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국민참여재판과 성범죄

2022.10.23 20:48 입력 2022.10.23 20:53 수정

성차별 의식 때문에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평결이 성범죄에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출처 unsplash.com

성차별 의식 때문에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평결이 성범죄에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출처 unsplash.com

국민참여재판과 성범죄의 상관관계가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신청된 4건 중 1건이 성범죄였다. 무죄 확률이 높아 성범죄 피고인들이 유독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고 한다. 2020년 기준 일반재판에서 성범죄 무죄율은 3.7%인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47.8%였다. 2008~2020년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매우 높은 무죄율(21.88%)을 보였다. 강도나 상해에 비해서는 3배, 살인죄 무죄율과 비교하면 무려 10배가 넘는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의 법감정을 반영한다는 취지 아래 2008년 도입됐다. 무작위로 선정된 만 20세 이상 시민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를 판단한다. 그런데 어쩌다 이 제도가 성범죄자들이 무죄를 받는 통로로 활용되었을까. 배심원들이 성범죄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증거가 명백한 성범죄 25건 중 24건에 대해 재판부는 유죄 판결한 반면 배심원은 무죄 평결을 냈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클럽에서 만나 택시를 함께 탔기 때문에’가 있는가 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서’ ‘유흥업소 종업원이라서’라는 이유도 있다. ‘평소 친절하게 대해서’와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계속 일해서’도 있다. 심지어는 ‘11세 미성년 피해자가 사건을 또렷하게 기억 못해서’도 있다.

사법정책연구원 박기쁨 판사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무죄율이 높은 배경을 ‘성 고정관념’ 때문으로 분석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이른바 ‘강간 통념’(Rape Myths)이 팽배한 이유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강간에 저항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이라거나, 남성에 대해 앙심을 품은 여성이 성범죄를 당했다고 날조한다든지 하는 왜곡된 인식이 남아 있다. 성차별 의식이 높고, 강간 통념에 젖은 배심원일수록 성범죄 피고인을 무죄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피고인들은 범죄가 이뤄진 후 피해자들이 ‘피해자답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물고 늘어진다.

영미권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성 고정관념을 가진 배심원 후보를 적극 배제한다. 또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부적절한 추측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한다. 성범죄에 대한 피해자 반응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으려면 배심원 교육 의무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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