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침몰엔 두 상임위원의 ‘활약’이 있었다

2023.11.05 08:30

고발장이 접수됐다. 내용은 인권위 상임위원의 ‘직무유기’. 그는 석 달간 소위원회를 열지 않았다. 밀린 건 수만 218건이다. 인권위원은 총 11명.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명의 상임위원과 4명의 비상임위원이 바뀌었다. 자질 논란이 이는 상임위원의 주요 경력은 검사. 회의록엔 “개판 오분 전” 같은 막말만 넘쳐난다. 소수자를 보듬던 인권위는 이제 없다. 인권위의 존재가치가 희미해져 간다.

인권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날 열린 제15차 전원위원회 의결 예정인 ‘인권위원 제출 접수보고 및 결정의 건’에 대해 소위원회 위원 1인만 반대해도 안건을 기각시킬 수 있도록 하는 운영규정 개정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인권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날 열린 제15차 전원위원회 의결 예정인 ‘인권위원 제출 접수보고 및 결정의 건’에 대해 소위원회 위원 1인만 반대해도 안건을 기각시킬 수 있도록 하는 운영규정 개정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간경향] 11월 2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장이 접수됐다. 피고발인은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다.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은 차관급 공직자다. 고발장에 적힌 그의 범죄사실은 ‘직무유기’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침해1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난 8월 1일 이후 3개월 동안 소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음으로써 “진정은 이를 접수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운영규칙 제4조 제1항을 위반한 혐의다.

고발장의 고발인은 ‘인권운동가’ 박래군으로 돼 있다. 고발을 대리한 김원규 변호사는 “전형적인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판례를 보면 공무원이 게으름이나 태만으로 자기 업무를 방치하는 경우를 법적인 직무유기라고 보지 않는다. 이 경우는 게으르거나 태만해 안 하는 것이 아니고 고의적으로 직무를 안 하는 것이다. 직무유기죄로 처벌받는 것이 마땅한데 판단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할 것이다.”

직무유기로 고발당한 인권위 상임위원

8월 1일 이후 인권위 침해구제1소위 활동은 현재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인권위 측 집계에 따르면 11월 2일 현재 누적된 건수는 218건. 발단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제기한 ‘경찰의 수요시위 방해에 대한 부작위’ 진정 사건 심의였다.

8월 1일 열린 소위원회에서 김용원 상임위원과 김종민 위원이 ‘기각’ 의견을 냈고, 김수정 위원은 ‘인용’ 의견을 제시했다. 1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원 위원장은 기각결정을 선언했고, 김수정 위원은 의견이 엇갈린 경우 소위원장이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바로 반박했다. 근거는 인권위법 제13조 제2항의 “소위원회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조항이다.

그동안 인권위는 인용이나 기각 결정 모두 이 조항을 적용해 소위원회를 운영해왔다. 즉 소위원회 3인이 의견일치를 보지 않으면 전원위원회에 넘겨 처리해왔던 것이 ‘관례’다. 그런데 그런 관례가 깨지면서 빚어진 파행이 3개월 넘도록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는 감사원, 중앙선관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과 같은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다른 기관들과 차이가 있다면 독립성이 좀더 강조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인권위 조직법을 바꿔 대통령직속기구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안팎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어느 정부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관이다. 대통령실을 비롯, 정부기관의 특정행정 행위에 대한 ‘권고’를 하는 조직의 특성상 독립성이 필수적이라는 평가가 영향을 미쳤다.

인권위의 결정은 인권위원장을 비롯, 11명 인권위원의 판단으로 내려진다. 전원위원회 안건은 인권위원들의 표결로 처리한다. 보통 인권위원 과반인 6명의 동의를 받으면 대부분 통과된다. 임기 3년의 인권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대통령이 4명, 대법원장이 3명, 국회가 4명을 지명한다. 국회지명 4명은 여당몫 2명과 야당몫 2명으로 나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명의 상임위원과 4명의 비상임위원이 새로 임명됐다. 인권위 안팎의 관계자들 주장에 따르면 문제는 지난해 10월 이충상 상임위원, 그리고 올해 2월 김용원 상임위원 임명을 계기로 두드러졌다. 특히 두 상임위원의 돌출발언·막말 수위가 상식선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상식선을 넘어선 일부 위원의 막말 실태

기자는 지난 10월 30일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를 방청했다. 배포된 방청안내지를 보면 이날엔 비공개 의결안건으로 ‘인권위원 제출의안접수보고 및 결정의 건’이 잡혀 있었다. 안내문만 보면 ‘인권위원 제출 의안’이 무엇인지, 누가 제출했는지 알 수 없다.

