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이민2세 폭력 어쩌나” 해법 고심

2006.04.07 18:10

요즘 독일 베를린의 뤼틀리 고등학교 정문 앞에는 경찰이 일일이 학생들에게 금속탐지기를 들이대며 검문을 하고 있다. 한달 전 이 학교 교사들이 “칠판을 향해 돌아서기 무서울 정도로 교사들이 학생들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학교를 폐쇄하든지 교내에 경찰을 배치해달라”는 편지를 당국에 보낸 뒤 일어난 변화다.

교사들이 학생 폭력으로부터 신변 보호를 요청하며 독일 내 논란을 가져온 베를린 뤼틀리 고등학교 교정에서 터키·아랍계 학생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 슈피겔 자료

교사들이 학생 폭력으로부터 신변 보호를 요청하며 독일 내 논란을 가져온 베를린 뤼틀리 고등학교 교정에서 터키·아랍계 학생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 슈피겔 자료

많은 독일인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학내 폭력 차원을 넘어 이민자 정책 내지 다문화주의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7일 슈피겔 영문판 보도에 따르면 뤼틀리 고등학교는 터키계 또는 아랍계 이민자 자녀들이 전교생의 83%를 차지하는 실업계 학교다. 실업계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수준인 하우프트슐레(기간중등학교)에 속한다. 교사들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칼이나 가스총 등을 갖고 다니며 교사, 학생들을 위협하고 폭행했다고 한다. 이들은 독일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학교 수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뤼틀리 학교의 사례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비슷한 현상은 독일 전역에 나타난다. 독일 중등학교들은 인문계 학교인 김나지움을 정점으로 레알슐레(실업중등학교), 게잠트슐레(종합중등학교), 하우프트슐레 순으로 내려갈수록 이민자 자녀들이 많아지는 교육 계층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독일 연방통계국에 따르면 김나지움의 경우 이민자 자녀가 전국 평균 4%에 불과하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증가하다 하우프트슐레에 이르면 20%에 육박한다. 하노버 범죄학연구소 크리스티안 파이퍼 소장은 “하우프트슐레는 이제 졸업해도 할 일이 없는 낙오자들만 모이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우파들은 이번 사태를 중도좌파 정부가 추진한 이민 정책의 실패라고 비판했다. 폴커 카우더 기민련 총재는 “지난 7년간 슈뢰더 정부의 정책은 이민자 통합에 1밀리미터의 진전도 가져오지 못했다”며 “잘못된 이데올로기인 다문화주의를 추종했던 맹목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역사학자 아눌프 바링도 쿠르드족의 축제, 레바논인들의 이탈리아 음식점 운영 등을 순진하게 장려한 정책을 비판하며 “다문화주의는 이제 사망했다”고 단언했다. 뤼틀리 학교 문제를 처음 제기한 우파 신문 빌트는 “이제 이민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낼 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뤼틀리 학교의 브리깃 피크 교장은 “진정한 문제는 그 학생들이 아랍, 터키 또는 세르비아 출신이라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진보성향의 주간 슈피겔은 “독일은 이제 제2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칼럼을 게재하며 제대로 된 이민자 통합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겪었던 지난한 사회 통합 과정을 제1의 통일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새로운 독일인’인 이민자들을 독일사회에 본격적으로 통합하는 제2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혈통을 중시하는 순혈주의를 버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독일에서 태어났으면 독일 국적을 부여해 이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들불처럼 일어난 프랑스 교외의 소요사태를 바라보기만 했던 독일인들도 이제는 이민자 2세들의 통합 문제가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닌 일로 다가오고 있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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