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대한민국, 배타적 이익결사체 ‘아파트단지’ 공화국 되다

2016.08.01 21:31 입력 2016.08.01 21:32 수정
박철수 |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국가 주도의 낙원 만들기 ‘단지화 전략’

1965년 3월 촬영한 서울 마포구 일대 아파트단지 전경.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1965년 3월 촬영한 서울 마포구 일대 아파트단지 전경.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올해는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라틴어로 쓴 <유토피아>가 세상에 나온 지 500년 되는 해다. ‘유토피아(Utopia)’란 그리스어로 ‘없다’는 의미의 ‘ou’와 ‘장소’를 뜻하는 ‘topos’를 합해 만든 지명이니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라는 뜻이다. 발할라나 엘도라도가 상상되었듯 한자문화권에서는 도연명이 가리킨 ‘무릉도원’이나 이상국가 ‘율려낙원국’이 바로 유토피아인 셈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라는 속뜻이 무색하게 ‘세속을 떠난 별천지’는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 아니,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구의 6할 정도가 일상에서 만나는 현실세계다. 입에 붙어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깊이 생각할 틈이 없을 뿐 그것은 우리 곁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안타깝게도 ‘단지’가 그것이고, ‘아파트단지’로 묶으면 더욱 익숙하다.

건축학자 박인석은 한국 사회를 ‘아파트공화국’이라 명명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은 것이라며 ‘아파트단지 공화국’으로 바꿔 불러야 마땅하다고 언명한 바 있다. 나아가 ‘단지’란 오래 묵은 시가지처럼 개별적 활동들이 오랜 시간 쌓여 만들어진 생활공간이 아니라 단일 주체가 일시에 만들어낸, 삶을 획일화시키는 집단화 공간이므로 “단지 해체가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세속을 떠난 별천지 ‘단지’

[박철수의 ‘거취와 기억’](8) 대한민국, 배타적 이익결사체 ‘아파트단지’ 공화국 되다

‘단지(團地)’라는 말의 뜻풀이를 해보면 그 주장에 수긍하게 된다. ‘모일 단(團)’과 ‘땅 지(地)’가 합성된 말이니 조각난 필지들이 거대한 힘에 의해 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그 힘의 이면에는 대단위, 효율, 속도 그리고 규범화와 표준화로 불리는 20세기 가치가 웅크리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뉴타운사업의 경우, 크기와 모양이 달라 다른 번지수가 붙었던 조각보 같은 땅을 정비라는 힘에 의존해 하나로 묶어 단 하나의 번지수를 갖도록 재구성한 것이니 ‘단지 만들기’의 전형이며, 천지개벽의 마술이기도 하다.

김채원의 소설 <푸른 미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신촌이라고 써 붙인 버스는 시내로 들어오는 듯하더니 대단위 아파트 단지 속으로 들어갔다. ‘가양 1단지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가양 2단지입니다.’ ‘가양 2단지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가양 3단지입니다.’ 버스에 붙은 자동 테이프가 정류장마다 한없이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중략) 생각해보라. 한 정거장 내내 아파트 단지여도 이상할 텐데 한 정거 두 정거 세 정거 네 정거 이렇게 아홉 정거까지 아파트 숲이었다. 가도 가도 가도 가도 아파트는 끝나지 않았다. 끝없는 직각과 직선의 세계.” 그리고 이렇게 되뇌었다. ‘도시 속의 완벽한 요새.’

아파트를 구할라치면 부동산중개업자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가급적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왜일까?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다다익선이라는 것이다. 한 단지에 많은 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설수록 단지 안의 복리시설이며 주민공동시설의 종류와 양이 늘어나도록 제도가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울타리로 둘러싸인 대단지 안에서 바깥세계와는 절연한 채 일상을 누리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이유로 도시에 외로이 선 아파트는 ‘나 홀로 아파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욕을 먹기 일쑤다. ‘세속을 떠난 별천지’로서의 가능성은 곧 단지 규모가 클수록 높아지는 셈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단지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리 방음벽이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차를 이용하면 게이트라 부르는 한두 군데의 출입구를 통할 수밖에 없고, 마치 군영을 드나들 듯 비표가 달린 차량 출입카드가 안팎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그러니 아파트단지는 마치 군부대와 같다는 말을 웃어넘길 수 없다. 군인들이 물품 구매를 PX에서 하듯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단지 내 상가를 이용하고, 아이들은 다른 곳과 똑같은 기구가 설치된 규격화된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크기며 꾸밈새까지 다른 단지와 하등 다를 것 없는 녹지공간에서 여가를 보낸다. 게다가 누구든 예외 없이 같은 높이와 같은 크기의 집에서 일상을 꾸린다. ‘아파트단지’의 일상적 풍경이며, 의심 없이 반복하는 매일의 모습이다.

