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보수정당만 ‘건국절 띄우기’…국민·언론·학계 “이젠 소모전 멈춰야”

2018.09.03 22:39 입력 2018.09.04 09:58 수정

실익 없는 건국절 논란

‘건국절’은 해마다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행사를 주최한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의도가 담긴 소모적인 건국절 논란은 멈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건국절’은 해마다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행사를 주최한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의도가 담긴 소모적인 건국절 논란은 멈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뜨거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만들며 불쾌지수를 높인 이슈가 있었으니, 해마다 반복되는 건국절 논란이었습니다. 올해도 광복절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에서 다시 불씨를 지폈는데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는 내년까진 아마 불씨가 살아있을 듯합니다. 10년 넘게 시끄러운 건국절 논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 건국절 논쟁, 그 시작은?

건국절 논란은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006년 7월31일자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칼럼을 기고하면서 떠올랐습니다.

칼럼의 주요 내용은 ‘중·고등학교 역사책에 대한민국 건국이란 표현이 없고, (이승만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15일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불행한 사건으로 치부되어 있으니, 대한민국의 새 갑자를 맞는 해부터 광복절을 미래지향적인 건국절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이 전 교수는 몇 해 전 미국 하버드대에서 봤던 미국의 건국기념일 행사를 부러워하며, 대한민국은 모든 나라에 있는 건국절이 없는 나라라고 통탄했습니다.

■ 전방위 건국절 띄우기

뉴라이트 사관 앞세워 건국 찬양
‘임정·광복절 폄하’ 해마다 반복

‘건국절’ 제정을 위한 일사불란한 움직임도 이어졌습니다. 2006년 8월 뉴라이트재단 등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교체하자는 운동을 제안했고, 이듬해 광복절 명칭을 건국절로 변경하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제출(정갑윤), ‘건국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발의(2003년 조웅규 외 22인, 2006년 이강두 외 20인, 2008년 황우여 외 9인) 등 한나라당의 입법도 본격 추진됩니다.

‘대한민국의 새 갑자(60주년)’라 칭했던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올해로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이합니다”라고 아예 못을 박았습니다. 국무총리실 산하 ‘건국 60년 기념사업단’과 민관 합동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가 다양한 사업을 벌였고, 건국 60주년 기념우표도 발행하며 이명박 정부는 2008년을 ‘건국 60년’으로 기념했습니다. 보수언론도 ‘건국 60주년’ 특별기획, 특별사업 등으로 ‘건국 60년’을 기정사실화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건국절 띄우기’는 역사학계와 독립운동·진보단체들, 당시 야당을 중심으로 한 거센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건국 60년 기념사업에 대한 헌법소원 제출과 건국훈장 반납 결의 등이 이어졌습니다.

여론이 악화되자 한나라당은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신설하는 국경일 관련 법률 수정안을 철회하고, 건국절을 선전하는 정부 홍보책자도 거둬들였습니다.

잠잠해지는가 싶던 ‘건국절’ 논란은 2014년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건국절 제정 법안을 다시 발의하며 박근혜 정부에서 재개됐고, 해마다 8월이면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재연되는 상황입니다.

■ 누가, 왜 주장하는 걸까요?

건국절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적극 추진한 인사들의 면면은 중복됩니다. 이들은 ‘1948년 8월15일’ 이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하면서 ‘역사(교과서) 바꾸기’를 추진했던 세력들이기도 합니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포문을 열면, 일명 ‘태극기부대’의 주축과 상당 부분 겹치는 보수단체, 자유한국당(구 한나라당·새누리당) 인사들이 화력을 쏟아붓습니다.

건국절 성사 땐 극우·친일 부역자
독립유공자와 함께 유공자 반열에

겉으로는 1948년 이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강조하지만, 이면에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 후 해방까지의 역사를 축소하고 흔들어 친일행위를 세탁하려는 속내가 감춰져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친일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해방 후 정부 수립 때까지 3년간 주로 반공활동을 하며 건국유공자로 탈바꿈하려는 의도라는 겁니다.

