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벽안(碧眼)의 천사’

2005.12.01 18:06

지금 소록도는 슬픔에 잠겨 있다고 한다. ‘벽안의 천사’ 마리안 수녀(71)와 마거릿 수녀(70)가 없기 때문이다. 43년간 한센병 환우들을 위해 봉사해 온 이들은 지난달 21일 아무 말 없이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주민들은 일손을 놓은 채 10일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두 수녀가 남긴 것은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로 시작되는 편지 한통.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다. 이제 우리가 없어도 환우들을 잘 보살펴주는 간호사들이 있기에 마음놓고 떠난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형기 시인의 시구절이 생각난다.

[여적] ‘벽안(碧眼)의 천사’

이들은 20대 후반에 소록도에 왔다. 당시 소록도의 상황은 척박하기만 했다. 한센인들의 한서린 삶은 한하운 시인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버린 나의 얼굴’이라고 노래했다. 또 ‘지나가버린 것은 /모두가 다 아름다웠다/ 여기 있는 것 남은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다’라고 탄식했다. 간호사인 두 수녀는 이 ‘낮은 곳’에서 한센병 환우들과 슬픔과 아픔, 희망을 함께 나누며 젊음을 보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빈자의 성녀’로 추앙받는 테레사 수녀는 “이 세상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우리가 창조되진 않았다. 그 위대한 목적이란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랑은 말은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자기’라는 벽에 갇힌,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 세상에는 항상 미움과 갈등이 넘실댄다. 예수가 가르친 사랑은 인간에게는 풀기 힘든 ‘숙제’인지 모른다.

어느덧 12월이다. 곧 예수가 태어난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성프란체스코는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기도했다. 마리안, 마거릿 수녀처럼 크건 작건 사랑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계가 지탱이 되고, 인간은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연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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