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응답하라, 주민청원

2018.03.27 21:07 입력 2018.03.27 21:12 수정
이태동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방선거가 7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까지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질 수도 있는 개헌 논의와 후보들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어서, 유권자들로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책 어젠다가 무엇인지 알기 쉽지 않다.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누가, 어떻게 지역의 정책 어젠다를 만들까? 그리고 주민들은 정책 어젠다 설정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유권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후보(캠프)가 만든 어젠다 형성에 참여하지 않거나 몰라도, 후보나 당을 보고 투표하면 민주적 정치 참여가 끝나는 건가?

[기고]응답하라, 주민청원

필자는 마을학개론이라는 현장 참여를 통한 문제 해결형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학기의 주제는 ‘우리가 만드는 정치’이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들의 정책을 참여관찰을 통해 비교하거나, 선거 결과를 분석하기보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지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고민하고 대안을 만드는 수업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대안을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제시하여 지역 정치와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려고 한다. 그러나 수업을 진행하던 중 큰 벽에 부딪쳤다. 학생들이 지역과 생활 밀착형 어젠다를 만들어도 이를 후보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제도가 너무 제한적이다.

지방자치하에서 주민의 정치 참여는 주민투표(주민 전체의 의사 투표), 주민발의(조례 개정과 폐지), 주민소환(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해직 청구), 주민소송(사법적 손해배상), 주민감사청구로 제도화되어 있지만, 구성 요건에 있어 어느 하나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현 지방자치 주민참여제도는 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견제와 감독을 위한 것이지, 주민들의 논의와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는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될 후보자들의 정책 어젠다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은 토론회를 개최하여 질의응답을 하는 정도에 그친다.

청와대의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관심과 열망을 보여준다. 청와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지방자치단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제기된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에 문제 해결을 바라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방 분권, 시민 정치 참여, 동네와 생활 민주주의를 달성하려면 주민들의 정책 어젠다 형성을 활성화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17개 광역단체와 226개 기초단체에 각각 주민청원의 통로를 도입하면 어떨까? 주민청원을 통해 주민들이 지역 현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현안이 공감을 얻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민 참여를 통해 주민이 중심이 되는 지역 맞춤형 지방자치 정책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주민청원이 특정 이해 관계자의 민원 해결 방법으로만 활용되거나 주민자치 문제를 정부 반응에 의존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는 청원의 문제점들은 참여예산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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