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규제 강화…비트코인 급락
고객 자산 유용, 거래량 부풀리기 등 13건 증권법 위반 혐의
블룸버그 “전통적 증권을 위한 규칙 적용 가능 여부 판가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세계 최대 가상통화 거래소 바이낸스와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 자오창펑을 증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미 규제당국이 가상통화 산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조치를 이어가면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통화 가치는 일제히 급락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SEC는 5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바이낸스가 미등록 증권거래소를 운영하며 고객의 자산을 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자금을 외부 기관으로 빼돌린 사실을 은폐했다고 밝혔다. 또 수십억달러의 이용자 자금이 자오 CEO의 개인 계좌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SEC는 모두 13건의 증권법 위반 혐의를 제기했다.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성명에서 “우리는 자오와 바이낸스가 광범위한 사기, 이해 상충, 정보 공개 부족, 고의적인 법망 회피에 관여했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바이낸스는 고객 자산을 비밀리에 별도의 가상통화 관련 업체에 송금한 뒤 바이낸스에서 거래되는 가상통화에 투자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이를 통해 가상통화 거래량이 실제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부풀린 효과를 냈다고 SEC는 설명했다. 바이낸스가 고객의 자금을 송금한 업체는 ‘메리트 피크’와 스위스에 등록된 ‘시그마 체인 AG’로 전해진다. 두 업체는 바이낸스와 별도 법인이다. 하지만 SEC는 이들 기업이 모두 자오 CEO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낸스는 또 미국인 가상통화 투자자들의 해외 거래소 직접 투자가 금지돼 있지만, 일부 투자자들에게 당국의 감시를 피해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SEC는 자오 CEO가 소유한 회사인 시그마 체인 AG가 바이낸스 플랫폼인 바이낸스유에스닷컴에서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벌인 ‘워시 트레이딩’(자전거래)에도 바이낸스가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워시 트레이딩은 투자자가 두 중개인을 통해 한 기업의 주식을 동시에 사고팔아 거래를 하는 척하는 불법행위를 말한다. SEC는 “미 연방 증권법을 회피하기 위한 정교한 계획의 일환으로 바이낸스가 별도의 미국 법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바이낸스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바이낸스는 블로그에 성명을 내고 “우리는 플랫폼을 강력하게 방어할 것”이라며 “바이낸스는 미국 거래소가 아니기 때문에 SEC의 조치는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또 “바이낸스유에스닷컴 이용자의 자산이 위험에 처했다는 SEC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도 했다. 자오 CEO는 트위터를 통해 “바이낸스는 입출금을 포함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되도록 대기하고 있다”며 “아직 확인된 바가 없지만 미디어가 우리보다 먼저 정보를 얻었다”고 밝혔다.
고발 소식이 알려지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6% 이상 급락해 2만5573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비트코인이 2만6000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3월17일 이후 처음이다. 비트코인뿐 아니라 시가총액 2위 이더리움도 5.41% 급락해 1803달러를 기록하는 등 가상통화 시장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특히 시총 4위인 바이낸스코인은 10%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미 금융당국이 바이낸스를 겨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바이낸스는 지난 3월에도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로부터 파생상품 등에 관한 규정 위반으로 제소됐다. 미 국세청은 바이낸스의 자금세탁 여부를 조사 중이다. 또 법무부는 바이낸스의 ‘대러시아 제재 위반’ 의혹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동안 가상통화업계는 전통적인 금융 증권을 위해 고안된 규칙이 디지털 자산에 적용되기 어렵다며 이의를 제기해왔다”면서 “이번 소송으로 SEC가 가상통화 같은 디지털 자산 산업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게 될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