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정치·선거개혁 목소리 커지는 이유

2022.12.07 09:43

큰 선거 없는 2023년이 개혁 논의 ‘적기’

여야 초당적 논의, 지역 정치권도 분주

지난 10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2024 정치개혁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 연합뉴스

지난 10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2024 정치개혁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 연합뉴스

[주간경향]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선거제도는 유권자 표의 등가성, 대표성, 비례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거대 양당 체제만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2023년은 큰 선거가 없어 선거제도를 비롯한 정치개혁 전반을 다룰 수 있는 적기이기도 하다.

21대 총선 직후인 2020년 5월, 참여연대는 ‘21대 총선, 유권자의 표는 얼마나 버려졌나’ 이슈리포트를 발간했다. 참여연대는 투표했으나 선거에 반영되지 않고 버려진 유권자의 표(사표) 현황과 득표율에 비례한 의석수 배분(비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21대 총선에서 버려진 유권자의 사표 비율은 43.73%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에 가까운 표가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갤러거 지수를 인용해 분석한 비례성도 현저히 낮았다. 갤러거 지수는 0에서 100까지의 숫자로 산출된다. 지수가 0에서 멀어질수록 비례성이 떨어지는, 즉 불비례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2016년 캐나다 하원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캐나다 민주주의 강화’ 리포트에서 갤러거 지수 5 이하의 선거제도 설계를 권고했다. 독일의 갤러거 지수는 1.95(2017년), 뉴질랜드(2017년)는 2.73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갤러거 지수는 지역구 선거에서 12.02, 비례대표 선거에서 6.72를 기록했다. 현행 선거제도의 불비례성이 현저히 높음을 보여주는 지수다.

불비례성이 커질수록 민의는 왜곡된다. 기후위기, 저출생, 지방소멸, 사회경제적 불평등, 젠더갈등 등 유권자의 삶과 직결된 전환의 의제들이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거대 양당의 정치공방 속에 묻혀버린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개혁이 선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 대표는 “기후위기에 대처하려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해야 한다. 전기생산, 교통, 산업구조, 건축, 먹거리, 폐기물, 농업 등을 바꿔야 하고, 모든 정책의 초점을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와 기후위기 대응에 둬야 한다. 마치 전쟁이라는 위기상황을 맞은 국가가 전쟁물자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기후위기를 막고 대처하는 것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며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이 예측되는데도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적 기득권 세력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지역구 승자독식 선거제도에서는 정책의제, 특히 기후위기와 같은 정책의제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기후위기 문제 해결의 전제조건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초당적’ 정치개혁 논의

지방 소멸, 지역 문제도 마찬가지다.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호남·영남은 유능한 신인 정치인이 나오기 굉장히 어려운 체제다. 사실상 1당 체제인데 그 1당에서 나오는 후보들은 돈과 시간이 충분하고 기존의 틀에 갇힌 정치인인 경우가 많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사람들은 또 전부 수도권에서 정치를 하고 싶어한다”며 “안 그래도 인구구조 때문에 서울·수도권의 정치권력 쏠림이 심한 상황에서 지역의 조직력에만 기대는 인맥위주의 정치는 지방소멸 등 당면한 지역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 위원장은 “지역에 예산 몇억 따와 ‘지역을 챙긴다’고 생색내는 정치가 아니라 적어도 자기가 몸담고 있는 광역자치단체의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선의 정치인이 필요하다. 정치인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을 흔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선거제도가 개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 독점체제는 이 같은 중요한 의제들을 다루고 해법을 모색하기보다 이분법적 대결 구도 속에서 우위를 점하고 반사이익을 누리는 일에 집중한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개혁과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초당적 모임을 만들고 있다. ‘초당적 정치개혁 연속토론회’와 ‘정치개혁 2050’ 등은 정치개혁과 선거제 개혁을 두고 여야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초당적 정치개혁 연속토론회’에는 강민국·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김영배·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의 의원들 46명이 모였다. 지난 9월 27일 열린 첫 토론회 ‘왜 지금 정치교체인가’에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말만 민생이라 하지 경제적 격차, 기후위기, 저출산, 지방소멸, 사회적 안전 등은 모두 다 후순위다. 이런 정치는 미래가 없다”며 “생산적인 경쟁을 하도록 국민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법을 개정하고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 두가지가 정치개혁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11월 18일과 25일에는 각각 광주와 대구에서 ‘승자독식 정치 극복을 위한 정치개혁’을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두 토론회에서는 양당제를 심화하는 현행 소선거구제 개혁 방안으로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 방안과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도 제안했다.

