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뒤흔든 인신매매 사태···구금, 강제노동, 장기매매 의혹까지

2022.08.28 16:45 입력 2022.08.28 17:19 수정

“탈출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 봤다. 그들을 위해 일할 순 없었다. 사기는 불법이다.” 홍콩 사람인 아디(30)는 페이스북을 통해 광고 일을 하면 약 637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태국에 갔다가 구금됐던 경험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털어놨다. 그는 태국 북부 매솟에 도착해 차에 태워져 미얀마 국경지대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그는 몸값으로 1만달러를 내든지 아니면 전화사기로 그만큼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자리를 미끼로 청년들을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로 유인해 온라인 사기 등 강제노동을 시키는 인신매매 실태가 드러나 아시아 각국이 대응에 나섰다.

캄보디아로 사라진 대만인 “최대 5000명”

대만 경찰이 지난 18일(현지시간)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서 캄보디아 인신매매 사건과 연루된 혐의를 받는 용의자 2명을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만 경찰이 지난 18일(현지시간)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서 캄보디아 인신매매 사건과 연루된 혐의를 받는 용의자 2명을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만 사례가 가장 충격적이다. 대만 당국은 이달 중순 대만인 약 5000명이 캄보디아를 여행했다가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들이 전부 인신매매를 당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대만 경찰은 적어도 370명이 의사에 반해 구금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을 노린 국제 인신매매단에 의해 캄보디아나 미얀마 국경지대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만 매체 포커스타이완에 따르면 인신매매단은 ‘중국어와 컴퓨터를 할 줄 알면 월 2500달러를 주겠다’는 식으로 청년들을 꼬여냈다.

실제 피해 규모는 알려진 것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에 따르면 대만인 유탕은 지난 4월 페이스북의 구직자 그룹에서 일자리를 제안받고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갔다. 그는 공항에서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기고 캄보디아 남부 시하누크빌로 이송됐다. 앞선 아디의 사례와 유사하게 유탕 역시 풀려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 1만7000달러를 벌어야 했다. 유탕은 “한 남성이 일을 거절했다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맞고 전기충격기에 의해 기절했다”고 전했다. 그는 “적어도 50명이 같은 사무실에 구금된 것을 봤다”고 말했다. 또 “관계 기관 제출용 계약서에 강제로 서명하게 했다”며 “정부가 파악한 것보다 피해자가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강제구금, 구타, 몸값 요구 등에 더해 장기 적출 의혹까지 제기됐다. 대만 CTi뉴스는 캄보디아와 미얀마에 근거지를 둔 인신매매단이 신체를 세분화해 가격을 매겨 거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한 젊은 커플이 총통부에 구조를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폭로하면서 대만 정부가 비판을 받고 있다.

대만은 범정부는 인신매매 범죄 대응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대만 당국은 지난 22일 캄보디아에서 대만인 72명을 구조하고 관계자 75명을 체포했다. 지난 26일에도 타이베이시 경찰이 일자리 알선을 빙자한 인신매매를 시도한 혐의로 6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태국에서 일하면 월 3300달러를 주겠다’며 젊은이들을 유인하다가 인신매매 사건 보도를 접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며 덜미가 잡혔다.

피해자들의 국적은 대만뿐 아니라 태국, 홍콩,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 이어 심지어 케냐까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태국의 케냐 대사관은 자국 여행객에게 일자리 권유를 받지 말라고 경고했으며, 홍콩 당국은 도움 요청이 41건 들어와 23명이 안전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8일엔 취업사기를 당해 캄보디아 국경지대 카지노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베트남인 40명이 강을 헤엄쳐 탈출하기도 했다.

외국인 인신매매 온상 된 캄보디아···팬데믹 영향도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3월엔 캄보디아인권센터 등 35개 시민단체가 캄보디아 정부에 강제노동 철폐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문에서 “외국인들이 납치되고, 판매되고, 인신매매되거나 일자리를 미끼로 캄보디아로 유인된다. 이들이 물리적·정신적 위협과 함께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으며 주로 시하누크빌, 프놈펜, 코콩 등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인도네시아, 베트남, 파키스탄, 중국, 태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캄보디아의 인신매매에 관해 경고했을 정도다.

SCMP는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일군의 중국인들이 사기 네트워크를 관장하고 구금된 이들의 성과를 관리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캄보디아에 있는 호텔이 사기 콜센터가 된다. 호텔 각 층이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지고 이들은 각국의 희생자를 노린다. 과거엔 태국이 근거지였으나 중국인을 노리는 인신매매 조직이 태국 당국에 적발된 이후 캄보디아로 옮겨갔다고 SCMP는 전했다.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은 “이 같은 사기는 캄보디아에서 10~20년 전에도 흔했지만 중국계 범죄조직이 높은 대가를 미끼로 중국어 사용자를 꾀어낸다는 점이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이전엔 캄보디아 시하누크빌을 주로 찾는 외국인이 서양인이었으나 이 지역에 중국의 투자가 늘며 중국인이 늘어난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2019년 촬영된 캄보디아 시하누크빌 해군기지의 모습. AP연합뉴스

2019년 촬영된 캄보디아 시하누크빌 해군기지의 모습. AP연합뉴스

디플로맷은 이어 피해자들의 유형도 통념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보통 가난한 농촌 청년들이 성노예 등으로 팔린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보통 똑똑하고, 교육을 받았고, 최신 기술에 능숙하고, 중산층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돈을 더 벌려는 욕망과 지나치게 좋은 제안을 받았을 때 안일하게 생각하는 무지도 보인다고 디플로맷은 언급했다.

SCMP는 이 같은 사기가 피해자의 절박한 상황을 노린 측면을 짚었다. 매체는 “팬데믹 이래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젊은 청년들, 온라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시아인들의 희망과 절망, 순진함으로 이 산업이 굴러간다”고 분석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제러미 더글러스는 “팬데믹이 메콩강 일대 범죄조직이 적응하고 혁신하는 배경이 됐다”며 “이 사태가 지역 차원의 문제로 점점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행객 감소로 수입이 줄어든 카지노 업체 등이 온라인 사기를 이용해 돈벌이에 나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캄보디아는 자국이 사기 콜센터와 관련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범죄 조직을 추적할 계획을 곧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추분엥 캄보디아 인신매매대응위원회 부의장은 “캄보디아는 피해 국가”라며 “우리 영토를 범죄에 사용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있다. 우리는 모든 범죄 사건에 대응할 역량이 없지만 할 수 있을 만큼 피해자들을 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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