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공여’ 김유나 가족과 미국인 킴벌리의 특별한 만남 “유나 덕분에 매일매일 기적을 경험합니다”

2020.01.20 21:28 입력 2020.01.20 21:29 수정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장기기증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기이식법 개정하라’ 기자회견에서 뇌사 장기기증인 고(故) 김유나양의 어머니 이선경씨와 이식인 킴벌리가 포옹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장기기증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기이식법 개정하라’ 기자회견에서 뇌사 장기기증인 고(故) 김유나양의 어머니 이선경씨와 이식인 킴벌리가 포옹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킴벌리가 전에는 못 먹던 아몬드가 든 쿠키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유학 중 뇌사…6명에 장기 기증
유가족 “건강해진 킴벌리 보며
딸의 죽음 헛되지 않았다 느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이뤄졌다. 미국인 킴벌리(24)와 그의 어머니는 한 한국인 부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왔다. 김제박(53)·이선경(48)씨는 킴벌리에게 신장과 췌장을 주고 세상을 떠난 김유나양(사망 당시 18세)의 부모다. 김양은 2016년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진 후, 장기를 기증해 미국인 6명에게 새 생명을 선사했다. 2세 때부터 소아당뇨로 투병해오다 18세에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신장이 모두 망가져 혈액투석기에 의지해 살아오던 킴벌리는 이제 무엇이든 잘 먹고 건강하다.

두 가족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마련한 행사를 통해 이날 처음으로 마주했다. 기자회견장에 킴벌리와 그의 어머니가 들어서기 전, 김양의 부모는 입을 꾹 다물고 떨리는 표정으로 문 쪽을 쳐다봤다. 킴벌리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이씨를 크게 끌어안았다. 킴벌리의 어머니는 김씨의 손을 꼭 잡고 쓸어내리며 반가움을 표했다.

이날 두 가족은 의미있는 선물을 주고받았다. 킴벌리는 이씨에게 천사가 들어 있는 스노볼을 건네며 “유나와 그 가족으로부터 받은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다. 유나가 준 것들로 인해 나는 매일같이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유나는 나에게 신장과 췌장만을 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선물했다”고 했다. 이씨는 킴벌리에게 직접 만든 가방과 향초를 건넸다. “자신을 활활 태워 빛을 내는 희생의 의미와 작년에 결혼한 킴벌리가 촛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사랑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길 바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이날 킴벌리를 만난 후 “유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딸과 비슷한 나이인 킴벌리가 건강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인 ‘도너패밀리’도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국내에서도 유가족과 이식인 간에 서신 교류 등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영국 등과 달리 국내에서는 장기 이식자와 유가족이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제31조(비밀의 유지)에 따라 어떤 사람이 장기를 받았는지 아는 것조차 금지돼 있다. 장기 이식을 조건으로 금전거래가 오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자회견 참석한 기증자 가족
“서신 교환이라도 허락했으면”

2011년 뇌사로 세상을 떠나며 장기를 기증한 이종훈씨의 어머니 장부순씨는 “저에게 우리 아들의 생명을 이어받은 누군가가 ‘고맙다’ ‘건강히 잘 살겠다’라는 편지 한 장만 써주었더라면 큰 슬픔 가운데에서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너패밀리는 “연락을 원치 않는 이들에게 교류를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은 이식인이 있다면 그들과 서신 교류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연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처장은 “법 개정을 통해 미국처럼 기관의 중재하에 기증자 유가족과 이식인이 교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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