1등만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선거제도 불비례성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등을 한 후보자의 표만 반영되기 때문에 낙선자를 지지하는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거대 정당에만 유리해 유권자의 다양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인 ‘정치개혁 2050’은 좀더 적극적으로 소선거구제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치개혁 2050’은 민주당 이탄희·전용기 의원·이동학 전 최고위원, 국민의힘 김용태 전 최고위원·천하람 혁신위원·최재민 강원도의원, 정의당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문정은 광주시당위원장,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정치개혁 2050’은 지난 11월 29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당 독식과 혐오 정치를 끝내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선거법, 그중에서도 소선거구제 폐지가 가장 급선무”라며 “양당 기득권을 보호하는 소선거구제가 계속 유지된다면 우리 정치,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는 절망만 남을 것이고 내가 더 잘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더 못하기만을 기다리는 정치만 남아 어려운 민생 담론 대신 쉬운 증오 경쟁에 몰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11월 29일 광주시의회에서 ‘정치개혁 2050’ 정치인들이 모여 소선거구제 폐지를 주장했다.  / 이탄희 의원실 제공

11월 29일 광주시의회에서 ‘정치개혁 2050’ 정치인들이 모여 소선거구제 폐지를 주장했다. / 이탄희 의원실 제공

지역정치권에서도 정치개혁 논의 활발

지역정치권에서도 전에 없이 정치개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영남·호남에서 사실상 국민의힘·민주당의 1당 체제가 장기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정치개혁은 지역에 더 절실한 의제라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역도당위원회 차원에서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한 것은 처음이다. 이영수 경북도당 정개특위 위원장(더불어민주당 경북 영천·청도 지역위원장)은 “지역도당 차원의 정개특위는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이 원내 국회의원들이 법 개정 등을 통해 결정하는 문제이다 보니 원내 의원이 없는 민주당 대구·경북 지역의 정치인들은 정치개혁의 마음은 절실하지만 뭘 할 수가 없었다. 그 전까지는 좀 떨어져서 봤다면, 최근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헌신했던 허대만 전 경북도당위원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지금의 정치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절박한 상황에 불을 지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특위를 구성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경북도당 정치개혁특위는 두가지 축으로 정치개혁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의 원외위원장 활동을 제한하는 현행 정당법을 개정하고 지역구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방향이다. 이영수 위원장은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석패율제 등 다양한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 중이다. 경북도당에서 특정한 선거제도 개혁안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먼저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고 이를 큰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본다”라며 “무엇보다 지역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표의 등가성이 확보되는 선거제도여야 한다. 총선의 경우 경북은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이 20% 정도 나오는데, 그렇다면 당선자가 3명 정도는 나와야 한다. 현행 선거제에서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도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시작했다. 570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돼 2017년부터 활동해온 ‘정치개혁공동행동’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조직을 정비해 690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을 최근 꾸렸다.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은 지난 10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1대 총선에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그 취지가 훼손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회가 아닌 국민적 대화를 통해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위성정당’ 출현 등 지난 선거제도 개혁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2022 다른미래 네트워크’가 주최한 ‘시대교체와 우리의 과제’ 포럼에서 이관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정치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연구원은 “우리는 현재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모두 불만을 나타내지만, 대안적 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는 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지난 총선을 앞두고 논의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해 “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특정한 후보자가 아니라 정당을 선택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에 대한 합의가 있는지는 더욱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지난 선거제도 개혁의 실패는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면 유권자들이 위성정당을 용납하지 않았을 테고 위성정당을 만든 정당은 패배했을 것이다.

국회 정개특위도 활동 시작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면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도 본격적으로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11월 23일 국회 정개특위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개혁 5대 법안’을 제안했다.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기후위기대응특위를 국회 상설특위로 설치하는 ‘미래국회법’, 국회 의장단 후보자를 등록하게 하고 후보자가 단수일 경우 무투표 당선 조항을 넣어 법정 시한을 엄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책임국회법’, 국회의원은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의원 본인과 그 이해관계자가 보유한 주식 전부를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도록 하는 윤리국회법, 국회 국민동의청원과 관련해 자동 상정과 예외 단서와 심사기한 무기한 연장 조항을 삭제하고 공청회 개최를 의무화하는 시민국회법, 교섭단체 요건을 20석에서 5석으로 완화하는 공정국회법 등이다. 심 의원은 5대 법안을 제안하게 된 배경에 대해 “개혁을 주도해야 할 국회의 신뢰도는 대한민국 모든 기관 중 최하위”라며 “개혁의 첫 단추는 국회의 개혁을 통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국회 개혁 5대 법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개혁의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개특위는 12월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정개특위는 여야 합의에 따라 2023년 4월 30일까지 활동한다. 논의안건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권한 폐지 검토 ▲국회의장단(후반기) 선출 규정 정비 ▲예산 결산 관련 심사기능 강화 ▲상임위원장 배분 방식 ▲상임위원회 권한·정수 조정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제도 보완 ▲교육감 선출방법 개선 ▲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 ▲지역당(지구당) 부활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 중심의 공직선거법 개선 ▲기타 여야 간 합의 사항 등으로 제한돼 있다. 정개특위위원장인 남인순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거론된 안건 외에 여야 간사 간에 합의를 하면 논의 테이블에 올라올 수 있다. 소선거구제 폐지는 논의 안건은 아니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결합한 법안들이 올라오면 정개특위에서 논의할 수 있다. 지금 그런 법안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은 입법의 영역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스스로 정치적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여론의 동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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