서울 마포 아파트단지와 단독주택의 비교도.  ‘주택’ 16호, 1966년 5월

서울 마포 아파트단지와 단독주택의 비교도. ‘주택’ 16호, 1966년 5월

■정책적 과업의 탈출구 ‘단지 만들기’

1970년대부터 본격 성장기에 들어선 한국 경제는 사회계층의 급속한 변화로 이어졌다.

특히 정부 관리, 간부급 사무직 근로자, 교육자, 언론인, 저술가, 전문직 자영업자 등 신중간층의 급격한 성장은 정부에 소득 수준에 부합하는 환경 수준을 갖춘 집과 동네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중시켰다. 전반적인 도시환경은 절대 열악한 상태에 머문 가운데 주거환경 수준에 대한 욕구 증대는 봇물처럼 터졌다.

이들의 요구에 부응해 주택과 도시환경의 개선에 투자 역량을 집중했다가는 자칫 개발도상에 오른 한국의 성장동력을 꺼뜨릴 우려가 컸다. 그렇다고 주택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거나 소위 싸우면서 건설하는 산업역군의 욕구를 짓누를 수도 없었다.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단지화 전략’이다. 아파트를 집단화한 ‘단지’는 이런 걱정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도시환경에 대한 대규모 투자 없이 좁은 땅에 많이 짓는 아파트를 단지마다 건설해 주차장과 녹지, 넓은 공지를 얻을 수 있었고, 학교 등 공공시설 부지는 싼값에 확보하고 경로당이며 어린이놀이터, 청소년 운동시설까지를 일거에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게다가 이런 시설 모두를 ‘구매자가 스스로 부담’하도록 했으니 정부는 단지 출입을 위한 접근도로만 확보하면 그만이었다. 박인석의 말대로 “모든 시설비용을 수요자가 스스로 부담하는 방식으로 꽤 괜찮은 동네와 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아파트를 구매하겠다는 사람들은 넘쳤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신중간층의 주택 수요가 아파트단지로 집중됐고, 단지 수요의 급신장은 다시 건설업체의 몸집 불리기로 이어진 것이다.

자기복제 방식에 의한 아파트단지의 재생산은 주거환경의 양극화를 부추겼고, 각종 편의시설과 넓은 공지를 갖춘, 게다가 늘어난 자가용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주차장까지 두루 갖춘 아파트단지가 열악한 단독주택지에 비해 당연히 선호되었다. 다들 ‘아파트시대의 개막’이라 불렀던 이 현상은 사실 ‘아파트단지 시대의 출발’을 알린 것이다. ‘단지’를 학습한 이들은 박민규의 소설 <비치보이스>에 등장하는 청년들처럼 평수를 기준으로 뭉쳐 놀았고, 한날한시에 동반 입대할 정도로 끈끈한 구성원이 된 것이다.

“우리는 ‘22평 친구들’이다. 말하자면 그렇다. 이런 이상한 단어보다는 확실히 어릴 적 친구나 단짝, 동창생 같은 표현이 쉽게 와 닿겠지만-굳이 이런 단어를 골라 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단지의 22평 라인에서 함께 살아왔다. 재이의 집이 옆 동네의 36평으로 이사한 게 재작년의 일이니,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을 이웃으로 지낸 셈이다. 단지의 아이들은 평수를 기준으로 뭉쳐 놀았다. 게다가 우리에겐 우리 이상으로 뭉쳐 살아온 엄마들이 있다. 함께 시장을 보고, 정보를 교환하고, 머리를 하고, 사우나를 가고, 전화기를 붙들면 기본이 두 시간이던-엄마들이 있었다. 이는 곧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학습지를 신청하고, 줄곧 같은 학원을 다니고, 우르르 몰려가 같은 병원에서 포경수술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1960년대 초 국가 주도의 ‘단지 만들기’

지난해에 작고한 도시계획가 박병주는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면담 구술채록 <이야기로 듣는 국토·도시계획 반백년>에서 ‘단지’ 개념의 국내 도입과 정착 과정을 술회한 바 있다.

