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프간 바그람병원장 지낸 손문준 교수가 전하는 현지 직원들의 절박한 상황 “한국이 적극 받아들여야”

2021.08.24 13:55 입력 2021.08.24 14:13 수정

한국 PRT 협력 현지 직원들, 탈레반 치하 탈출 위해 미국행 비자 신청까지

“PRT로 개발원조 첫 술 뗀 한국, 끝까지 책임 다해야”

2010~11년 한국 지방재건팀(PRT)이 아프가니스탄 파라완주에 세운 바그람한국병원장을 지낸 손문준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현지직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문준 교수 제공

2010~11년 한국 지방재건팀(PRT)이 아프가니스탄 파라완주에 세운 바그람한국병원장을 지낸 손문준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현지직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문준 교수 제공

손문준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53)는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한국병원장으로 일하던 시절 함께 일한 아프간 동료들의 연락에 응답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서 신변 위협을 호소하면서 미국에 가기 위해 특별이민비자(SIV) 신청 추천서를 부탁하는 현지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24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위해 작은 글을 써 주는 것밖에 없다”며 “이렇게라도 그들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돕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SIV는 2008년부터 미국이 자국 정부나 군대와 협력한 아프간인 통역자들의 미국 재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 한국 정부의 현지 조력자들에까지 미국행이 허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런데도 탈레반 치하를 탈출하기 위해 실낱 같은 가능성에 매달리는 것이다.

2010~11년 2대 바그람 한국병원장을 맡았던 손 교수가 아프간을 떠난 지도 십년이 훌쩍 지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꾸준히 옛 동료들의 소식을 접해왔지만, 지난 7월초부터 상황이 눈에 띄게 급박해졌다. 8월말까지로 철군 시한을 못박은 미국 정부가 아프간 주둔 미군 90%가 이미 철수했다고 발표한 시점이었다.

손 교수는 “그 무렵부터 어떻게든 미국에 가야겠다는 불특정 다수의 요청이 쇄도했다.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 하청업체 직원들도 비자 신청 순위에서 밀린다는데, 한국 병원 근무 경력은 더욱 불리할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들을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했다.

한국 지방재건팀(PRT)은 2010년 7월~2014년 10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일원으로 아프간 파라완주 재건 사업에 참여했다. 외교부·경찰·군·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등 민관 합동 방식의 PRT는 바그람 미군기지 내에서 한국병원, 직업훈련원을 운영했고, 많은 수의 현지 직원들이 고용됐다. 현재 열댓명의 현지 직원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손 교수는 “혹시라도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개개인이 처한 자세한 사정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하지만 한국과 협력한 직원들도 탈레반 점령 이후 ISAF와 일한 직원과 그 가족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해 처벌, 색출 움직임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손 교수는 전했다. 그는 “아프간에 있을 때도 아프간인들은 늘 생활 속에서 죽음의 위험에 놓여있다고 느꼈다”며 “지금은 완전히 탈레반 세상이 되었으니 이들이 느끼는 위협은 더욱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외국 정부와 협력한 아프간인 모두에게 사면령을 내리겠다며 유화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손 교수는 “이미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탈레반 주장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한국 지방재건팀(PRT)이 아프가니스탄 파라완주 바그람 기지 내에서 운영한 바그람한국병원에서 손문준 교수(오른쪽)가 할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를 진찰하고 있다. 손문준 교수 제공

한국 지방재건팀(PRT)이 아프가니스탄 파라완주 바그람 기지 내에서 운영한 바그람한국병원에서 손문준 교수(오른쪽)가 할머니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를 진찰하고 있다. 손문준 교수 제공

한국 정부도 한국을 도운 아프간 현지인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국내로 이송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상태다. 손 교수는 특히 아프간 재건 사업이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역사에서 지닌 상징성을 고려하면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PRT가 시작된 2010년은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며 공여국이 된 해이고, 한 동안 한국 ODA 사업의 대표주자로 거론됐다.

손 교수는 “한국이 PRT를 통해 공여국으로서 첫 술을 뗀 셈인데 나몰라라 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다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만큼 국제사회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회 일각의 난민 반대 정서에 대해선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저처럼 경험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아프간을 떠난 이후 이라크,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의료 지원 사업에도 참여한 그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아프간에서 “여성의 의료접근권 제한”이 가장 우려된다고 밝혔다. “산부인과의 경우 남자 의사가 진료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데, (탈레반 치하에서) 여성에 대한 교육권이 박탈되면 여성 의사의 배출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아프간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에 대한 의료가 매우 열악해질 것 같습니다.”

한국 지방재건팀(PRT)이 아프가니스탄 파라완주 바그람 기지 내에서 운영한 바그람한국병원 내에서 아프간인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부르카와 니캅을 쓴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손문준 교수 제공

한국 지방재건팀(PRT)이 아프가니스탄 파라완주 바그람 기지 내에서 운영한 바그람한국병원 내에서 아프간인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부르카와 니캅을 쓴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손문준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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