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따뜻한 마음도 같이 갑니다" 동작구 거북이택배

2021.07.11 13:49 입력 2021.07.11 22:13 수정

서울 동작구 ‘거북이택배’ 참여자 임종하 어르신(69)이 7일 꽃바구니를 배송하기 위해 길을 걸어가고 있다. 류인하 기자

서울 동작구 ‘거북이택배’ 참여자 임종하 어르신(69)이 7일 꽃바구니를 배송하기 위해 길을 걸어가고 있다. 류인하 기자

지난 7일, 서울 서초구의 한 꽃집으로 들어선 임종하씨(69)는 자신이 배송할 꽃바구니와 주소가 찍힌 종이를 받아들었다. 주소지는 서울 영등포구 문례동의 한 아파트. 임씨는 받아든 A4용지를 배달장소만 보이게 접어 한쪽 주머니에 넣었다. 목에 건 휴대전화로 배달지를 입력하니 최단거리 41분이 찍혔다. 그는 익숙한듯 꽃집을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휴대전화를 보지 않고도 거침없이 지하철에 탑승했다. ‘거북이택배’ 소속 어르신들은 모두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목적지를 찾는 ‘디지털 교육’을 이수했다.

임씨는 서울 동작구가 지난 4월 처음 시작한 ‘거북이택배’ 일자리 참여자다. 서울에는 송파·노원·강동구 등 이미 많은 자치구에서 ‘실버 택배’를 운영하고 있다. 동작구는 ‘후발주자’에 속한다. 다른 자치구와의 차이점이라면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배달을 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름도 ‘거북이택배’로 지었다.

거북이택배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일주일 2번, 하루 최대 3시간 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시급은 배달 물량이 많든 적든 시간 당 1만원이다. 여기에 배송업체로부터 받는 배달료의 70%도 어르신들의 몫이다. 서울을 벗어나 경기·인천으로 배송하는 택배는 택배비만 1만원이 넘는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최소 7000원 이상의 건당 배달 수수료를 추가수익으로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한 달에 어르신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30만원 남짓이다. 사실 생계형 일자리는 아니다. 동작구 관계자는 “시장형 일자리이지만 일종의 복지 연계형으로 볼 수 있다”며 “집 안에만 머무는 어르신들에 잠시 잠깐 배송일을 하며 바깥 활동을 할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1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상반기 거북이 택배에 참여 중인 동작구 거주 어르신은 37명이다. 구는 하반기까지 총 74명을 선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거북이택배의 주 배달물품은 꽃이다. 주거래처도 당연히 꽃집이다. 거북이택배 출범 초기 2곳에 불과하던 거래처는 벌써 7곳으로 늘었다. 양재동 고속터미널 지하 꽃집도 이미 여럿 단골 거래처가 됐다. 동작구 관계자는 “여기에 거북이 택배의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한 번에 한 개의 꽃바구니만 배송한다. 많으면 하루 3건 정도의 배송을 하지만 배송지가 경기도면 하루 1개 배달이 전부인 날도 많다. 배달 건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해진 근무시간 동안 안전하게 배송하는 게 ‘거북이 택배’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주말은 당연히 거북이택배도 쉰다. 배송에 여유가 있다 보니 어르신들은 단순히 꽃만 배달하지 않는다.

“배달을 해보면 꽃을 보내는 사람들이 받는 사람들에게는 미리 알리지 않고 주문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배달하기 전에 ‘누가 왜 꽃바구니를 보냈나’ 미리 주문사항을 살펴보고 꽃바구니를 드릴 때 주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합니다. 나 같은 노인이 한 마디라도 전하면 별 거 아니더라도 꽃을 받는 사람들도 더 기분이 좋잖아요.” 임씨가 마음을 나누며 기분좋게 번 돈은 7살, 5살 어린 손주들의 과자값이 된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근교로 나가 외식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전혜영 동작구 일자리정책과장은 “거북이택배는 어르신들이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직접 고객을 대면하기 때문에 더 많은 성취감을 느끼신다”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사업을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거북이택배’ 참여자 임종하 어르신(69)이 7일 한 건물 관리인에게 배송지를 물어보고 있다. 류인하 기자

서울 동작구 ‘거북이택배’ 참여자 임종하 어르신(69)이 7일 한 건물 관리인에게 배송지를 물어보고 있다. 류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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