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감사원

‘권력’에 맞춰 감추고 바꾸고… ‘독립성 훼손’ 자초

2008.10.22 00:36

감사원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정권을 향한 코드 맞추기로 독립기관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훼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공기업 감사를 통해 공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정지작업에 앞장서는 등 ‘코드 감사’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보수단체의 KBS에 대한 국민감사 청구를 즉각 수용한 것은 그러한 논란을 부추겼다. 쌀 직불금 감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감사결과 비공개를 고집하다가 뒤늦게 공개하는 등 ‘권력 굴종’ 비판을 자초했다.

[위기의 감사원]‘권력’에 맞춰 감추고 바꾸고… ‘독립성 훼손’ 자초

[직불금 감사] 감사결과 대통령 사전 보고…비공개도 모자라 자료 폐기

감사원의 ‘쌀 소득보전 직불금’ 감사는 엄격한 독립성이 요구되는 감사원이 권력에 휘둘리면서 스스로 독립성 훼손을 초래했다.

직불금 감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감사원은 2007년 3월 청와대의 요청을 받고 그해 9월로 예정됐던 직불금 감사를 4월로 앞당겼다. 독립성이 생명인 감사원이 거리를 둬야 할 청와대의 요청을 받아 감사 시기를 앞당기면서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초래한 셈이다.

감사결과를 최종 확정짓기도 전에 대통령에게 사전보고를 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열린 감사위원회의에 앞서 지난해 6월20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농정관계 장관회의에서 감사결과를 보고했다. 6월15일에는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보고가 이뤄졌다.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최종 확정짓기 전에 청와대에 미리 보고를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제도 개선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라는 해명에만 급급했다. 결국 직불금 감사를 둘러싼 의혹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빌미가 되면서 감사원을 옥죄고 있다.

감사결과의 비공개 결정이나 감사결과 자료 파기 등 감사 이후 행해진 일련의 조치들도 감사의 기본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26일 감사위원회의에서 감사결과를 비공개키로 결정하고 ‘감사결과 처분 요구서’에도 ‘농림부의 제도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한 가지 내용만 적시했다. 당초 계획됐던 ‘부당 수령한 직불금 환수’는 아예 생략돼 버렸다.

또 같은해 8월1일에는 직불금 부당 수령자 17만명의 명단을 폐기했다. 감사결과를 뒷받침하고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본 자료를 모두 폐기한 것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조치다. “감사를 위해 확보한 자료는 추후 확인할 수 있도록 증거서류로 보존해야 한다”는 감사원법에도 맞지 않다. 이 때문에 직불금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을 확인하고도 감사원이 제도 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감추는 데만 급급해 제도 개선을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시 감사원이 직불금제도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강력한 징계와 함께 관계기관의 제도 개선에 앞장섰다면 적어도 제도적 미비점으로 인한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호준기자>

[KBS 감사] 우익단체 청구에 급히 추진…권력의 방송장악 적극 협조

‘원칙’이 실종된 감사원의 위기는 KBS 감사에서 예고됐다. KBS 감사가 시작된 배경, 감사 과정과 결과를 두고 의혹과 석연치 않은 해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감사원은 KBS에 대한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의 국민감사 청구가 들어오기 전인 4월부터 이미 KBS를 감사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뉴라이트 등 우익단체가 5월에 제기한 감사청구 요구에 급조한 ‘코드감사’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KBS는 2007년 12월 작성된 ‘2008년 업무계획’에서 감사대상에 포함됐지만, 다음달 인수위 업무보고에서는 감사대상에서 빠졌고 3월 확정된 연간감사 계획에서도 빠진 것이 확인됐다.

그래 놓고 불과 두 달 뒤 KBS에 대한 감사가 전격 시작됐다.

감사원은 이 과정을 납득시킬 근거를 내놓지 못했다. 국회 상임위 등에서 야당의 추궁이 이어지자 김황식 감사원장이 “간부들이 머릿속에서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웃지 못할 답을 내놓았을 정도다.

