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지도교수 만나니 민감한 질문엔 대답 피해”…외국인의 대중국 직접투자와 유학생도 줄어

2024.06.30 21:20 입력 2024.06.30 21:21 수정

중국 ‘개정 반간첩법’ 시행 1년…달라진 풍경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경찰이 사진 촬영을 제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경찰이 사진 촬영을 제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철학 연구자 A씨는 최근 중국 여행을 한 김에 유학 시절 옛 지도교수에게 연락했다. 간만에 학교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약속은 학교 밖 찻집으로 잡았다. 캠퍼스에 들어가려면 학교 당국에 방문 목적 등을 신고하고, 지도교수가 나중에 자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보고해야 하는 등 곤란해질 가능성이 있어서였다. 그는 “지도교수가 ‘통제가 심해졌다. 갈수록 엄중해진다’는 말만 하고 민감한 질문에는 대답을 피했다”며 “7년 만에 만났는데 중국의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 중국 관련학과의 B교수는 2020년 1월 이후 중국에 간 적이 없다. 그는 코로나19 봉쇄가 풀린 뒤 중국에 가고 싶었으나 지난해 7월1일 시행된 ‘반간첩법’이 새로운 걸림돌이었다. 그는 “간첩사건에 직접 연루되지 않더라도 e메일이나 휴대폰에 저장된 자료를 중국 당국이 들여다볼 가능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방문해도 중국 학자들이 잘 만나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1일은 중국에서 개정 반간첩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의 안보 및 국가이익과 밀접한 문서, 사진, 데이터 등의 촬영·저장·역외 전송 행위에 대해 외국인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은 공포 즉시 큰 논란이 됐다. ‘불분명한 법 조항’과 ‘자의적 법 집행’으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잇따랐다. 지난해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 역시 반간첩법의 영향이라고 평가받는다.

1년이 지난 현재 반간첩법은 외국인의 일상생활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올해 1분기 중국 경제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서 외국인 투자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 당국은 불분명했던 해외 데이터 전송 관련 규정을 명확히 하는 등 기업 불안을 해소하는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데이터보호법, 기밀보호법 등 반간첩법과 유사한 취지의 법도 계속 제정하고 있다.

학계는 반간첩법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상적인 학술교류 기회가 사라지고 있으며, 중국학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개정 반간첩법 시행 이전에도 신장 위구르와 홍콩 인권, 톈안먼 항쟁, 문화대혁명 등 중국에서 민감한 주제로 여기는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중국 방문이 불허됐다.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를 집중 제기한 독일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는 중국 당국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중국 공안당국이 직접 해외 연구자들의 연구주제를 문제 삼는 일도 있다고 전해진다.

반간첩법 시행은 학계 분위기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국내 중국 관련 연구자 C씨는 “코로나19 때에는 온라인으로 학술대회를 열었는데, 대면 접촉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하던 연구자들도 온라인에서는 발언을 극히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며 “반간첩법 시행 이후 토론회 섭외도 쉽지 않다. 정상적 학술교류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국내 4년제 대학에서 가르치는 D교수는 “세부 분야별로 상황은 다르지만 사회과학은 확실히 타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반간첩법 말고도 중국이 안보를 강조하면서 내놓는 여러 메시지들, 가령 최근 ‘대만 독립분자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있다”며 “대만뿐만 아니라 한국의 젊은 학자들도 중국 국내 정치는 아예 연구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반간첩법을 확대 시행하는 이유는 안보 때문이다. 하지만 안보를 강조하는 경직된 메시지가 전 세계적으로 지중파(知中派) 지식인들의 입지를 좁히고 반중 성향 지식인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B교수는 “중국의 개정 반간첩법 시행은 미국의 ‘차이나 이니셔티브’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2018년 11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중국의 국가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범정부 차원의 프로젝트다. 미 법무부는 산업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해 산하에 별도 조직까지 만들어 중국의 해킹이나 스파이 활동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중국계 교수들이 간첩으로 몰려 해직·기소됐으나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B교수는 “최근의 라인야후 사태도 마찬가지인데, 전 세계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법 집행이 불투명하고 권력 사용이 자의적이기 때문에 (학자들에게) 더 큰 두려움을 줄 수밖에 없다. 다만 중국만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 흐름 속에서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 대한 공포감이 높아지고 중국 연구자들이 줄어들면서 이런 시각을 전달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미국의 중국 연구자 100명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비판하며 “중국은 적이 아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과 끝없는 군비 경쟁 대신 협력을 추구하자는 내용이었다. B교수는 “중국 당국은 중국에 비판적 해외 학자들을 예의 주시하지만 정작 이들이야말로 악의적 비판을 하지 않고 중국의 입장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람들인데, 갈수록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와 비영리 국제교육연구소의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에서 공부하는 미국인 수가 2018~2019학년도 1만2000명에서 2020~2021학년도 382명으로 줄었다.

네덜란드 레이던대학의 저명한 중국학 연구자 프랑크 피에케는 최근 홍콩계 독립매체 단전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서방 국가의 중국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싱크탱크 보고서는 종종 “중국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슬프게도 요즘 유럽 중국학계에서는 중국어를 아는 것조차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고 전했다. 피에케 교수는 중국공산당의 간부와 인재 양성 시스템 연구의 권위자이다. 그 역시 6년째 중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D교수는 “현재 중국은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다. 공공외교나 소프트파워를 통해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과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이 ‘총체적 안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메시지를 내보내, 개선될 수도 있는 이미지를 다시 갉아먹는다”며 “이는 결코 중국에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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