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구례 별미 3총사가 나가신다~뻥이오, 빵이오, 탕이오

2019.05.28 06:00 입력 2019.05.28 07:36 수정
김진영 식품 MD

전남 구례 5일장

<b>뻥이오</b> 구례 오일장에는 좌판이 아니라 점포를 열고 운영하는 뻥튀기 가게가 있다.

뻥이오 구례 오일장에는 좌판이 아니라 점포를 열고 운영하는 뻥튀기 가게가 있다.

<b>빵이오</b> 우리밀과 지역 농산물로 만드는 구례 ‘목월빵집’의 빵엔 숨은 단맛이 있다.

빵이오 우리밀과 지역 농산물로 만드는 구례 ‘목월빵집’의 빵엔 숨은 단맛이 있다.

<b>탕이오</b> 제철 맞은 섬진강 동남참게로 끓인 참게탕은 국물 맛이 대게보다 윗길이다.

탕이오 제철 맞은 섬진강 동남참게로 끓인 참게탕은 국물 맛이 대게보다 윗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뒤편에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다. 지하철역 근처에는 복개한 실개천이 시멘트 도로 밑으로 흐르고 있다. 어느 마을이든 앞산 하나쯤, 혹은 조금 높은 뒷동산 하나는 가지고 있다. 배산임수(背山臨水),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천이 유유히 흐르면 명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뒤로는 지리산, 앞으로는 섬진강
구례는 최고의 ‘배산임수’ 명당
수산물·임산물 모여 제법 큰 장터

뒷동산은 지리산, 마을을 지나는 실개천은 섬진강인 전라남도 구례의 오일장을 보러 갔다.

구례는 사라지던 우리밀 불씨를 끝까지 지켜낸 곳이다. 구례를 수십 차례 갔지만, 항상 우리밀, 지리산, 섬진강보다는 필자의 개인적 경험으로 인해 경기도 청북이 먼저 떠오른다. 15년 전 구례에 우리밀 보러 가는 길에 청북IC 근처에서 사고가 났다. 차가 고속도로에서 굴러 폐차했지만 다행히 다친 곳이 없었다. 십여년 넘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구례 출장이 잡히면 아찔했던 사고 순간이 떠오른다.

구례 사람들에겐 뒷동산이 지리산이고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이 섬진강이다.

구례 사람들에겐 뒷동산이 지리산이고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이 섬진강이다.

구례에 도착하면 주차는 구례여성문화회관에 한다. 주차하기도 편리하고 오일장까지는 빠른 걸음으로는 3분, 천천히 걸어도 5분이면 된다. 게다가 회관 주변으로 구례에서 이름난 노포들이 호위하듯 포진해 있다.

38점빵 산나물 비빔밥, 싱싱한 제피 잎, 구례 닭구이(위부터)

38점빵 산나물 비빔밥, 싱싱한 제피 잎, 구례 닭구이(위부터)

구례 오일장은 식당가와 장터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식당가 간판 중 ‘38점빵’이 눈에 띄었다. ‘38점빵? 38선과 관련 있나’ 싶었다. 3일과 8일, 장날만 문을 여는 식당이기에 이름을 그리 붙였다고 한다. 십여년 전에 귀농한 부부가 SNS 교육장 겸해서 문 연 식당으로 국수나 비빔밥 중 하나만 판다. 가을에 능이 같은 버섯이 나오면 버섯국수를 팔고, 그 외 계절에는 산나물비빔밥을 판다. 산나물이 십여 가지 들어가면 8000원. 필자가 맛본 날은 나물 가짓수가 적어 7000원이었다. 가짓수가 적다고 했지만 미나리, 죽순, 쑥부쟁이, 엄나무 순, 오가피 순 등 맛난 나물에 텃밭에서 키운 상추까지 갖출 건 다 갖추었다. 구례에서 나는 유정란과 쌀 그리고 직접 담근 고추장까지 좋은 재료로 꽉 채운 비빔밥이었다. 38점빵(061-781-1471).

들판을 적실 만큼 충분히 내린 봄비는 반갑지만, 장터는 생각보다 썰렁했다. 전남 순천·경남 남해와 인접한 구례는 수산물과 임산물이 모이는 제법 규모 있는 장터다. 비바람에 팔러 나오는 이도, 사러 나온 이도 적었다.

