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도 실업도 4년제도 못간 40명 축구선수들의 ‘패자 부활전’

2013.02.01 21:08 입력 2013.02.02 00:08 수정

횡성서 꿈 키우는 송호대 축구부

강원도 횡성군 외진 곳. 상처받은 어린 축구선수들이 꿈을 키우는 곳이 있다. 2년제 전문대학교 송호대학교 축구부다.

이곳에는 총 40여명의 선수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4년제 대학교를 가지 못하거나 프로 또는 실업팀 취업에 실패한 스무 살 안팎 어린 선수들이다. 이들에게 송호대학교 축구부는 마지막으로 축구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곳인 동시에 선수로 못다 이룬 꿈을 이룰 수 있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송호대학교 축구부는 2009년 창단됐다. 축구를 좋아하는 당시 김병학 학장이 창단을 결심했고, 대구 FC 코치 출신인 하성준 감독이 초대사령탑을 맡았다. 송호대학교에는 4년제와 다른 게 있다. 바로 시간이다. 4년제 대학교 축구부는 4년 동안 팀을 만들 수 있지만 송호대학교는 2년 안에 해야 한다. 그것도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아닌 어린 나이에 진학 또는 취업 실패라는 쓰린 맛을 본 지극히 ‘평범한’ 선수들이 모여서 이뤄야 한다.

하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전국 평균으로 치자면 50% 이하가 대부분”이라면서 “이들을 선수로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훈련뿐”이라고 말했다.

송호대 축구부 선수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좌절을 경험하는 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군대생활을 미리 한다”는 생각으로 강원도 횡성 산골짜기로 찾아들었고, 그곳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송호대 축구부 선수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훈련에 앞서 달리기로 몸을 풀고 있다.   횡성 | 이석우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송호대 축구부 선수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좌절을 경험하는 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군대생활을 미리 한다”는 생각으로 강원도 횡성 산골짜기로 찾아들었고, 그곳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송호대 축구부 선수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훈련에 앞서 달리기로 몸을 풀고 있다. 횡성 | 이석우 기자

▲ 여기서 포기 땐 끝장이란 각오로
“마지막 디딤돌 딛고 뛰어오르자”
하성준 감독 지도 아래 지옥훈련
1·2학년대회서 우승 거두기도

송호대학교 축구부 훈련은 강도가 세기로 소문나 있다. 하루 세 번 훈련은 기본이다. 오전 체력훈련, 오후 전술훈련 그리고 야간 웨이트트레이닝. 하루 훈련시간만 7~8시간이다. 2학년 골키퍼인 나승학은 “고등학교 때 일주일 동안 한 훈련을 여기서는 하루 또는 이틀이면 다 한다”고 했다.

고된 훈련으로 인해 신입생인 경우에는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훈련 강도가 워낙 세다 보니 늘 10여명 안팎의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강한 훈련만이 자신들이 다시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쉼없이 이어지는 지옥훈련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 감독은 박종환 감독의 공인받은 수제자다. 체력과 집요함, 전투정신이 요체인 박종환식 축구가 송호대학교의 트레이드마크다. 하 감독은 “기술이 부족한 선수들을 데리고 성적을 내려면 강한 체력을 앞세워 상대보다 더 뛰면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사단이 추구했던 것과 비슷하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 초기부터 끝까지 체력훈련을 가장 강조한 것처럼 하 감독도 체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원시적’이지만 송호대학교의 체력 축구가 벌써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송호대학교는 2009년 추계 1·2학년대회에 8강에 올랐고, 2010년 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대회에서 정상에 섰다. 지난해 아쉽게 2연패에 실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전문대학교 축구부 중 단연 최고다.

그리고 3·4학년까지 모두 참가하는 2010년 전국추계대학연맹전에서도 8강에 오르는 등 4년제 대학교 축구부와도 당당히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송호대 축구부는 요즘 한물 간 것으로 취급받는 맨투맨 수비를 지금도 즐겨 쓰고 있다.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에게 맞추는 게 최고 전술이고, 전술은 어차피 돌고 돈다”는 게 하 감독의 지론이다. 맨투맨 수비를 잘하려면 상대보다 더 오래, 더 많이, 더 빠르게 뛰어야 한다. 하 감독은 “지금 대세인 지역수비는 상대 선수들보다 뒤쪽에서 지역을 지키면서 수비하지만 우리는 모든 선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고 말한다.

