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조항 문제 아닌, FTA 자체가 문제

2011.11.16 18:28 입력 2011.11.17 10:34 수정

“비준안이 처리되면 3개월 내에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재협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이명박 대통령)

“서비스·투자위원회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를 포함해 서비스·투자 분야의 어떤 구체적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discuss)할 수 있다.”(미국 무역대표부)

투자자-국가소송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열쇳말’이 되고 있다. 마치 투자자-국가소송제가 ‘한·미 FTA의 모든 것’이어서 이 독소조항만 제거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한·미 FTA의 쟁점을 투자자-국가소송제로 좁히는 데 ‘공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자자-국가소송제는 한·미 FTA의 본질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제도임이 틀림없다. 이 제도는 외국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도구다. “투자자에게 광범위한 권리를 부여했지만, 노동자의 권리와 환경보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립서비스만 날렸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2008년 오하이오 민주당 예비선거 연설)는 지적이 이 제도의 신자유주의적 속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국가소송제는 단순히 관세를 철폐하는 것을 넘어 국가의 규제 권한을 시장에 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미 FTA라는 거대한 계약서의 일부분일 뿐이다.

정부정책을 규제 완화의 방향으로만 가도록 해 다시 규제를 강화할 수 없게 하는 역진방지(래칫) 조항, 협정문에서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열거해두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서비스 시장 개방 등 사회적인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 많다.

이 같은 독소조항 이외에도 정부 정책으로 인해 몰수 등 직접수용과 유사한 정도로 투자자의 재산권이 간접적으로 침해될 경우 보상해야 하는 미국의 간접수용 법리도 국내법 체계로 들어오게 된다.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이 있는 한국의 법 정신과 달리 재산권의 보호를 절대화하는 미국 헌법의 정신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의 권력을 강화하는 한·미 FTA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후퇴하지 않도록 하는 한·미 FTA의 여러 요소들은 독소조항이 아니라 필수조항이다.

이 같은 시각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철학이 정당화될 때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시장만능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선고를 받았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한·미 FTA라는 통로를 통해 미국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이식받으려 하고 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독소조항 하나만 뺀다고 해서 초국적 기업의 소유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한·미 FTA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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