‘인권위원’이 제출한 의안이 뭔지는 10월 27일 인권위 노조가 낸 ‘인권위원께 드리는 의견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노조가 인권위원으로부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안건은 ‘소위원회 의결정족수 안건’이었다. 앞서 김용원 위원이 정의연 진정 사건을 기각하면서 내놓은 법 해석이다. 차제에 3명의 인권위원 참여로 구성되는 소위원회에서 한명만 기각의견을 내도 기각된 것으로 하자는 내용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인권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15차 전원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의결예정인 ‘인권위원 제출 접수보고 및 결정의 건’에 대해 소위원회 위원 1인만 반대해도 안건을 기각시킬 수 있도록 하는 운영규정 개정을 비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인권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15차 전원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의결예정인 ‘인권위원 제출 접수보고 및 결정의 건’에 대해 소위원회 위원 1인만 반대해도 안건을 기각시킬 수 있도록 하는 운영규정 개정을 비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10월 30일 전원회의를 앞두고 인권위 앞에서 인권·시민단체들의 긴급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이른바 ‘자동기각’ 운영규칙 개정은 인권위의 소멸”이라며 “인권위 의미를 없애는 운영규정 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전원회의장 입구에서 “규칙개정안 철회와 사태에 책임이 있는 김용원 위원 사퇴”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전원회의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이 의안이 접수된 것을 모든 인권위원이 알고 있다. 운영지원과장이나 사무총장이 접수보고할 필요도 없는데 마치 사무총장이 꼭 접수를 해야만 심의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해놨다.”

이충상 상임위원의 말이다. 위의 ‘인권위원 제출의안접수보고 및 결정’건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인권위원이 작성한 안에 표지만 덧붙이는 식으로 ‘아무런 권한도 없고 개입할 여지가 없는’ 사무총장이 관여한 것은 “자신이 인권위원들의 상관인 것처럼 하는 무식하거나 오만방자한” 행동이며 “그에 대해서는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며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 사무총장과 운영지원과장은 그 자리에서 비켜야 한다”고 반복해서 주장했다.

3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전원회의에서 일부 위원들의 ‘선을 넘는’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한 인권위원은 회의진행 발언에서 “공개된 공식회의 자리에서 사무총장에게 ‘오만방자하다’와 같은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을 제지하지 못한 데 대해 같은 인권위원으로서 사과를 드린다”라며 “다른 인권위원도 타인에 대한 그런 언동에 대해선 경각심을 가지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다 못한 송두환 인권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위원장으로서 위원들께 당부말씀을 드리고 싶다. 누구에게 무식하다, 오만방자하다,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방청인들도 지켜보고 있는 회의다. 회의의 품위나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의 무게에 대해 위원님들이 더 엄격하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정제되지 않은 말은 그러나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법조인 출신 한 인권위원은 송 위원장에게 “작은 법원의 원장만 해봐서 잘 모르실 텐데”라고 말했다. 헌법재판관과 소장대행을 지낸 송 위원장의 판사경력이 상대적으로 짧다고 충고를 가장해 얕잡아 보는 인식을 내비친 발언이었다.

심지어 또 다른 위원은 자신이 위원장이라도 된 듯 “자, 그만합시다. 제가 물러나겠고요. 본안 안건 반대하는 분은 안 계시는 것 같다”라며 월권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기자의 뒤에 자리 잡은 인권위 직원들 사이에선 탄식과 함께 씁쓸한 웃음이 일었다.

“내가 얼굴이 뜨거워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결국 자기 얼굴에 침뱉기다. 저 사람들과 똑같이 되진 말자고 속으로 되뇌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인권위 관계자의 말이다.