그래도 있을 건 있었다. 구례 내려가면서 꼭 사와야지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제피’다. 제피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향신료 중 하나다. 제주도의 자리돔 물회를 먹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파리가 바로 제피다. 비린내 없애는 데 제피만 한 것이 없다. 잎은 생으로 매운탕이나 물회에 넣어서 먹는다. 장아찌를 담가 먹기도 하는데 필자는 한여름에 부추 대신 제피 잎만 넣고 전을 부친다. 씹을 때마다 입안을 감싸는 제피의 내음이 그만이다. 제피 열매는 갈아서 추어탕이나 어죽에 넣기도 하는데, 지리산 인근의 함양, 남원, 구례 등지의 식당에 가면 후추보다는 제피가 많이 놓여 있다. 후추나 산초와 같이 아린 맛이 있으면서 둘과 달리 상큼한 맛이 있다. 제피 한 바구니에 5000원. 장아찌를 담글 요량이면 두 바구니 사면 딱 맞다. 제피 한 바구니를 사고 조금 걸어 제피부각 파는 곳으로 갔다.

찹쌀풀을 재료에 바르고 말린 것이 부각이다. 김에 바르면 김부각, 가죽나물(참죽나물)에 바르면 가죽나물부각 등 주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처음 장터에 들어섰을 때는 쟁반 가득했던 제피부각이 그새 거의 팔려나갔다. 행여 누가 사갈까 서둘러 자리에 앉아 돈부터 내밀었다. “8개 1만원인데 5개밖에 없네. 김부각이랑 섞어 줄까?” 하며 부스러기 제피부각을 할머니가 내밀었다. “아뇨. 가죽나물부각하고 섞어 주세요.” “가죽부각은 비싸서 하나밖에 못 주는데 괜찮여?” 고개를 끄덕이고 돈을 냈다. “프라이팬에 살살 구워. 그럼 쪼께 부풀거든. 그렇게 먹어.”

장터 초입엔 상설 뻥튀기 점포
향신료인 ‘제피’는 필수 아이템
후추처럼 아리면서도 상큼한 맛

여느 장터처럼 초입의 만두와 호떡, 도넛 파는 점포에 사람이 붐볐다. 다만 뻥튀기 장사는 여느 장터와 달랐다. 보통은 차에 ‘뻥 튀기는’ 기계와 가스를 싣고 왔다가 장이 파하면 떠나는데, 구례는 세 집이 나란히 점포를 열고 있었다. 상설 뻥튀기 점포였다. 할머니 두 분, 그리고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보통은 두세 명은 순서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지만 비 때문인지 기다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길만 막히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장사꾼도 항상 들고 있는 게 뻥튀기 아니던가. 올라가는 길, 길동무 삼으려 옥수수 뻥튀기 한 봉지를 샀다.

한우 내장탕과 다슬기수제비 식당
해장 능력으로 우위 가리기 힘들어
참게탕 국물은 꽃게보다 한 수 위

주차를 여성문화회관에 하면 좋다고 했다. 회관 주변에는 내장탕, 다슬기수제비, 육회비빔밥 식당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찍듯이 회관 주변을 감싸고 있다. 게다가 식당 근처에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전문점도 두 군데나 있어 이래저래 좋다. 구례에 오면 주로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혼자 먹기도 편하거니와 맛도 있고, 한 그릇 하고 고속도로 올라타면 집에 올 때까지 든든하기까지 했으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육회비빔밥집 기준으로 오른편에 목화식당이 있다. 맑은 한우내장탕을 내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내장탕을 주문하면 맑게 끓인 탕이 나온다. 살짝 내장 특유의 향이 나지만 양념장을 넣는 순간 사라진다. 잘 삶아 부드럽고 고소한 내장 맛이 일품이다. 목화식당(061-782-9171).

섬진강에서 나는 것 중에서 가격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게 바로 다슬기다.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경상도에서는 ‘고디’라 부르고, 어느 지방에서는 골뱅이라 하기도 하지만 다슬기가 맞다. 다슬기를 넣고 끓인 수제비는 푸른빛을 띤다. 맑은 국물이지만 청양고추를 넣고 끓여서 생각보다 얼큰하다. 밀가루 반죽을 두 번 치대고 숙성해서 뜬 부드럽고 쫄깃한 수제비와 얼큰 시원한 국물 맛이 좋다. 딸려 나오는 맨 김에 밥을 올리고 다슬기 장을 올려 먹는 맛도 별미다. 여럿이 간다면 매콤하게 무친 다슬기에 따스한 밥을 비벼 먹어도 좋다. 수제비 없이 국물만도 주문할 수 있다. 한우내장탕을 파는 목화식당과 아주 가깝다. 전날 달린 속을 달래려고 한다면 짬뽕이냐 짜장이냐의 골치 아픈 선택처럼 주차장에서 심한 갈등에 빠질 수 있다. 해장 능력으로 우위 가리기가 쉽지 않다. 부부식당(061-783-9113).