KBS 감사를 결정한 감사원 국민감사청구위원회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나왔다. 지난 6일 감사원 국감에서는 “솔직히 KBS가 왜 시민감사 청구로 들어왔냐는 것이다” “5월에 접수된 것 중 왜 이 건만 올라왔는지” 등과 같은 감사위원들의 회의 발언이 속속 공개됐다.

감사원은 감사결과 발표와 함께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면서 적자경영과 인사권 남용을 들었다. 그러나 적자경영 여부를 판단하면서 통상 기준으로 삼는 당기순이익이 아닌 사업순이익을 기준으로 삼았고 감사원이 산정한 액수도 차이가 크다는 이견이 나왔다. 또 현재 정 전 사장에 대한 배임죄 고발의 빌미가 됐던 법인세 환급소송은 범죄 성립 여부를 놓고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감사원의 논리에 결과를 끼워맞추기 위해 자료를 인위적으로 넣고 빼는 일도 있었다.

공개된 5월21일 감사청구회의 회의록을 보면, 국민감사청구위 모 위원은 “(경영실적 박스를)보도자료를 낼 때 뺐으면 좋겠다. 이렇게 되면 ‘정연주 사장 경영 잘했네’라고 보인다”고 말했고, 다른 위원이 “알겠다”고 답변했다.

결국 김 원장은 지난 6일 국감에서 “국민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제공했고 절차상 불미하고 미흡한 것이 있었다”고 자인하고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인숙기자>

[공기업 감사] 민영화 위한 구조조정 앞장…‘이명박사람들’ 임명 터닦기

감사원은 올해 공기업 감사에 대해 공을 들여왔다. 공기업 민영화 등 구조조정을 기치로 내건 이명박 정부를 지원하는 작업이었다. 아울러 공기업에 포진한 ‘노무현 정부 사람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염두에 뒀다. 그 자리엔 결과적으로 이른바 ‘MB맨’들이 속속 낙하산으로 자리했다.

감사원은 지난 3월24일 31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 인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00명을 투입하는 대대적인 사정작업의 시작이었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부조리를 밝혀내겠다는 감사원의 의지는 공기업 개혁에 대한 여론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당 공기업의 반발을 차단하는 포석으로 풀이됐다. 감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감사원은 감사 착수 1주일 만에 예비감사결과를 발표했고, 5월22일에는 최종 감사결과를 공개했다. 300여건의 위당·부당사항이 적발되고 범죄 혐의가 드러난 공기업 임직원 10여명에 대해선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1단계 감사결과 발표 전인 지난 5월6일에는 70개 준정부기관을 대상으로 2단계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달 17일부터는 서울메트로·SH공사 등 54개 지방 공기업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방 공기업 감사에 들어가면서 배경을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지방자치단체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라고 밝혀, 정부의 공기업 개혁작업의 사전정지 작업임을 스스로 확인시켰다. 감사원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감사가 실시된 일부 공공기관을 제외한 모든 기관에 대해 감사 대상에 올려놨다. 규모나 대상 면에서 전례 없는 것이다.

이후 감사원은 감사결과를 잇따라 발표했다. 에너지, 금융, 건설 등 공기업을 ‘업종’별로 묶어서 공기업의 감사결과를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감사원 감사자료는 검찰의 공기업 수사를 위한 ‘자료’로 쓰였다.

감사원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올해 86개 기관에 대해 방만운영 등 514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적발했으며 임직원 76명에 대해 문책을 요구하고 불법행위에 연루된 49명에 대해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공기업에 대한 집중 감사는 ‘기관장 퇴직 압박용’으로 활용됐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감사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표를 제출한 공기업 사장은 모두 79명으로 감사대상 기업 98곳 중 80.6%로 나타났다. ‘빈 자리’의 상당수는 ‘이명박 사람들’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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