“침해소위 자동기각 건 이후 3개월째 회의를 안 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기 말을 따라하지 않았다고 국과장 교체를 요구하면서 안 하고 있다. 그것도 말이 안 되지만 22년 동안 인권위가 했던 일을 순식간에 독자적으로 소위원장이라는 사람이 망치를 두드리고 나가고, 위법하다는 직원들에게 위법한 통지하지 말라며 인권위가 낸 보도자료를 ‘허위공문서’라고 주장했다. 김용원 위원이 낸 의견서를 읽고 경악했다. ‘위원장이 위법한 행위에 가담했다’라고 적었더라. 아니 상식적으로 위원회 수장으로서 여러 가지를 살피고 문제가 된다 싶으면 수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인데, 그 역할을 했다고 불법 행동에 가담했다고까지 주장을 하니….”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23년 제15차 전원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23년 제15차 전원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한 편의 무협지’ 같은 인권위 회의록

그는 “공개된 회의가 그 정도인데, 공개되지 않은 회의는 어느 정도일지 상상해보시라”며 “최근 2~3개월치 회의록을 구해 읽으면 마치 한 편의 무협지를 보는 듯한 느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는 국회운영위 홍익표 의원실을 통해 최근 열린 국가인권위 상임위원회·전원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발언이 상당했다.

예컨대 지난 9월 11일 열린 13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김용원 위원은 “위원장님께서 회의를 진행하셔야지 본인의 주관적 견해를 자꾸 중언부언 말씀하시면 적절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위원장의 권위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이날 군 의문사 유족 방청객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이충상 위원은 또 이렇게 발언했다.

“위원장님이 자꾸 사무처를 끼고 도니까 이렇게 됐습니다.”, (유가족 방청객 항의에 대해) “당장 퇴장시키세요! 위원장님 말씀 안 하고 있으니까 지난번에 다시 기어들어왔습니다. 퇴장시키세요! 발언권도 없어요!”

회의록을 검토하다 보면 이들 위원의 발언 중 “위원회가 개판 오분 전이 됐다”, “<봉숭아학당>도 아니고…”와 같은 발언도 눈에 띄었다. 의문은 정작 위원회 회의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당사자가 과연 누구일까라는 점이었다.

“문제는 자기가 저지른 어마어마한 모욕적인 발언에 대해 일체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인권적 자질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나 정당 추천을 받아 임명되는 현행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김용원 상임위원에 대해 고발장을 낸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이사의 말이다.

다시 의문은 일각에서 ‘인권적 자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까지 평가하는 인사를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인권위원으로 추천했을까 하는 점이다.

부산 출신의 김용원 상임위원은 사법연수원(10기) 이후 검사로 재직했다. 김 위원의 대표경력 중 하나는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검사다(인권위 홈페이지의 상임위원 주요 경력에도 나온다). 사건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브레이크 없는 벤츠>라는 책을 써내기도 했다.

검사 옷을 벗은 김 위원은 정치에 뛰어들었다. 1996년 부산 영도 무소속 출마부터 시작해 여야를 넘나들며 출마했으나 거듭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2020년에는 부산 중·영도구 더불어민주당 예비경선에 참여했다가 당시 김비오 후보와 경선에서 패했다(당시 지역구 당선자는 미래통합당 황보승희였다). 그러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그는 ‘공정과 상식을 위한 국민연합 부산본부’의 대표발기인으로 나섰다.

인권위 안팎에서는 김 위원이 “내년 총선에서 부산 중·영도구 재도전 의사가 강하다”는 말이 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명의의 한가위 플래카드를 건 것이나, 10월 13일 열린 ‘영도다리 축제’에 연차를 내고 참석한 것을 두고도 말이 나온다.

논란에 대해 김 위원은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정식 선거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가서 참석하면 잘못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나는 연가 쓰는 날 빼면 오전 9시 전에 출근해 일하는 사람”이라며 “출마할 거면 빨리 나가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던데 인권위원 하면 행사에 참석하면 안 되고 인권위에 처박혀 인권 타령만 해야 하나, 웃기는 소리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부산 영도구에 내걸린 김용원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의 한가위 인사 현수막/국가인권위 내부게시판

지난 추석 연휴 기간 부산 영도구에 내걸린 김용원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의 한가위 인사 현수막/국가인권위 내부게시판

