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여성 캐스터 삼총사의 ‘알파고 수다’

“전성기 시절 이창호 9단도…어렵지 않을까요?”

2016.03.25 21:27 입력 2016.03.26 17:45 수정

바둑 열풍 “요즘만 같아라”

이세돌 9단에 하고픈 말은?

삼총사, 구글에 할 말 있다. 이세돌과 대결로 얻은 이익바둑의 세계화·난민 도와야

“이창호 국수님도 알파고에게는 안될 거예요.”

3월 봄바람과 함께 대한민국은 물론 지구촌을 후끈 달궈 놓았던 ‘바둑열기’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세돌 9단을 비롯해 이창호·유창혁·양건 등 프로기사와 박치문 부총재를 비롯한 한국기원 관계자를 총리공관으로 불러 점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싸늘한 기계와의 싸움, 진한 감동을 안겨준 인간승리 스토리를 복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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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싸움의 중심에 있던 이세돌 9단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방송사들의 출연 섭외가 줄을 잇고, 기업들의 러브콜도 쏟아진다. 알파고에게 당한 패배의 아픔을 털어내고 인간과의 대국도 소화해야 하고, 모처럼 불어닥친 바둑훈풍을 더욱 살리는 일에도 힘을 보태야 한다.

이 9단 말고도 바쁜 이들이 또 있다. 숨가쁜 승부의 현장을 안방으로 전한 바둑 캐스터들이다. 최유진, 정다원, 이소용, 김여원, 도은교 등이다. 빼어난 외모에 바둑 실력 또한 ‘짱짱’한 이들은 바둑계에선 예전부터 스타였다. 진흙 속에 묻힌 진주가 아니라 바둑에 묻힌 TV스타 후보들이다. 최유진, 정다원, 이소용 등 ‘미녀 삼총사’를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세기의 대결’을 둘러싼 유쾌한 수다를 들었다.

이창호 9단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왔다. 이번 대국 내내 알파고가 ‘전성기 시절의 이창호’에 비유됐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기존의 정석들을 무시하는 듯한 행마를 보일 때마다 많은 프로기사들이 “마치 과거 이창호 9단의 바둑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성기 때의 이창호 9단과 지금의 이세돌 9단이 승부하는 듯하다고도 했다. 바둑미인들의 수다는 ‘전성기 시절의 이창호 9단이라면 알파고를 이기겠느냐’로 화제가 모아졌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을 중계해 화제를 모은 바둑캐스터 최유진, 이소용, 정다원씨(왼쪽부터)가 지난 22일 한자리에 모였다.  이선명 인턴기자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을 중계해 화제를 모은 바둑캐스터 최유진, 이소용, 정다원씨(왼쪽부터)가 지난 22일 한자리에 모였다. 이선명 인턴기자

결론은 ‘어림도 없다’였다. 이창호 9단이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에 비해 지금 바둑이 엄청 발전했다는 게 이유다. 한 참석자는 “요즘 어린 기사들은 이창호 사범님 기보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바둑을 뒀지’라는 소리도 한다”고 전했다.

이창호 9단은 분명 바둑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가 선보인 수들이 바둑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다. 증기기관차가 산업혁명을 이끌었다고 해서 지금 KTX와 속도경쟁을 벌일 수는 없는 법. 결국 지금 알파고의 기력은 이창호 9단보다 세다는 게 삼총사의 얘기였다.

이토록 무서운 실력을 보여준 알파고가 버그를 일으킨 것 아니냐는 의혹을 만들어 낸 ‘문제의 한 수’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지금도 ‘신의 한 수’로 불리는 제4국의 백 78. 이 수의 결론은 ‘이세돌 9단만이 둘 수 있는 비틀기’였다. 본래 제4국의 백 78은 묘수가 아니다. 이 수가 두어지기 전부터 이 9단이 수차례 실수를 범해 바둑의 형세는 알파고에게 유리했다. 이곳 싸움의 결과에 따라 이 9단이 돌을 던져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였다. 그때 이 9단이 한 칸 떨어져 있는 흑돌 사이에 백돌 하나를 쏙 끼워 넣으며 대반전이 이뤄진다. 하수끼리의 싸움에서나 나올 법한 이 수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는지, 이후 알파고는 갈지자 행마를 보이며 자멸해 갔다.

그러나 이 수의 결론 역시 원래는 ‘어림도 없는 수’였다. 사람끼리의 대결에서는 수읽기로 조금 손해 보면 그만인 수였던 것. 그러나 정보에 의해 움직이는 알파고로서는 ‘가능성 1만분의 1’밖에 안되는 착점에 맞는 대응책을 찾을 수 없었고, 실착을 연발했다. 이후 자신의 승률 예측이 50% 이하로 떨어지면서 버그에 가까운 실착을 늘어놓았다. 천하의 알파고를 흔들리게 만든 백 78은 결과적으로 ‘묘수는 아니지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요즘 불어닥친 바둑훈풍에는 모두 반가운 기색이었다. 비록 이세돌 9단이 승부에서 지기는 했지만 이번 대결이 바둑을 부흥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한·중·일 아시아 3국에 치우쳤던 바둑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고, 국내에서도 바둑인구가 늘어날 환경이 조성될 듯하다는 것이다.