또 공이 뒤로 빠져 위기를 맞을 때에 대비해 수비수 한 명은 꼭 뒤로 처져 있게 한다. 지금은 구시대 축구라고 해서 좀처럼 쓰지 않는 스위퍼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게 송호대학교에는 전술의 핵심이 됐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맨투맨 수비에 다른 팀들은 “정말 짜증나고 질린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강한 훈련뿐만 아니라 군대를 방불케 하는 규칙적인 생활도 선수들을 더욱 단련시킨다. 축구와 같은 단체 스포츠는 규율과 절제가 균형을 이뤄야 잘할 수 있다. 히딩크 감독도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선수들에게 휴대폰을 빼앗았다.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식사하는 걸 못하게 했고 쓸데없는 개인행동을 철저하게 금지시켰다.

송호대학교 축구부원들도 시간준수, 복장통일, 행동일치 등 모든 면에서 히딩크 사단과 비슷하다. 이런 기본적인 규율을 지키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하고 숙소 무단이탈 등을 할 경우에는 축구부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스무 살 안팎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을 어린 선수들에게 시골인 강원도 횡성에서의 삶은 마치 도를 닦는 것과 같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해도 택시부터 먼저 타야 한다. 주변에 놀 수 있는 곳이나 즐길 데라고는 아무 곳도 없다. 휴가도 한 달에 두 번밖에 없다.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주장 박승우는 “군대생활을 미리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축구를 포기하면 완전히 끝장이라는 각오 없이는 견디기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힘겨운 하루하루 일상에서 그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기에 어린 선수들은 괴로운 훈련을 묵묵히 이겨내고 있다.

2년 동안 말 그대로 ‘죽었다고 복창하고’ 잘 견딘 선배들은 상지대·홍익대·관동대·청주대 등 4년제 대학교로 편입하기도 하고, 강릉시청·용인시청 등 실업팀과 강원 FC에 들어가도 했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이 송호대학교 선수들의 생각을 바꿔놨다.

골키퍼 나승학은 “입학 당시에는 창피해서 송호대를 다닌다고 말도 못했는데 지금은 자부심이 생겨 당당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를 잠시 그만두기도 했다는 박승우는 “규칙적인 생활과 강한 훈련을 하다 보니 자기관리도 잘되고 기량도 좋아지고 있다”면서 “지금은 4년제 대학교 축구부에 들어간 친구보다 내가 더 발전한 걸 몸으로 느낀다”며 웃었다. 안산 초지고를 졸업한 신입생 김정현은 “키가 작고 몸싸움에서 약하다 보니 나를 받아주는 4년제 대학교가 없었다”면서 “여기에서 죽을 각오로 훈련해 몸을 더 강하게 만든 뒤 프로로 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런 어린 선수들의 순수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하 감독이다. 그건 하 감독이 선수 시절 많이 겪어 봤던 아픔이기도 하다. 하 감독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자신을 받아줄 팀이 없어 일반병으로 군대에 갔다. 그리고 2년 넘게 군복무를 한 뒤 우여곡절 끝에 목포항운이라는 실업팀으로 들어갔고, 서울시청을 거쳐 프로구단 성남 일화에까지 진출했다.

하 감독은 “나도 어려운 선수 시절을 보냈고, 그 과정에서 꿈을 잃지 않고 결국 프로까지 갔다”면서 “어린 나이에 축구선수로 실패한 마음을 내가 직접 느껴보았기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말했다.

송호대학교는 다음달 춘계대학연맹전에 출전한다. 춘계연맹전은 3·4학년들까지 모두 출전하는 대회다. 참가하는 학교가 송호대학교엔 모두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다. 조별리그 4개팀 중 2위에 올라 예선을 통과하는 게 1차적인 목표다.

그러나 예선만 통과하면 송호대학교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4년제 대학교 선수들보다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싶은 강한 욕망. 누구도 억제할 수 없는 강한 욕망이 어린 선수들의 가슴 한복판에 자리하면서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신입생 김정현은 송호대학교 축구부를 이렇게 표현했다.

“남들은 우리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한다고 해요. 그러나 여기는 다른 잡생각 없이 축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곳이에요. 사람들은 이곳을 지옥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이곳은 천국입니다.”

가슴에 상처를 하나씩 안고 시골로 찾아든 송호대학교의 어린 선수들. 어느 시인의 시처럼 그들에게 지금의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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