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인터넷에도 ‘복고열풍’

2001.02.05 19:19

기억할는지…. 500원짜리 동전 하나만 있어도 세상을 얻은 듯 의기양양하게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어린 시절을. 그 때 그 시절, 100원짜리 새우깡 한 봉지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또 100원이면 학교 앞 오락실에서 테트리스 10판을 신나게 깼다. 그래도 해가 지지 않으면 친구들과 딱지를 치며 놀았고 돈이 남으면 동네 입구 연탄화덕 앞의 ‘뽑기’ 할머니한테 달려갔다. 해가 지면 집으로 달려와 TV 앞에 달라붙어 ‘요술공주 밍키’와 ‘미래소년 코난’을 보며 엄마한테 “넌, TV가 반찬이지?”라는 눈칫밥을 먹어도 마냥 재미있었던 그 시절.

197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른바 297세대들의 복고 열풍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뽑기, 쫀드기, 쫄쫄이 등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먹던 추억의 주전부리가 신촌 거리에 재등장하고 히피룩과 빈티지 패션으로 대변되는 복고 패션이 대학가를 휩쓸면서 복고주의는 20세기말을 규정짓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복고 바람이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이를 세기말적 현상으로 단정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금세 사그라질 것 같던 복고주의는 21세기의 인터넷을 주름잡는 화두가 됐다. 그 시절 그 때를 회상케 하는 다양한 아이템으로 꾸며진 개인 홈페이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세계명작동화 애니메이션’(tales.new21.org)에는 80년대 방영되던 ‘빨강머리 앤’ ‘플란다스의 개’ ‘엄마찾아 삼만리’ ‘키다리 아저씨’ 등에 대한 정보와 만화주제가가 실려 있다. 만화 재방영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벌써 1,500여명의 네티즌이 서명을 했다.

게임도 빠질 수 없는 아이템. 동네오락실에서 했던 갤러그, 테트리스, 너구리, 보글보글 등을 다운받아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검색사이트에서 ‘고전게임’을 검색어로 입력하면 30여개의 웹사이트가 검색된다. ‘트윈슨의 과거의 게임’(tpg.id.ro)에서는 고인돌, 페르시아 왕자, 삼국지 등을 내려받을 수 있다. ‘그 시절 그 게임’(members.nbci.com/kjh02)에도 테트리스, 너구리 등의 아케이드 게임파일을 찾을 수 있다. 윷놀이, 땅따먹기, 장기알 튀기기 등 추억의 게임을 선보이는 곳도 있다.

노래와 광고도 80년대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산물. 상업성을 풍기긴 하지만 80년대를 연상시키는 어눌한 말투에 촌스러운 색감, 개성있는 모델을 등용한 복고풍 광고는 작년 한해 최대의 인기를 누렸다. ‘팝PM2’(www.poppm2.com), ‘올디스뮤직’(www.oldiesmusic.co.kr) 등은 컬처클럽, 듀란듀란 등 80년대 팝스타의 노래를 모아놓은 사이트다. 어린 시절 한국 라디오 방송 청취를 좋아했던 일본인이 만든 ‘미디구멍가게’(www2d.biglobe.ne.jp/~kmlabs/midi/index-k.html)에는 70~80년대에 만들어진 광고 CM송이 가사와 함께 제공된다. 90년대 초반 ‘신세대’ ‘X세대’ 논쟁을 불러일으킨 297세대들. 이들에게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은 생활은 조금 불편했지만 사람들 사이에 따스함이 서려 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증거다.

/윤민용기자 artemi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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