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력 법령화 넘어 헌법화…더 멀어지는 북한 비핵화

2023.10.03 16:00 입력 2023.10.03 16:25 수정

최고인민회의 ‘핵무력 강화’ 헌법 개정

김정은 “핵은 국가의 영원한 전략자산”

핵무기 증산·다양화·실전배치 “가속화”

전 지구적 ‘신냉전’ 진단···반미외교 확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연설했다고 조선중앙TV가 2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연설했다고 조선중앙TV가 2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핵무력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하며 북한 비핵화는 더욱 멀어지게 됐다. 핵무기 대량 생산과 실전 배치로 핵 위협을 빠르게 끌어올린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현재 국제정세를 “신냉전 구도의 현실화”로 규정하며 반미 연대 강화를 시사했다. 한반도 주변의 군사·외교적 긴장은 계속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사회주의 헌법 개정안이 지난달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헌법 제58조가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는 내용으로 보완됐다. 최고인민회의는 남한의 국회 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설에서 이번 헌법 개정을 “핵 무력 강화 정책의 헌법화”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 선제공격 등 핵 무력 정책을 ‘법령화’한 데 이어 1년 만에 최고법인 헌법 내용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헌법 서문에 규정해온 핵보유국 지위를 재확인하고 핵 무력 고도화 방침을 명시한 데에 의미가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조치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핵 무력 강화 정책을 “국가의 기본법으로 영구화” “불가역적인 국법으로 고착” “국가 최고법에 명명백백히 규제”한 것이라며 “일단 보유한 핵은 세월이 흐르고 대가 바뀌여도 국가의 영원한 전략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최선희 외무상은 지난달 30일 핵 무력 헌법화를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비난한 담화에서 “미국을 비롯한 적대 세력들이 우리에게 비핵화를 강요하면서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헌법적 지위를 부정하거나 침탈하려 든다면 그것은 곧 헌법 포기, 제도 포기를 강요하는 가장 엄중한 주권 침해, 위헌 행위로 간주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헌법화는 법령과 달리 쉽게 개정할 수 없다는 상징성을 내포한다”며 “북한 비핵화는 더욱 멀어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내외에 핵무기 고도화에 대한 비타협 메시지 발신한 것”이라며 “향후 비핵화 협상은 불가하다며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내년 미국 대선 국면에서 비핵화 회담이 거론될 가능성에 대비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핵 무력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 헌법화로 구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올해 우리가 이룩한 성과 중에 가장 큰 성과는 나라의 국가방위력, 핵전쟁 억제력 강화에서 비약의 전성기를 확고히 열어놓은 것”이라며 “우리 식의 위력한 핵 공격수단들과 새로운 전략무기체계 개발 도입에서 급진적인 도약을 이룩”했다고 주장했다. 올해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두 차례 실패했지만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술핵잠수함, 수중 핵 어뢰 등을 새로 선보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핵무력 강화 정책의 헌법화” 문제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고 조선중앙TV가 2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핵무력 강화 정책의 헌법화” 문제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고 조선중앙TV가 2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향후 핵 위협을 급속도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의 고도화를 가속적으로 실현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차대한 문제”라며 “중대 과제는 핵 무력을 질량적으로 급속히 강화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핵무기 생산의 기하급수적 확대, 핵 타격수단 다양화 및 각 군 실전 배치 방침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남한을 또다시 “대한민국”으로 부르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은 일본, ‘대한민국’과의 3각 군사동맹 체계 수립을 본격화함으로써 전쟁과 침략의 근원적 기초인 ‘아시아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끝내 자기 흉체를 드러내게 되였다”고 주장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빌미로 핵 무력 헌법화를 정당화한 것이다.

반미 국가들과 외교 활동을 강화하는 방침도 최고인민회의에서 천명됐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 서방의 패권 전략에 반기를 든 국가들과의 연대를 가일층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러시아 방문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 읽힌다. 김 위원장이 현재 국제정세를 “제국주의 반동 세력에 의해 전 지구적 범위에서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진단한 것과 무관치 않다.

북한은 즉각 반미 국가들을 두둔하는 외교전에 나섰다. 임천일 외무성 부상은 지난 1일 담화에서 북·러 연대 강화에 대한 미국의 비난을 규탄했고, 김정규 외무성 러시아 담당 국장은 지난 2일 담화에서 지난해 9월 유럽 발트해 해저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과 관련해 러시아를 옹호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1일 담화에서 지난달 24일 미국 주재 쿠바 대사관을 향한 화염병 투척 사건을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중국 창건 74주년 축전을 보냈다.

위성 발사를 담당하는 국가우주개발국을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으로 사실상 확대 개편하는 방안도 최고인민회의에서 확정됐다. 홍민 위원은 “향후 러시아의 항공기 기술지원 등 우주와 항공 분야에서 북·러 협력을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이달 중 군사정찰위성 세 번째 발사를 예고한 상태다.

남한 정부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결과에 대해 “한·미·일의 압도적 대응과 국제사회의 공조 하에 제재와 압박을 강화해 북한의 핵 개발을 억제하고 단념 시켜 나갈 것”이라며 “핵 사용 시 북한 정권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