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A를 로비자금으로 인식하는 정부

2022.08.30 21:34

유신모 정치부 기자

유신모 정치부 기자

정부가 30일 공개한 2023년 예산안 특징 중 하나는 공적개발원조(ODA)를 위한 예산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글로벌 중추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이 원조 선진국 클럽인 개발원조위원회 멤버가 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원조의 질과 양을 향상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ODA 대폭 증액은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그러나 정부의 ODA 집행 계획에는 개발협력의 국제적 규범에 역행하는 내용이 있어 눈을 의심케 한다. 개도국을 대상으로 2030년 부산박람회 유치 지지교섭을 위해 무상원조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박람회 유치를 위해 ODA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개발협력은 경제적 이익이나 국가전략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대의 ODA는 빈곤퇴치, 평등, 인권 등 인류 공동번영 이상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유엔은 2000년 ‘새천년개발계획’에 이어 2016년부터 ‘지속 가능한 발전목표’를 통해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세상’을 위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일은 개발협력에 대한 정부 인식이 얼마나 박약한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2006년 유엔 사무총장 선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에 나선 노무현 정부가 아프리카·남미 등에 수백만달러 원조 약속을 남발하고 남미의 한 국가에 그랜드피아노를 제공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망신을 당한 일이다.

이번 일은 외교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외전략과 연계한 ODA’를 밝혔을 때 예견됐던 일이다. 윤석열 정부뿐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를 위해 빈곤국이 아닌 자원보유국에 ODA를 집중 제공하고 한·미 동맹 강화를 내세워 미국이 벌인 전쟁 뒤치다꺼리에 ODA를 투입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새마을운동 세계화’를 외치며 ODA를 사유화했다.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신북방 거점국가에 대규모 ODA를 제공해 인프라사업을 벌이고 국내 기업이 수주토록 하는 ‘구속성 원조 확대 방안’을 경제대책으로 내놓았다. 원조 선진국을 자처하면서도 개발협력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점점 퇴행하고 있다. 이제는 박람회기구 회원국의 표를 얻기 위해 ODA를 로비자금으로 제공한다는 방안을 버젓이 내놓는 정도까지 왔다. 대한민국의 개발협력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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