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이 언제부터 특정정당 단어였나

2021.03.24 21:07 입력 2021.03.24 21:08 수정

“성평등·페미니즘 등 단어

선거 영향 끼쳐 사용 금지”

선관위 과도한 제재 논란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문구의 현수막 게시를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불허한 선거관리위원회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문구의 현수막 게시를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불허한 선거관리위원회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인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사건 공동행동’(공동행동)은 4·7 재·보궐 선거를 한 달가량 앞둔 지난 9일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서울 곳곳에 게시하기 위해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문의했다. 다음날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답변했다. 공동행동은 이틀 뒤 ‘나는 성평등에 투표한다’ ‘나는 페미니즘에 투표한다’ 등의 문구 사용은 가능한지 물었지만 이 역시 위법 소지가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24일 공동행동에 따르면 선관위가 이들 문구의 사용을 불허하며 근거로 제시한 것은 공직선거법 제90조다. 이 조항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화환·풍선·간판·현수막을 설치·진열하거나 광고물 등을 배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공동행동 김단비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선관위로부터 ‘성평등’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특정한 정당이나 후보를 떠올리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공동행동이 현수막에 걸려고 했던 문구들이 특정 정당에 불리한 방향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행위’라고 간주했다는 뜻이다.

선관위의 해석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은 “어느 때보다 정치적 의사를 폭넓고 활발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할 선거 시기에 정치적 침묵을 강요하며 유권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가둬두고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에서 내놓은 ‘정치관계법 사례예시집’을 보면 공동행동의 현수막 게시보다 강도 높은 정치 행위가 허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령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낙선 대상자를 결정해 이를 기관지·소식지·내부문서·게시판 등 통상적으로 행해 오던 방법에 따라 소속 회원에게 알리는 행위도 허용되고 있다.

이런 선관위의 경직된 판단으로 인해 여야 정치인들만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성폭력 심판 선거’를 상대 정당을 공격하는 정쟁 도구로만 활용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안소정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현행 선거법은 후보 등 정치인 외에 시민들의 입을 선거법이라는 이름으로 틀어막는다”며 “비민주적인 제도 속에서 가부장 권력 카르텔을 비판하는 시민의 목소리는 표출되지 못하고, 정당과 정치인만 ‘성폭력 심판 선거’를 다른 정당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평등’ ‘페미니즘’ 등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용어는 선거기간 중이라도 유권자 의사대로 마음껏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정당을 떠올리는 단어를 금지한다면 ‘개혁하자’ ‘부동산 투기를 없애자’ 등도 불허해야 한다”면서 “현행 선거법이 시민들의 정치 참여권을 과도하게 제약하고 있기 때문에 선관위는 법조문이 금지하는 영역을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선관위는 조만간 공식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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