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방 인민대표 ‘독립후보’ 속출 … 민주선거의 씨앗 될까

2011.07.05 21:36
베이징 | 조운찬 특파원

현급 이하는 직접선거 불구 공산당의 지명 선출이 관행

인터넷 논객 출마 선언 파장… 사회각계 1000여명 자천 예상

“저는 금년 9월에 인민대표 선거에 정식으로 참여합니다. 거주지는 쓰촨성 청두로 이미 입후보지원그룹까지 만들었습니다. 저는 중국의 헌법과 관련 법규정을 엄격히 준수할 것입니다. …… 합법적인 국민으로서 어떤 세력의 조종도 받지 않고 선거구 인민의 합법적인 소망을 대변하고, 정부를 감독하며, 사회활성화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각계인사들께서 저의 입후보 선거 참여의 길과 방법을 가르쳐주시고, 지지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난 5월25일 리청펑(李承鵬·44)은 자신의 미니블로그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청두시 우허우구 인민대표대회 대표(인민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 표명했다. 그는 쓰촨성의 지역신문인 양성만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권리를 실천하기 위해 선거 참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저명한 작가이자 축구 전문기자인 리청펑은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논객이다. 중국 프로축구의 비리 등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그의 블로그는 글을 올릴 때마다 10만여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블로그 팔로어만 300만명에 달한다.

리청펑의 출사표는 큰 파장을 불렀다. 진보적인 인사들은 그를 지지하고 나섰다. 중국 사회과학원 위젠룽 교수는 “(리청펑의 출마는) 인민의 정치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의 정치참여는 고무되어야 한다”며 지지의 뜻을 표시했다. 또 유명작가 한한, 영화감독 펑샤오강 등은 리청펑 후원회에 가입했다. 리청펑이 웨이보에 올린 출마 선언문에는 발표 당일에만 수천건의 지지 댓글이 이어졌다.

올 하반기부터 본격 시작되는 지방 인민대표 선거를 앞두고 정당과 인민단체에 기대지 않은 ‘독립후보’들이 대거 입후보를 선언하면서 중국의 선거지형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가고 있다. 2007년 11월 치러진 장쑤성 쑤저우시의 인민대표 선거에서 주민들이 투표하고 있다. | 바이두닷컴

올 하반기부터 본격 시작되는 지방 인민대표 선거를 앞두고 정당과 인민단체에 기대지 않은 ‘독립후보’들이 대거 입후보를 선언하면서 중국의 선거지형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가고 있다. 2007년 11월 치러진 장쑤성 쑤저우시의 인민대표 선거에서 주민들이 투표하고 있다. | 바이두닷컴

리청펑의 영향을 받아 인민대표 출마를 선언하는 정치지망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온라인 작가 쉬춘류는 “인민의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인민대표 선거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법학자인 우단훙 중국법정대 교수는 “중국의 민주와 법치주의를 위해 미력한 힘을 보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악산인’이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진 시사평론가 야오보도 베이징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독립후보 지망생 가운데에는 작가, 변호사, 대학교수 등 지식인뿐 아니라 농민공과 같은 기층민도 들어있다. 중국의 시사주간지 ‘신세기’는 최근호에서 행상을 거쳐 공장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바링허우(80後·1980년대 출생자)’ 러우즈항이 인민대표 후보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사연을 소개했다. 이 잡지는 리청펑이나 러우즈항처럼 공산당과 정부의 추천에 의하지 않고 인민대표에 도전하려는 ‘독립후보’들이 전국에 걸쳐 1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 지방 인민대표 ‘독립후보’ 속출 … 민주선거의 씨앗 될까

중국의 인민대표회의는 인민의 이익과 권리를 대변하는 헌법기관이다. 인민대표회의는 전국을 포괄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각 지방의 인민대표대회(인대)로 나뉜다. 전인대가 한국의 국회 격이라면 인대는 지방의회다.

간접선거에 의해 대표를 뽑는 전인대와 달리 기층조직인 현급(구·현) 및 향급(향·진) 인민대표는 직선으로 선출된다. 중국 정부는 1979년 ‘전인대 및 각급 지방인대 선거법’을 제정 반포하면서 직접선거의 범위를 기존 향급에서 현급으로 확대했다. 또 인민대표 출마 희망자는 유권자 10명 이상의 연명 추천만 있으면 입후보할 수 있게 됐다.

직접선거의 법률적 근거를 갖추었지만 오랫동안 지방 인민대표들은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지명 방식으로 선출됐다. 그동안 인대가 중공당의 정책을 추인하는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온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 선전과 베이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인대 선거가 치러지고 이듬해 선거법이 재개정되면서 현급 인대 선거의 직접선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2003년 5월 선전에서는 정당이나 인민단체 추천에 따르지 않은 10여명이 출마해 2명이 인민대표로 당선됐다. 그해 12월 베이징에서도 독립후보 인민대표 8명이 탄생했다.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실시되는 현급 인민대표 선거는 역대 최대 규모의 지방선거다. 투표권자만 9억명에 달하고 선출되는 인민대표는 200만명이 넘는다.

이런 가운데 독립후보들이 대거 입후보를 선언하면서 올해가 ‘중국 인민 직접선거의 원년’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발달로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데다 웨이보가 활성화되면서 독립후보들이 인민선거의 ‘태풍의 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중국의 누리꾼은 4억5000만명, 웨이보 이용자는 1억4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지방 인대선거에서 독립후보들의 부상이 예견되자 중국 정부는 초조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8일 전인대 법률공작위원회는 기자회견을 갖고 “소위 ‘독립후보’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며 확대되고 있는 독립후보들을 견제할 뜻을 내비쳤다. 또 인민일보 산하의 ‘환구시보’도 평론에서 “독립후보 가운데 일부는 서방의 반체제운동가들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독립후보들이 대립문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중앙당교의 기관지 ‘학습시보’는 지난달 13일 “우리가 인가하는 후보만이 대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사회주의 민주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며 독립후보를 옹호하는 글을 내보냈다.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도 정치개혁의 이미지를 대외에 과시하고자 하는 중국 공산당의 모순된 일면이 엿보인다.

독립후보들의 활발한 후보 출마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인민대표로 당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행 선거법 제29조는 ‘유권자 10명 이상의 이름으로 지방 인대 선거의 입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입후보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동법 31조는 ‘입후보자가 정식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유권자 소위원회의 토론과 협상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독소조항을 넣었다. 유권자 소위원회는 사실상 공산당의 조직이다. ‘토론’과 ‘협상’에서 당 지도자에 의해 최종 후보가 정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독립후보들의 활동이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독립후보들은 인민대표 당선보다는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인민의 정치의식 고양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장첸판 베이징대 헌법학 교수는 독립후보들이 지방 인민대표 선거를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베이징의 중국전문가는 “인민대표 선거에 독립후보들이 입후보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지만, 완전한 의미의 민주선거로 이어지기엔 중국의 관련법과 정치사회적 상황이 부족한 수준이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선거 보장과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가 한배를 타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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