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어려워지는 남북관계 볼 때 남편 생각 더 간절”

2010.08.17 22:09

이희호 여사 특별인터뷰|김봉선 정치·국제에디터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88)은 요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 추모 행사로 분주했다. 고령에 바쁜 일정을 감안하면 피곤할 법도 했지만 이 이사장은 꼿꼿했다. 남편인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지만, 민주주의와 남북관계가 화제로 올려지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이 이사장은 “남편이 항상 집안 어딘가에 계시는 것 같다”며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강조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호소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또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남북 모두 6·15 공동선언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정부에 대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강조했다.

이희호 여사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특별인터뷰를 하다 뜨개질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이희호 여사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특별인터뷰를 하다 뜨개질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김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마련한 이 이사장과의 특별인터뷰는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경향신문 김봉선 정치·국제에디터가 진행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다가왔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없는 1년, 이 여사의 삶에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 같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었습니다. 남편이 여러번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도 권력에 굴하지 않고 바른길을 걸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난 1년간 큰 변화는 없었어요. 다만 외로움을 느낍니다.”

- 김 전 대통령의 빈 공간이 가장 크게 느껴졌을 때는 언제인가요.

“남편이 돌아가신 후에도 쓰시던 물건들을 그대로 두고 있어서 그런지 항상 집안 어딘가에 계시는 것 같다고 느껴져요. 방안에 걸린 남편의 사진을 보거나 뜰에 핀 꽃을 볼 때는 더욱 더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뉴스나 신문을 볼 때면 남편이 세계정세에 대해서 말해주던 것이 생각납니다. 특히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는 남편이 살아계시다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지난 10일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그런 날에는 남편을 특별히 기억하게 되죠. 순간 순간 살아계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 자서전을 읽어보신 느낌은 어떠합니까.

“자서전이 나오기 전에 검토를 하면서 읽어보고 출간 후에도 읽어보았는데 특별히 어떤 한 부분이 인상적이기보다는 남편의 일생이 험난하였는데 잘 극복한 것에 대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그 험난한 인생을 어떻게 이겨내었는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남편에 대해 오해하고 계시는 분들이 바르게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쓰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국민들에게 우리 역사를 알리고 양심대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서전을 쓰신 것 같습니다. 전하고 싶은 부분은 생전에 말씀하셨듯이 이 땅에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하며 지켜왔는가에 대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었는가, 진실을 가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을 전하고 싶어하신 것 같습니다.”

- 자서전에 담지 못한 내용이 있습니까.

“생전에 자서전에 대해 검토를 다 하셨기 때문에 담지 못한 내용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량이 워낙 많아서 내용을 일부 축소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의 생전에 책이 출간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이 책을 보셨으면 매우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 해외에서도 자서전 출판 요청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편이 살아계실 때 일본의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 일본어로 번역 중이고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출판될 예정입니다. 그 외에 중국, 미국, 독일과는 협의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 옆에서 본 ‘인간 김대중’은 어떠했나요.

“늘 쉬지 않고, 시간만 있으면 책을 읽으셨어요. 어떤 한 부분에 관해서만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철학, 역사, 소설 등 광범위하게 읽었죠. 남편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을 많이 후회했어요.”

- 김 전 대통령은 1년 전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하셨습니다. 2010년 현재, ‘행동하는 양심’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도 행동하는 양심은 말씀 그대로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것, 무엇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몸소 행동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저는 항상 어떠한 어려움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사회와 이웃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이러한 분들 또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회를 위해 일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 올해는 6·15 남북공동선언 채택 10주년이었습니다. 최근 남북관계, 한반도 상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점점 어려워지는 남북관계를 볼 때 남편 생각이 더 납니다. 살아계신다면 6·15 남북공동선언을 지키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남북 양쪽 모두에게 말입니다. 공동선언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으로 오기로 돼 있거든요. 그러면 그 약속을 지켜야죠.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양곡이 남아요. (정부는) 창고가 넘쳐서 둘 데가 없어 썩혀도 (북한에는)안주겠다는 식입니다. 나는 크리스천인데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어요. 북한은 이념은 달라도 이웃이 아니라 우리 형제거든요. 형제가 굶주리고 있는데 형이 일절 돌아보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무엇보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 정상이 서로 만나서 대화를 하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서로 대립을 계속해봤자 고통받는 것은 한반도의 7000만 민족입니다. 특히 북한의 굶주린 동포들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서로 양보와 대화를 통해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 북한이 지난 4월 이 여사의 북한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요즘 남북관계로 봐서는 저의 방북이 지금은 어려운 환경입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2000년에 방문하였던 창광유치원과 평양산원 등을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그때 기증하였던 의료기기가 잘 사용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때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한번 가게 된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민주주의를 호소했습니다.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십니까.

“유효하다고 봅니다. 남편은 평소 전 세계 어디서도 우리나라 국민만큼 훌륭한 국민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4·19혁명이나 5·18민주화운동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그 분들의 희생을 결코 헛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는 연락하십니까.

“권양숙 여사는 제가 지난 6월 무주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저와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비서진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권 여사가 저에게 건강하길 바란다고 했는데 저 역시 권 여사가 건강하고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의 대화를 주로 나눴습니다.”

- 국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민은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정부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은 바로 주인이 뽑은 일꾼입니다. 주인은 주인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꾼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이 주인이 된 역사는 짧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튼튼한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여러분들께 닥쳐와도 잘 이겨내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남편의 서거 1주기에 애도와 추모를 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