“1963년 제가 미국국제협력처(ICA) 기술실 부실장으로 있을 때 주택공사 홍사천 기술이사가 저더러 일본에서는 주택단지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그 뜻의 정확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설명했는데 대뜸 주택공사 장동운 총재와 상의해볼 테니 단지연구실을 만들고 그 실장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합디다. 그 뒤 망설이다, 주택영단에서 5·16 후 주택공사로 바뀌어 대규모의 주택사업이 진행된다는 장 총재의 이야기에 따라 그곳으로 옮겼습니다. 참고로 당시 저하고 같이 일하던 주종원 선생도 함께 단지연구실로 갔지요. 그곳에서는 맨 처음 주택단지라는 것을 해설하는 글과 함께 우리나라 주택단지의 건설방향에 대한 홍보활동부터 해나갔습니다.”

그가 언급한 주택단지의 건설방향에 대한 홍보 문건은 1963년 6월 대한주택공사가 발간한 ‘주택’ 통권 10호에 실린 ‘단지 연구의 당면과제’라는 글이다. 이 글은 ‘주택문제연구소 단지연구실’이라는 부서명으로 실렸는데, 자유로운 토지 소유와 개별적인 건축행위가 시가지를 불량하게 하고 도시의 능률을 저하시키는 원인이라 지적하면서 단지 형식의 주택을 계획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특히 일하는 곳과 거주하는 곳, 휴식을 취하는 곳을 분리하고 이들 사이를 잘 연결해 건전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의 기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한국의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을 고려할 때 적극적인 대단지 건설 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며 글을 맺었다.

그의 회고는 여러 사실을 추정 가능하게 한다. 즉 일본에서 널리 쓰였던 ‘단지’라는 용어가 중요한 개념으로 한국에 도입되었다는 점과 함께 ‘단지’는 거주·노동·휴식으로 나뉜 근대적 생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주공간으로서 ‘커뮤니티의 기본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커뮤니티의 기본 조건’이란 이미 1920~1930년대에 미국의 도시계획가인 페리(C. A. Perry)에 의해 주창된 것으로 교외 주거지 구성의 기본틀로 이용된 개념이다. 즉 도시의 확장으로 인한 교외 주거지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허허벌판에 ‘동네’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미국식 표본 모델이었다.

그런데 그 모양과 구성 원리가 우리들에게 익숙한 아파트 ‘단지’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가족들은 자신의 생활권역에서 모든 공공시설과 환경조건들을 편안하게 향유하여야 하는데 초등학교에의 편리한 접근성 보장, 적당한 규모와 위치를 가지는 놀이공간과 구매시설, 그리고 자동차로부터 안전한 영역의 구축 등이 그것”이라는 페리의 주장이 멀리 한국에서 실현되었던 것이다.

이 원리는 곧 초등학교 1개가 들어서는 규모로 동네를 만들고, 외곽은 자동차 통행이 자유로운 고속도로나 간선도로로 둘러싸여 독립하되 단지 안에는 충분한 휴식공간을 확보하고 단지 내 시설은 모두 걸어서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동네 외곽의 출입구 주변에 상가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단지 안에서는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다니지 않도록 직선도로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어떤가. 20세기 초에 미국의 교외 주택지를 만들기 위해 제안된 동네 만들기 전략이 일본을 거쳐 한국의 ‘아파트단지’에서 실현되었다면 과연 억측일까. 이렇게 완성된 ‘단지 만들기 전략’은 다시 무리지음과 서열화의 풍습을 낳았고, 급기야 자폐로 불릴 수 있는 단지 밖 세상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배제라는 의식을 낳았다. 도시 속의 완벽한 요새, 단지는 오늘도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이익결사체로 기능할 뿐이다. 여러 사람들이 단지 해체가 살길이라고 외치는 이유다.

■단지 - 일본 ‘집들의 무리’…한국, 도로에 에워싸여 있어야

일본의 ‘단지’란 집단주택지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단독주택이건 아파트건 가리지 않고 집단으로 모여 무리를 이루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법률로 정해 따로 부르는 우리나라의 단지 정의는 조금 다르다.

‘주택건설사업계획 또는 대지조성사업계획의 승인을 받아 주택과 그 부대시설 및 복리시설을 건설하거나 대지를 조성하는 데 사용되는 일단의 토지를 말한다’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기흥 상갈3단지 전경. 아파트단지 안에서의 소통과 외부단절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 기흥 상갈3단지 전경. 아파트단지 안에서의 소통과 외부단절을 보여주고 있다.

꼼꼼하게 보아야 할 내용은 ‘철도·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 폭 20m 이상인 일반도로, 폭 8m 이상인 도시계획예정도로로 분리된 경우는 각각 별개의 단지’로 본다는 것이다.

집들의 무리지음 정도나 면적 규모에 따라 단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나 철도 등으로 에워싸여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단지거나 아니거나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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