 국립보건연구원이 존재하고, 그 밑에 신·변종 감염병 연구를 총괄하는 감염병연구센터가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와는 별개의 연구센터이다. 하지만 이 센터가 ‘국가 감염병 연구를 선도하는 컨트롤타워’라는 비전에 걸맞은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다. 2015년 메르스 위기를 겪으면서 센터의 첫 번째 목표인 감염병 극복에 필요한 핵심 연구기술 및 연구역량 확보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국민은 실감하지 못한다. 이런 사태를 겪을 때마다 긴급 투입되는 일회성 연구비로 국가연구역량을 축적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8억원의 긴급예산이 코로나19 연구에 배정되었다.

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는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보이는 슈퍼박테리아 극복 기술 및 바이러스 진단과 예방 기술 개발 등을 통한 국가 감염병 대응기술 확보를 목표로 만들었다. 그러나 센터 소속 연구원들은 그들이 지금까지 수행해왔던 관심 연구 분야를 그대로 수행할 뿐이고, 연구를 총괄하는 센터 또한 개개의 연구를 전체적으로 엮는 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개인 연구자가 진단, 예방, 대응 기술을 개발하면 중앙 센터는 감염병 A, B, C에 상응하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센터 차원에서 수행해 성공 여부를 판단하고, 오류를 수정하면서 실제 유사상황에 대비한 국가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 쓰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심은 오직 논문과 실적뿐이다. 개인 평가가 자기 연봉과 직결되는 현 시스템에서는 국가기술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개인의 잇속에 매몰된다.

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의 경우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2016년 8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미래선도형 융합연구단으로 선정되어 2022년 7월까지 6년간 570억원의 국고를 지원받는다. 한국화학연구원을 중심으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 8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 연구단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 대응 융합 솔루션 개발을 목표로 진단기술 개발, 예방, 치료 및 확산 방지를 기반으로 과제를 구성해 연구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난 2월17일이 되어서야 연구단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 분리 주를 전달받아 바이러스를 배양 증식하는 단계에 있다. 신청에서 분양까지 걸리는 시간을 기관 간 협의를 통해 사전에 단축해 놓았어야 했음에도 연구단은 늦어진 분양 탓만 했다. 연구단은 현재 파스퇴르연구소와 역할을 분담해 치료제 개발을 추진 중이며, MOU를 맺은 웰스바이오와 앱클론사와 함께 진단분야 연구를 수행하면서 질병관리본부에 코로나바이러스 분자진단키트 긴급승인 요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정작 이상한 것은, 융합연구단이 소속되어 있는 한국화학연구원 외에 다른 참여 출연연구원의 기여도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융합연구단 소속 타 출연연구원의 보유 기술을 보면 신종 바이러스 현장진단용 고감도 진단 기술, 유전자 기반 실시간 현장진단 기술, 바이러스 유전체 기반 고속·정밀 진단 기술, 바이러스 포집 기술, 바이러스 감염 또는 백신 접종 초기 호흡기 계통에 발생하는 염증 억제기술, 슈퍼컴퓨터 기반 질병 예측 통합 플랫폼 구축, 감염병 확산예측 및 방제 전략 수립을 위한 수리적 모델 구축기술 등이 있다. 이 융합연구단이 제대로 운영되었다면, 연구단 내에서 바이러스를 효율적으로 포집하고, 높은 민감도와 정확도를 지닌 진단기술과 확산예측 프로그램을 통한 효율적 국가 방제대책과 후보 치료제가 나왔을 것이다. 연구 종료를 2년6개월 남긴 시점에서 연구단의 연구를 통제하고 조율할 지휘부가 없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수백억원의 연구비를 쓰고,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되니, 융합연구단은 4일 사스와 메르스에 쓰였던 중화항체가 코로나19의 표면에 붙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물정보학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 예측을 근거로 ‘코로나19 항체’를 운운했고 언론에 보도됐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기관이나 정부의 출연금으로 운영하는 연구기관은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출연연이 수행하는 성격의 연구는 국가의 연구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언제든지 국민을 위해 꺼내어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보듯,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쓸 수 있는 기술은 아주 제한적이다. 개인 평가 시스템이란 제도가 버티고 있는 한 출연연 연구원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세계 유수의 국가가 운영하는 연구소를 둘러보라. 우리처럼 첨예하게 실적으로 모든 연구원을 줄 세워 일정 비율로 연봉을 책정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협업이나 연구역량 강화를 얘기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국가연구소와 정부 출연연의 운영과 평가의 혁신이 필요한 때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인적·경제적 손실이 나자, 2010년 11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농림수산부, 지식경제부, 식품의약품안전처 5개 정부 기관이 참여하는 신종인플루엔자 범부처사업단이 출범하고 6년간 연구를 수행하고 없어졌다. 그럼 이제 신종플루는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근시안적, 일회성 연구보다는 국가의 지속적인 기초연구 뒷받침 역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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