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재벌향해 ‘뼈있는 권고’

2003.01.02 23:01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일 대기업 구조조정본부의 폐지를 권고하겠다고 밝힌 것은 여전히 우리 재벌의 소유·경영 구조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인수위는 그동안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사왔던 합병식 금융구조조정에 대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를 살펴보겠다고 밝혀 새 정부의 금융구조조정 정책이 현 정부와 차별적인 형태를 보일 것임을 예고했다.

◇구조본 폐지 권고 왜 나왔나=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 폐지를 권고하겠다는 뜻은 새 정부가 재벌의 ‘오너 주도의 문어발식 경영’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동안 대기업은 현 정부의 요구에 따라 그룹 기획조정실이나 비서실을 겉으로는 해체했으나 대신 구조조정본부, 또는 구조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유사한 기능과 역할을 맡도록 했다. 이는 과거 기조실이나 비서실을 통한 선단식 경영의 폐해를 답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인수위의 구조본에 대한 이같은 시각은 현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인 ‘5+3 원칙’과 출자총액제한 등 규제를 유지하겠다는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어서 새 정부는 재벌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재계, “구조본 문제는 신중히 접근해야”=인수위의 구조본 폐지 권고 발언에 대해 삼성·LG·SK 등 대기업들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신중히 다뤄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재계는 DJ정부가 그룹 기조실 폐지를 요구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보고 있다. 여러 계열사들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기조실 성격의 총괄 조직이 어떤 식으로든 필요한데 무리하게 밀어붙여 기업들이 구조본이라는 다른 이름의 변형된 조직을 갖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 구조본 관계자는 2일 “구조본은 오너의 결단과 경영자의 전문경영능력, 구조본의 조정능력 등이 삼위일체가 돼 기업 경쟁력을 배가하는 조직”이라고 밝혔다. SK 관계자도 “그룹의 중국 진출, 사업구조조정 등 계열사 단위에선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곳이 바로 구조본”이라며 구조본이 지닌 순기능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이번에 인수위가 구조본 폐지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기업경영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불필요한 갈등만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는 인수위의 구조본 폐지 방침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고 현 정부에서도 구조본의 존재를 인정하는 측면이 있어 논란이 확산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관측하고 있다.

◇인수위, “대형화 중심 금융구조조정은 재검토”=인수위는 또 합병을 통한 대형화라는 현 정부 금융구조조정 정책의 효율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금융산업의 이른바 ‘규모의 경제’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인수위 경제1분과 관계자는 “은행 대형화 정책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함께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오직 대형화만이 살 길이라며 일방적으로 추진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재 막바지에 이른 조흥은행 매각 및 합병작업은 별 영향이 없겠지만 외환은행 등 다음 순서로 예정된 금융구조조정엔 상당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한편 인수위 경제1분과 이정우 간사는 “경제분야 새 제도들은 성장잠재력 배양과 충돌하지 않는 방향으로 도입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경제 전반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정책을 추구하되 경제활성화에 주는 부담은 최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박구재·김준기기자 jk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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