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창 전 수석 “문재인 정부 사회혁신 성공으로 완수하겠다”

2020.02.01 14:41 입력 2020.02.01 21:03 수정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59)을 안 지는 오래되었다. 가장 입에 익은 그의 직함은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이다. 지금도 누군가와 대화에서 그가 거론될 때 ‘하 처장’이라는 직함이 습관처럼 나온다. 대선 직후, 그가 청와대에 신설된 사회혁신비서관실의 초대 수석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했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노무현 정부 당시 비서실장 경력과 함께 시민사회수석으로 근무했고, 그 영역을 업그레이드한 것이 ‘사회혁신’이었기 때문이다. 1년 남짓, 그 임무를 수행하던 하 수석은 청와대를 나온 뒤 독일에 건너가 1년을 체류했고, 사회혁신수석이란 직책은 다시 시민사회수석으로 원상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혁신 실험은 실패한 것일까.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물을 기회가 없었다. 설 연휴 전날인 지난 1월 23일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하 전 수석을 만났다. 그는 최근 자신의 독일 베를린 체류 경험을 정리한 책 <하승창의 넥스트 플랜: 도시의 삶을 바꾸는 11가지 도전>을 펴냈다.

하승찬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이 1월 23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제21대 총선 중구·성동을 출마에 앞서 인터뷰하고 있다. / 정지윤기자

하승찬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이 1월 23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제21대 총선 중구·성동을 출마에 앞서 인터뷰하고 있다. / 정지윤기자

-이 시기에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전형적인 정치권 패턴인데, 이미 올해 초에 페이스북을 통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말 심하게 아팠다. 몸살 같은 걸 앓았다. 너무 고민하다 보니까…. 베를린에 다녀와서는 강연을 하고 다녔다. 처음부터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잘 아는 젊은 후배들이 ‘베를린에 살다온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해서 자기들끼리 연락해 구글로 연락처를 공유하더니 뚝딱 행사를 만든 거다. 20~30명 규모로 하기로 했는데 80여 명까지 참가자가 불어났다. 갑자기 강연 같은 것이 되어버려서 나도 부랴부랴 PPT를 만들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재미있다며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하고, 지역에서 알던 사람들이 초대하고 보니 한 달에 10번씩 12월까지 강연을 다녔다. 강연을 다니는 와중에 출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니까 고민이 되었던 거다.”

-출마를 주위에서 권유한 건가.

“현실적인 조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딱히 지역에서 출마를 위한 활동을 해본 것도 아니고, ‘이게 과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할 때가 나름의 정치 영역에 대한 경험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선출직 경험은 또 없다 보니 심각하게 고민했다. 또 그때 청와대 출신이 워낙 많이 출마한다고 하니 그런 경력으로 나간다는 것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586세대의 기회독점 이야기도 많이 되는데, 나 자신이 586이니 ‘청와대와 586’이라는 두 가지에 대해 스스로 성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렇게 결론지었다. ‘세대문제도 마찬가지고 청와대에서 일한 것은 사실인데 내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는 없지 않나.’”

-책 제목을 넥스트 플랜이라 했는데, 유럽에서 보고 들은 것을 타산지석 삼아 한국사회를 바꿔보겠다는 계획인가.

“책에 이야기를 다 담은 것은 아니다. 선거 끝나고 여유가 되면 다시 써볼까 생각도 해봤다. 독일을 매개로 한 내 생각을 담은 것인데, 원래는 한 스무 가지 정도로 정리해보려 했다. 아직 남아 있는 메모가 있다. 이렇게 급작스레 책이 나오게 될 거로 생각 못 했는데….”

-독일에서 보고 배운 것 중에 가장 영감을 얻은 게 있다면.

“딱히 계획을 세워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우선 제일 궁금한 것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것이었다. 그건 한국과 마찬가지로 산업계나 노조를 인터뷰하고 스타트업지원센터 같은 데를 가거나 자료를 뒤적이면 되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도시를 많이 보게 되었다. 재미있었다. 그냥 여기저기 다녔다. 동네에 살면서 100년 된 가게를 수없이 보게 되는데, 도대체 여기는 왜 안 망하는지 그 비법이 궁금했다. 돌아다니면서 얻은 것을 메모하고 체크해봤다.”

-4차 산업혁명은 지난 정부부터 한국에서도 화두였다.

“우리도 문제의식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단속적이었다. 독일에 가서 나름대로 인사이트를 얻은 것은 종합적인 국가발전전략 안에서 논의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부와 자치단체·전문가, 시민사회와 노조가 일상적으로 같이 의논하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다. 그게 독일 정부가 일하는 방식 중 하나다. 앞으로는 정부가 일하는 방식이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정부 들어서 했던 광화문 1번가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숙의토론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독일에 가서 보니 그런 시민참여와 투명성이 정부정책 수립과 집행에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었다. 한국식으로 말한다면 촛불이나 태극기부대만큼 가치나 지향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일상적인 정치 통로가 아직 우리에게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 정부 들어 사회혁신수석실이 신설된 것은 그런 것을 고민하라고 한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오래가지 않고 중간에 나왔다. 그 뒤 이름까지 과거(시민사회수석실)로 돌아갔다. 사회혁신 ‘실험’이 실패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내가 나올 때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은 ‘사회혁신은 이제 의제 세팅이 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해야 할 내 임무는 그 정도면 정리된 것 같다. 사회혁신수석은 시민사회수석을 확장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사회혁신의 틀이 생겼다. 경남이 제일 활발하고, 서울은 원래 하고 있었다. 서울의 경험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의제 혁신은 세팅하고 나왔다. 행안부에 국 단위의 지역혁신정책관이 신설되었다.”

-대통령은 이 정부가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고 누차 강조했다. 촛불이 제기한 과제를 다 해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촛불의제를 다 하진 못했지만, 제주 강정 구상권, 세월호 안산공원 문제, KTX 여승무원 복직 문제 등이 기억난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수색선을 보내는 것까지는 내가 있을 때 어떻게든 했고…. 그런 식의 묵은 숙제들, 남영동 인권기념관은 정말 오래된 숙제였다. 앞서 언급한 광화문 1번가는 이 정부가 인수위 없이 출범해서 국민여론수렴이 어려웠는데 공무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도 나름 새로운 시도였다.”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과 자주 만남을 가졌나. 참여정부 때와 비교해서 대통령의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처음엔 일주일에 두 번 대통령 주재회의를 했다. ‘죽겠다’는 말이 나왔다. 행사까지 해서 대통령하고 일주일 내내 보내는 셈이니까. 다들 ‘너무 많다’는 말을 했고, 대통령도 힘들어했다. 그래서 그 뒤에는 주 1회, 매주 월요일 2시 주례회의로 바뀌었다. 매일 아침 비서실장 주관으로 수석회의가 열린다. 회의를 바탕으로 보고를 하고. 대통령이 전반적으로 상황을 아는 상태에서 특별히 메시지를 내거나 같이 결정해야 하는 사항이 있으면 따로 본다. 초반에는 대통령도 세팅할 것이 많으니까 자주 회의를 했다. 비공식회의도 많았고. 수석이니 부부동반 자리도 있었다.”

-출마하려는 지역(서울 중구·성동을)을 보니 우선 당내 경쟁자부터 쟁쟁한 후보들을 넘어서야 할 듯싶다.

“청와대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처럼 욕을 먹으면 프리미엄이 되나? (웃음) 실은 제가 불리한 지점이 많다. 경쟁 후보들은 몇 년씩 갈고 닦았는데, 도전 결심도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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