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반장’ 총선 낙선 8개월 만에 정치무대로 화려한 복귀

2012.12.19 23:04 입력 2012.12.20 00:51 수정

홍준표 경남지사 당선… 당 대표 출신 첫 도지사 ‘정치인생’ 2막

‘홍반장’이 돌아왔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9일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재기했다. 득표율 65%로 권영길 야권 단일후보를 이겼다.

4·11 총선 낙선 이후 8개월여 만에 도백으로 복귀했다. 홍 당선자는 “서민 도지사, 깨끗한 도지사, 힘 있는 도지사, 그리고 정의로운 도지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홍준표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19일 경남 창원 중앙동 선거사무실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누리당 홍준표 경남도지사 당선자가 19일 경남 창원 중앙동 선거사무실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두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모래시계 검사 ‘YS 키드’
노무현 정부 공격 저격수
17대 대선 땐 BBK 방어

홍 당선자는 1954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부산·경남(PK) 출생이지만, 중·고교를 대구에서 다녀 최근까지 대구·경북(TK) 인사로 분류됐다.

1977년 고려대를 졸업한 후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됐다. 청주지검 시절에는 ‘홍판표’에서 홍준표로 개명했다. 검찰 내 비주류였지만 수사 실적은 두드러졌다. 그는 1993년 서울지검 재직 중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6공 황태자’ 박철언을 구속시켰다. MBC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 등장인물과 비슷한 면모로, 그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나는 영원한 검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정계 입문을 권유받아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한 ‘YS 키드’다. 서울 송파갑에서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도미했고,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MB)과 “형님” “동생” 하는 교분을 쌓으면서 친이계 인사가 됐다.

홍 당선자는 2001년 보궐선거로 서울 동대문을에서 당선돼 여의도로 복귀한 후 내리 4선을 했다. 그는 정치권의 대표적 저격수였다. 노무현 정부를 향한 보수세력의 주 공격수를 자처했다.

사석에서는 자유분방하고 격의 없게 말했으나, 이로 인해 “이대 계집애”, (기자에게)“너 맞을래” 등 설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홍 당선자는 2007년 17대 대선에서 클린정치위원장을 맡아 ‘BBK 소방수’를 자임했고, 그 공으로 이명박 정부 탄생 후 첫 원내대표를 맡았다. 하지만 현 정권 내내 뒷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지만 바라던 법무장관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2010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했지만 친이계가 조직적으로 지원한 안상수 대표에게 패했다.

2011년 전당대회 재도전에서 집권 여당 대표가 됐다. 당시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 아들, 고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에 끌려나왔던 어머니 아들이 집권여당의 대표가 됐다”며 감격해했다.

하지만 4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이 위기에 처하자 여론에 밀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4월 총선 공천 과정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공천은 받았지만 정권 심판론에 쓴잔을 마셨다.

총선 후 경남지사 보궐선거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정치권에서는 부정론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후 경남지사까지 거머쥐었다.

홍반장이란 별명은 원내대표 시절 특유의 추진력과 저돌성, 탁월한 정치감각 때문에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는 “여러분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노력과 결과로써 보여 드리겠다”는, 그다운 당선소감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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