실제로 한나라당이 발의한 ‘건국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2006년, 2008년)을 보면 서북청년단과 같은 해방정국의 극우단체 회원들까지 ‘건국유공자’ 대상에 포함돼 있습니다. 연 540억원 정도의 예산도 잡아놨습니다. 조선인 항일유격대 소탕작전을 펼쳐 <친일인명사전>에도 오른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은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 고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들 뜻대로 건국절이 만들어지면 독립유공자와 극우·친일 부역 논란이 있는 인사가 함께 유공자 반열에 오르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1948년 8월 15일 옛 중앙청에서 열린 정부수립 축하식. ‘대한민국 수립(건국)’ 축하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이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1948년 8월 15일 옛 중앙청에서 열린 정부수립 축하식. ‘대한민국 수립(건국)’ 축하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이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 스스로 무너진 건국절 논리

흔히 건국절 논쟁을 ‘1919년 임시정부 수립 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구도로 생각하지만, 건국절 논란이 불거지기 이전 역사학계에서는 건국절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달 자유한국당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건국절 논란은 역사학계 이슈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건국 기점은 얼마 전 시작된 정치적 이슈에 불과하며, 학문적으로 ‘없는 논쟁’을 억지로 끄집어낸 ‘나쁜 논쟁’”이라고 질타했습니다.

1948년 7월17일 공포된 대한민국 제헌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로 시작됩니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이듬해 10월1일에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지정된 국경일이 개천절,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이었고, 대한민국의 ‘유구한 역사’를 법률로 명시했다”고 설명합니다(경향신문 2016년 8월19일자 26면 보도).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대한민국 역사는 “개천절로부터 시작해 이어지다 일제 침략으로 일시 국권을 잃었으나, 1919년 3월1일 민족 총의를 모아 독립을 선포하고(삼일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주권을 위임받아 영토와 인민을 완전히 수복하기 위해 투쟁한 끝에, 1945년 8월15일 일본을 몰아내고 광복을 이루었으며(광복절), 1948년 7월17일 헌법을 제정함으로써(제헌절) 다시 온전한 국가를 이루었다”는 내용입니다. 아주 선명한 설명입니다.

사실 특정 시기를 건국절로 정하자는 주장은 국익을 위해서도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1910년부터 1919년까지, 혹은 1910년부터 1948년까지의 민족사를 부정하는 ‘건국절 논리’는 독도 영유권 등 영토 갈등에서 일본의 억지 주장을 합리화해 주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10여년 반복되고 있는 실익 없는 ‘정치적 편가르기’에 국민들은, 왜 굳이 건국절이 있어야 하는지 싸늘한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건국’ 시기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으로, 내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으로, 역사적 의미가 담긴 날들을 기념하며 자부심과 일체감을 높이면 좋지 않겠습니까.

논란 초기 건국(절) 추진에 앞장섰던 보수언론들마저 이제는 ‘또 소모적 건국절 논란 … 역사는 역사학계에 맡겨야’ 식의 사설을 싣고 있네요.

■ ‘건국절’ 논란, 더 이상 속지 맙시다

국민들 싸늘·보수언론도 외면 속
한국당 또 느닷없이 ‘불씨’ 지피기

올해도 자칭 보수세력은 대한민국이 1948년 건국된 게 맞다며 느닷없이 ‘건국절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면면히 이어지는 역사를 강조해야지, 우리 역사를 70년으로 줄이다니요.

참, 논란을 촉발한 이영훈 전 교수의 칼럼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모든 나라에 건국절이 있다고요? 아닙니다. 알 만한 나라 중엔 중국과 북한, 일본 정도입니다. 일본의 건국기념일(기원전 660년 2월11일)은 신화에 근원을 두고 있어 한국의 개천절과 비슷한 날입니다. 북한과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고대사가 있는 민주국가치고 건국절이 있는 나라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 전 교수가 그렇게도 부러워하던 미국에는 건국절이 아닌 독립기념일이 있습니다. 파리조약으로 독립을 국제적으로 승인받은 1783년이 아니라 식민지 13개 지역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을 한 1776년 7월4일입니다. 우리의 3·1절에 가까운 날이지요.

※‘송현숙의 만만한 시사’를 시작합니다. ‘어려운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도록, 동시에 차고 넘치는 상식을 전달하겠다는 뜻으로 ‘만만(滿滿)한 시사’라 이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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