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라오스 야구의 역사적 첫 승, ‘헐크’가 울었다. 라오스의 항저우 야구도, 이만수의 20년 프로젝트도 계속된다

2023.09.28 12:46 입력 2023.09.28 14:06 수정

라오스 야구 대표팀의 스태프 총괄 자격으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이만수 전 SK 감독이 27일 싱가포르전을 앞두고 중국 항저우 사오싱 야구 소프트볼 스포츠 센터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항저우 ㅣ 문재원 기자

라오스 야구 대표팀의 스태프 총괄 자격으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이만수 전 SK 감독이 27일 싱가포르전을 앞두고 중국 항저우 사오싱 야구 소프트볼 스포츠 센터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항저우 ㅣ 문재원 기자

라오스 2루수가 싱가포르 마지막 타자의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받아냈다. 그걸로 경기는 끝났다. 8-7. 라오스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역사적인 첫 승을 거뒀다.

그라운드 위 9명이 벅찬 표정으로 한데 모여 서로 부둥켜안았다. 더그아웃에 앉아있던 나머지 9명의 선수도 모두 뛰쳐나왔다. 한국에서 온 ‘야구 스승’도 함께 뒹굴었다. 선수들이 세 번 그를 헹가래 쳤다. 1980년대 한국 야구 최고의 스타, 지금은 ‘라오스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만수 전 SK(현 SSG) 감독이 하늘 위로 높이 날았다.

타격 3관왕보다, WS 우승보다 더 벅찼던 첫 승

라오스가 27일 중국 저장성 샤오싱 야구소프트볼센터 경기장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예선에서 싱가포르를 꺾었다. 경기 전 라오스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이 전 감독을 미리 만났다. 경기가 끝난 후 한 차례 더 통화했다. 이 전 감독은 라오스 대표팀 총괄 스태프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5년 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으로 대표팀과 함께했다.

이 전 감독은 “경기를 보는데 쫄깃쫄깃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정말 가슴이 멎는 줄 알았다”고 했다. 현역 시절 타격 3관왕을 차지하고 홈런 기록을 세울 때도 울지 않았고, 메이저리그 코치 시절이던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8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울지 않았던 ‘헐크’가 이날은 홀로 코치실에 남아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승리가 값졌다. 모든 게 다 낯설고 어려웠던 지난 세월도 떠올랐다.

라오스 야구 대표팀의 스태프 총괄 자격으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이만수 전 SK 감독이 27일 싱가포르전을 앞두고 중국 항저우 사오싱 야구 소프트볼 스포츠 센터 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항저우 ㅣ 문재원 기자

라오스 야구 대표팀의 스태프 총괄 자격으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이만수 전 SK 감독이 27일 싱가포르전을 앞두고 중국 항저우 사오싱 야구 소프트볼 스포츠 센터 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항저우 ㅣ 문재원 기자

이 전 감독은 2014년 SK 감독에서 물러난 후 라오스로 향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야구를 알렸다. 처음 모인 선수들 11명 중 절반이 맨발이었다. 한 달 만에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10살을 막 넘은 아이들이 그를 붙잡았다. “아짱(선생님), 우리 같이 야구 해요.”

그저 야구가 재미있다는 라오스의 어린 선수들, 정신도 성장했다

그렇게 라오스에 보낸 세월이 10년이 다 되어간다. 선수들 실력은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3학년 수준까지 올라왔다.

전날 열린 태국전도 잘 싸웠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0-15 6회 콜드게임으로 졌던 상대와 1-4 접전을 펼쳤다.

투수들이 특히 많이 성장했다. 이 전 감독은 “제구가 잡히고, 변화구도 던질 줄 안다”고 제자들을 칭찬했다. 직구는 시속 120㎞까지 나온다. 여기에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진다. 체인지업은 던질 줄은 알지만 실전에서 써먹을 정도는 아니다.

다만 아쉬운 건 대학에 들어갈 무렵이면 더 야구를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린 선수들이지만 직업을 구하고 생계를 꾸려야 한다. 대표팀 18명 중 10대 선수가 8명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 2명도 24세밖에 되지 않는다. 5년 전 대회 때 나왔던 선수들은 이미 각자 직업을 찾아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 전 감독은 “그때 선수들이 계속 야구를 했다면 지금 라오스 대표팀 전력은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참 더 성장할 수 있는 선수들이 계속 야구를 하지 못하는 게 지도자로선 많이 아쉽다.

야구로 먹고살 수 없다는 건 선수들도 잘 안다. 그럼에도 라오스 선수들은 할 수 있을 때까지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그저 야구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전 감독은 “아무래도 공 치는 걸 제일 좋아하고, 수비 연습은 좀 힘들어 한다”고 웃었다.

야구를 통해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게 더 큰 기쁨이다. 이 전 감독은 “라오스에는 ‘보 펭 양’이라는 말이 있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 ‘못살아도 괜찮다’ 그런 문화다. 야구를 하면서 달라졌다”고 말했다.

더그아웃에서 이 전 감독은 계속해서 ‘수수’를 외쳤다. 파이팅하라는 뜻이다. 태국전에서 선수들이 서로 뭉치고,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싱가포르와도 해볼 만하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첫 승에 늘어난 체류비, 여전히 부족한 것 많은 현실··· ‘헐크’는 멈추지 않는다

라오스는 싱가포르를 꺾으면서 본선 라운드 진출이 유력해졌다. 단체종목 전부를 통틀어서 라오스는 아직 아시안게임 본선에 오른 경험이 없다.

덕분에 항저우에 머물러야 할 날도 더 늘어났다. 본선에 오른다면 일본, 필리핀과 경기를 치러야 한다. 체류비가 늘고, 항공편을 바꾸는 데도 돈이 든다. 그 비용을 이 전 감독이 대기로 했다. 이 전 감독은 “그냥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얼마 전 한국프로야구 NC 구단이 6000만원 상당의 용품을 라오스 야구를 위해 지원하기도 했지만 부족한 게 여전히 많다.

올처음에는 몇 개월 재능기부 정도로 생각했던 게 이제는 20년 ‘장기 프로젝트’로 커졌다. 라오스를 포함해 인도차이나 반도 5개국에 야구를 퍼뜨리겠다는 계획이다. 라오스에 이어 2021년 베트남 야구협회 창설을 도왔다. 항저우 대회가 끝나면 캄보디아로 간다. 캄보디아 다음은 미얀마, 그다음은 전날 맞붙었던 태국이다. 이 전 감독은 “태국은 그래도 야구를 하고 있으니까, 더 시골로 가서 야구를 알리려고 한다”고 했다.

20년 프로젝트에 이제 11년이 남았다. 이 전 감독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그 혼자서 모든 걸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 이루지는 못하겠지만, 제 뒤에 후배들이 분명히 나올 거라고 믿어요. 저는 주춧돌 역할만 하면 됩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그 돌다리를 건너올 겁니다.”

라오스 야구 대표 선수들이 27일 싱가포르전 승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라오스 야구 대표 선수들이 27일 싱가포르전 승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라오스 야구 대표 선수들이 27일 싱가포르전 승리 후 이만수 전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이만수 전 감독 제공

라오스 야구 대표 선수들이 27일 싱가포르전 승리 후 이만수 전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이만수 전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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