회의록을 살펴보면 윤석열 정부 들어 임명된 두 상임위원과 그에 동조하는 위원들이 주로 구사하는 논리가 있다. 법조문의 해석이나 대법원과 같은 다른 기관 운영 사례를 예시로 들며 인권위 운영방식을 공격한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대부분 율사 출신이거나 헌법학 등 법학 전공자들이라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박래군 이사는 인권위 초창기부터 계속 지적돼오고 있는 ‘인권위 법조화’ 문제부터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야를 막론하고 인권위 구성에서 변호사나 판·검사 출신 법조인을 중시하면서 인권 문제가 인권적 관점보다는 실정법적 관점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실정법에서 인권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법을 개선하라고 권고해야 하는데 법조인은 아무래도 법의 안정성, 안정적 테두리 내에서 사고하는 것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인권현장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반영하지 못한다. 국제적 흐름도 따라가지 못한다. 예컨대 소수자 문제 같은 것이 인권의 범주 내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봉쇄돼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인권위가 또다시 무슨 사법기관처럼 돼버리니까 ‘인권위나 법원이나 그게 그거다, 그렇다면 뭐하러 굳이 인권위가 있을 필요가 있냐’는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사실상 법조인 일색으로 인권위가 운영되는 것은 비엔나인권대회에서 정한 ‘국가인권위 구성은 다양성의 원칙으로 구성돼야 한다’는 <파리원칙> 위반”이라며 “인권위 구성이 갈수록 법조인 위주로 구성되는 것은 인권위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의 추락’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는 1552호 <주간경향> 표지

‘인권위의 추락’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는 1552호 <주간경향> 표지

인권위 상황, 앞으로가 더 문제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인권위의 상황이 개선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인권위원들의 남은 임기를 보면 윤석희 인권위원이 내년 2월, 김수정 인권위원이 내년 8월까지다. 두 위원 모두 대법원장 추천으로 임명된 사람이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의 임기도 내년 9월 초까지이고, 남규선 상임위원의 임기도 내년 8월까지다.

문제는 이들이 물러난 후에 오게 될 인권위원의 ‘인권적 자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권위 안팎에서는 여의도식으로 말하자면 현재 5(야당) 대 6(여당)으로 역전된 인권위 구도가 심하면 민주당 추천 인권위원 2명만 고립된 2 대 9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인권위는 집권한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구성되는 것이 현실이다. 인권은 고상한 것이니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다는 것은 헛소리고 위장된 허위주장이다.”

11월 1일 주간경향과 통화한 김용원 상임위원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바꿔 말하면 지난 5년간 문재인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좌파이념과 진보이념이 득세했고, 진보좌파 이념도 아니면서 집권한 좌파 정치진영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인권위가 굉장히 편향적으로 운영돼왔다. 지금도 똘똘 뭉쳐 있다. 웃기게도 자기를 임명한 사람들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나뉘어 있다. 말하자면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김 위원에게 “그렇다면 진영논리에 따라 편을 가르고 있으니 김 위원도 임명권자에 맞춰 한 편에 서 인권위 활동을 하겠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김 위원은 이렇게 답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법과 상식에 따라 하자는 것이다. 법령에 따라 하면 된다. 인권침해 진정 사건과 관련해서도 소위원회 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전원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다만 ‘3인 이상의 참여와 찬성으로 의결된다’고만 돼 있다. 전원위원회 회부가 관례라고 하는데 국회가 법률 개정을 해서 인권침해 진정 사건에서 의견일치가 되지 않으면 전원위원회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면 간단하다.”

이충상 위원은 기자와 통화를 거부하며 카카오톡과 문자로 질문하라고 했다. 이 위원에게 카카오톡 문자로 ‘사무처와 관계가 좋지 않은 것 같다’며 10월 30일 전원위에서 한 자신의 발언 맥락과 현재 그에게 제기돼 있는 ‘국가기관의 상사에 의한 직원의 인격권 침해’ 진정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회의 끝난 지 48시간 이상 지난 후에 생뚱맞게 질문을 제기하는 동기가 불순하다. 박진 사무총장 및 그 추종자인 인권위 직원들과 정 기자님 사이의 전화, 문자, 카카오톡을 조사하면 하청취재인 것이 드러날 것이다.”

‘하청취재라는 말은 모욕적인 발언’이라는 기자의 대답에 “박진 총장 및 그 추종자인 직원들의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라며 “내가 아니라 정 기자가 허위사실에 기초한 모욕적인 질문을 나에게 했다”라고 응수했다.

인권위 상임위원·전원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한 홍익표 의원은 “이충상·김용원 위원의 발언을 보면, 인권위원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며 “차제에 인권위원 인선 과정에서 공개적인 검증시스템을 마련하고, 위원 구성의 다양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완 소장은 “내년 총선에서 대통령 독주를 견제하는 등의 정치상황 변화가 없다면 후퇴하는 인권위 상황을 막고 인권위를 정상화시키는 일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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