구례에서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가 가깝다. 섬진강을 끼고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화개장터가 나온다. 화개장터 앞 남도대교를 건너 왼쪽은 광양, 오른쪽은 구례다. 오른쪽 구례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면 이내 식당 하나가 나타난다. 몇 년 전 매실 찾으러 간 출장길에 우연히 들렸다 시원한 참게탕 맛에 푹 빠진 곳이다. 섬진강 주변에서 나는 장어, 은어, 참게로 요리한다. 섬진강의 참게는 임진강의 참게와 종이 다르다. 국내에 서식하는 참게는 네 종류다. 참게, 애기참게, 동남참게, 남방참게다. 가장 작은 애기참게만 바다에 살고 나머지는 모두 바다와 민물을 오간다. 남방참게는 멸종 단계이고, 기수역(강물이 바닷물과 서로 섞이는 곳)이 살아 있는 남쪽 섬진강에서는 동남참게, 북쪽 임진강에서는 참게가 잡힌다. 참게가 많이 소개된 까닭에 참게 제철을 가을로 알고 있지만, 종류에 따라 제철이 다르다. 지구도 남반구와 북반구가 계절을 달리하듯이 가을이 제철인 참게와 달리 동남참게의 제철은 여름 초입이다. 고민 없이 참게탕을 주문했다. 참게는 꽃게나 대게처럼 살이 많지 않다. 별로 씹을 게 없지만, 고소한 알과 된장을 풀어 끓인 탕국물은 꽃게나 대게보다 한 수 위다. 쉴만한물가(061-782-7628).

인근 지역에만 있는 닭 숯불구이
닭 날개가 2개뿐인 것이 아쉬워
우리밀로 만든 빵집도 인기 만점

구례 혹은 순천이나 하동에서 몇몇이 자리 잡고 먹기 좋은 음식이 있다. 바로 닭이다. 국내 유원지 어디를 가든 토종닭 파는 곳이 있다. 한 집 건너 하나일 정도로 많지만, 이 지역에서는 유독 숯불구이로 낸다. 닭 한 마리를 주문하면 두 달 정도 키운 토종닭의 살을 발라내 부위별로 구워 준다. 먼저 닭다리 이어 날개, 가슴살 순으로 준다. 껍질이 붙어 있는 다리 살을 한 번 먹어보면 지금까지 닭구이를 왜 안 먹었는지 자책을 하게 된다. 푹 삶아 흐물흐물한 백숙의 껍질과 달리 숯불 향이 나는 껍질은 닭구이의 정수(精髓)다. 소금만 뿌리고 구웠을 뿐인데 씹는 맛이 압권이다. 잘 구운 날개를 먹으면, 닭 날개가 지네 다리처럼 많았으면 하는 상상에 빠진다. 마무리는 남은 닭뼈로 육수를 내 끓인 죽이 나온다. 닭요리야 어디서든 먹을 수 있지만, 닭구이는 구례, 하동, 순천에서 맛볼 수 있다. 당치산장민박(061-782-7949).

구례에는 우리밀이 나고 그걸 밀가루로 만드는 우리밀 전용 제분소도 있다. 우리밀로 만드는 수제비나 국숫집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빵집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전임에도 빵집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막 구워낸 빵은 나오자마자 바로 사라진다. 3년 전 귀농해 구례읍사무소 인근에 빵집을 열었다가 최근에 대로변으로 이전한 목월빵집이다. 구례에서 나는 우리밀 중에서 금강밀과 진주에서 나는 토종밀인 앉은뱅이밀로 빵을 만든다. 근방에서 만든 곶감이나 과일에 크림을 넣은 빵, 제피와 수제 햄을 넣고 만든 빵이 인기다. 오전 11시 오픈이지만 문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모인다. 목월빵집의 빵은 단맛이 없다. 한참 씹다 보면 숨어 있던 단맛이 나타난다. 목월빵집(061-781-1477).

구례 오일장 인근에는 내장탕, 다슬기수제비, 육회비빔밥을 내는 이름난 노포들이 자리잡고 있다.

구례 오일장 인근에는 내장탕, 다슬기수제비, 육회비빔밥을 내는 이름난 노포들이 자리잡고 있다.

구례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고속도로, 4차선 국도, 천은사를 지나 성삼재 넘어 뱀사골로 가는 길이다. 이 중 천은사길이 풍광은 좋지만, 천은사 입구도 아닌 길 중간에서 통행료를 받는 것 때문에 자주 이용하지 않았다. 최근 그 관행 아닌 관행이 없어졌다. 중간에 멈춰 서 창문 열고 차 안을 보여주지 않고도 성삼재를 넘었다. 차 안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는 인원수대로 통행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멈춤이 사라지니 지리산 풍경이 더 정겨웠다.

■ 필자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10)구례 별미 3총사가 나가신다~뻥이오, 빵이오, 탕이오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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