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땅으로’ 투기이동 차단

2002.11.01 18:21

정부가 사실상 수도권 대부분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초강수를 내놓은 것은 부동산 투기열풍이 주택에서 땅으로 번지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올 3·4분기 전국 땅값이 1991년 2·4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뛴 데서 보듯 최근 서울, 경기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개발방안이 결과적으로 땅값 상승을 부추기고 주택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토지시장으로 몰리는 기미가 나타나자 긴급대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왜 지정했나=올해초 ‘1·8 주택시장안정대책’을 시작으로 5차례의 대책을 내놓은 끝에 겨우 집값 상승세를 잡은 정부는 최근 일고 있는 땅값 급등세 때문에 다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다. 지난 8월말 건교부는 하반기 토지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으면서 하반기 동안 전국 땅값 상승률이 1%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같은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3·4분기에만 3.33% 올랐고 서울과 수도권은 평균 상승률의 2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 때문에 이같은 상승세를 방치할 경우 80년대 후반에 겪었던 부동산투기 대란을 다시 겪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된 것이다. 이번에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빠진 곳은 이천, 여주, 가평 등 3개군과 용인·남양주·안성시 일부 지역에 불과해 사실상 수도권 전체의 토지 거래가 정부의 감시대상에 올랐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까지 토지거래허가구역이 개발예정지와 그 주변 등 일부 지역에 제한적으로 지정돼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조치는 그만큼 토지시장이 불안하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사실 지난 ‘10·11 부동산안정대책’으로 집값이 안정세로 돌아섰지만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각종 개발 프로젝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업계 전문가들도 4·4분기 땅값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건교부는 이 때문에 앞으로도 3개월마다 거래동향을 파악해 투기혐의자를 국세청에 통보하는 한편 추가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할 계획이다.

◇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거래할 때는 매수자가 허가신청을 낸 뒤 시·군·구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허가받아야만 거래가 가능하게 된다. 이에 따라 실수요자가 아닌 사람들의 토지 매입이 어려워지게 됐다.

허가를 받아야 하는 면적은 용도지역에 따라 다르다. 매입대상 토지가 주거지역이면 54평(180㎡), 상업지역 60평(200㎡), 공업지역 200평(660㎡), 녹지지역 60평(200㎡), 농지 302평(1,000㎡), 임야 604평(2,000㎡)을 각각 넘으면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건교부 토지정책과 이재영 과장은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허가구역 내에서 토지 매입을 불허한다는 게 기본방침”이라며 “해당 땅을 사야 하는 불가피한 사유를 입증해야 하고 지자체에서 이용목적이나 취득면적의 적정성을 엄격히 심사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토지가 주거용지라면 주거 목적을 입증해야 한다. 무주택자는 무주택자임을 증빙해야 하고 유주택자라면 전근 등의 불가피한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 농지를 구입할 경우에는 영농계획서가 있어야 하고, 임야는 해당지역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또 상업·농업용지는 상가나 공장을 짓는 실수요자임을 납득시켜야 구입할 수 있다.

즉 투기를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하는 것은 최대한 억제하고 실수요자의 토지거래는 면적에 상관없이 허용한다는 것이 이번 대책의 큰 틀이다.

◇지정효과 얼마나 있을까=전문가들은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가수요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전략산업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천안, 아산 등 이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지역들은 지정 이후 거래가 대폭 줄었다”면서 “거래가 침체되면 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도권 신도시 예정지가 발표되기 전 이같은 대책이 나온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서울 강북 뉴타운 개발대상지는 이미 한차례 투기바람이 지나가면서 값이 오를 만큼 올랐기 때문에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거래를 위축시킬 효과는 있겠지만 지방과 달리 강북 뉴타운은 향후 개발이익 등을 고려한다면 거래 없이도 호가 중심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달말 분양을 앞두고 있는 용인 동백지구가 투기과열지구로 추가지정된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올들어 동백지구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청약경쟁률도 높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건설사들이 예상 분양가를 지속적으로 높여왔다”면서 “이번 조치로 실수요자들이 지금보다는 싼 값에 내집을 마련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박경은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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