특히 KBS에서 <바둑왕전>을 진행하고 있는 최유진 캐스터는 “ ‘세기의 대결’ 이후 바둑을 대하는 방송국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동안 ‘최악의 시간대(일요일 밤 1시30분)’에 방송되던 이 4월 방송개편 때 좀 더 좋은 시간대로 옮겨진다”고 자랑했다. TV조선에서 ‘세기의 대결’을 진행한 후 1일 앵커가 돼 화제를 모았던 정다원 캐스터 역시 “정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앞으로 TV조선에서도 국내외 주요 대국을 중계할 예정”이라며 달라진 바둑의 위상을 전했다. 세 사람 모두 자신들에게도 방송출연 섭외는 물론 행사 초청이 이어진다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요즘만 같아라”라고 합창했다.

세 사람에게 바둑 외에 하고 싶은 일은 없느냐고 물었다. 최유진 캐스터는 골프 방송 진행을 꼽았다. 보기 플레이어로 골프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바둑과 골프는 많이 닮았다. 바둑에 치밀한 수읽기가 있듯이 골프에서도 잔디결과 바람 등 따져야 할 요소가 많다. 골프도 일종의 두뇌싸움”이라면서 “바둑용어를 섞어가며 수읽기 하듯 골프를 설명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소용 캐스터는 좀 뚱딴지같지만 축구 캐스터가 꿈이라고 했다. 이 캐스터는 “축구 방송을 보면 여자 캐스터를 전혀 볼 수 없다. 하지만 경기장을 가면 여자 축구팬들이 정말 많다”며 “숨가쁘게 드리블하는 장면을 여자들이 스피디하게 전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본데, 원래 여자가 남자보다 말이 빠르다”면서 “축구 중계를 바둑 진행만큼 잘할 자신이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정다원 캐스터는 “뭐든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방송 리포터는 물론이고, 예전의 <체험, 삶의 현장>처럼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녹아든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 판의 바둑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다. 그래서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바둑의 이야기로 풀어놓으면 재미도 있고 바둑을 전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세돌 9단에게도 방송 출연을 적극 권했다. 이 9단처럼 세계 제일의 실력자들이 TV 등에 자주 얼굴을 비춰야 바둑의 미래가 밝다는 것. 좀 망가지는 모습도 괜찮다고 했다.

“예전에도 멋있었지만, 이번 5차례 승부를 통해 더욱 멋있어진 세돌 오빠가 많은 사람들에게 바둑의 향기와 인간적 감동을 함께 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세 명의 바둑 얼짱 캐스터들은 국내 바둑 고수들이 시민들과 더욱 자주 어울리고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진정한 영웅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삼총사, 구글에 할 말 있다 “AI·아마·프로 세계대회 만들어 달라”

“이 정도면 구글이 세계대회 하나쯤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바둑 캐스터 삼총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글 측에 한 가지 소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바둑대회 개최다.

<b>‘바둑의 열기’ 아직 그대로</b> 지난 15일 공개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장. 세기의 대결은 끝났지만 바둑 열풍은 식지않고 있다.   연합뉴스

‘바둑의 열기’ 아직 그대로 지난 15일 공개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장. 세기의 대결은 끝났지만 바둑 열풍은 식지않고 있다. 연합뉴스

바둑대회라고 해서 한·중·일 중심의 프로강자가 출전하는 대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세계교육헌장에 나올 만한 바둑대회다. 알파고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인공지능과 세계 각국의 아마강자, 그리고 프로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바둑축제를 열자는 것이다.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 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종목이다. 게다가 바둑은 노란 바둑판 위에서 흰 돌과 검은 돌이 어우러지는 게임이다. 흑, 백, 황 세 인종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촌을 축약해 놓은 듯하다. 이런 바둑이 세계인 모두가 즐기는 놀이문화로 정착한다면 세계평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세 사람의 ‘원대한’ 바람이다. 이들은 “구글이 이세돌 9단 대 알파고 간 대결로 58조원의 이익을 얻었다는 뉴스를 봤다. 그것이 당장 손에 쥐어지는 돈은 아니지만, 구글이 큰 이익을 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그 이익의 아주 적은 부분으로도 바둑을 세계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대국료나 우승상금의 일부를 떼어 국제 빈민이나 난민, 지금 어디선가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돕는다면 구글의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들은 ‘세기의 대결’을 중계하면서 처음에는 알파고와 그 알파고를 만든 사람들이 미웠다고 했다. 패배의 아픔을 참느라 괴로워하는 이세돌 9단의 얼굴이 화면에 비칠 때면 더욱 미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서’ 바둑이고 ‘그래도’ 바둑이라고 했다. 이제는 인간이 수천년간 모르고 있던 바둑의 신세계를 일깨워준 알파고가 고맙고, 그 ‘알사범’을 사람들 곁에 보내준 이들이 고맙다고 했다. 이들은 또 “이런 마음들이 이어져야 인공지능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미래가 가능할 거다. 그 징검다리를 바둑이 놓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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