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전폭발 20년…여전한 폐허의 땅

2006.04.25 18:09

오늘로부터 20년 전, 1986년 4월26일 토요일 새벽 1시23분. 구소련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시에서 16㎞ 거리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는 비상대책 점검을 시작했다. 자동안전장치가 꺼지고 원자로가 정지됐다. 그러나 엔지니어의 조작미숙으로 원자로의 출력이 폭주하면서 화재가 발생했고 핵연료가 녹아내렸다. 몇 번의 폭발이 있었다. 그리고 원자로를 덮고 있던 뚜껑이 날아가고 방사능 물질이 대기중으로 퍼져나갔다.

체르노빌의 한 놀이공원. 이제 폐허가 되어 참사를 되새기려는 사진가들에게 인기있는 촬영지가 되어버렸다. /출처 슈피겔

체르노빌의 한 놀이공원. 이제 폐허가 되어 참사를 되새기려는 사진가들에게 인기있는 촬영지가 되어버렸다. /출처 슈피겔

세계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되는 체르노빌 참사는 이렇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러나 사고 이후 체르노빌 시민들이 할 수 있는 방어조치는 매일 각설탕에 요오드를 한 방울 떨어뜨려 먹는 것이 전부였다. 소련 정부의 안이한 대처는 사고 피해를 점점 키웠다. 당시 발전소장은 국가 원수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서기장에게도, 주민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사고를 수습하려 했다. 사고발생 3일째 되던 날에야 소련의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에 ‘체르노빌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단 8줄의 기사가 실렸다. 그 사이 낙진과 방사선은 바람을 타고 전 유럽으로 퍼졌다. 유럽에서 7만7천2백20㎡에 달하는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게 됐다.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발전소 화재 진압에 나섰던 소방대원들은 심한 화상을 입고 머리가 빠진 채 고통받으며 죽어갔다. 그날 누출된 방사능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400배에 달했다. 그날 밤에야 ‘원자로 반경 30㎞ 이내 거주민은 잠시 도시를 떠나라’는 소개령을 따라 13만5천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짐을 꾸려 버스를 타고 키예프로 향했다.

사고 이후 소련 정부는 10억달러를 들여 파괴된 원자로를 덮는 보호용 석관을 설치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당시 180t에 달하는 핵연료의 3~4%만이 사고로 손실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방사능 물질이 사고 당시 대기중으로 거의 퍼졌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방사능 전문가 빅토르 포야르코프는 슈피겔지 최신호와의 인터뷰에서 원자력 연료의 50%가 대기 중으로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체르노빌 원전폭발 20년…여전한 폐허의 땅

소개령으로 원전 일대가 거주제한 지역이 되면서 인간이 떠난 자리는 동물이 대신 차지했다. BBC와 세계자연보호연맹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사슴과 엘크, 링스, 여우, 늑대, 곰, 흰꼬리독수리 등 100종의 야생동물이 서식중이다. 유럽 들소와 야생말의 일종인 프셰발스키말 등 40종이 새로이 출현했다. 환경전문가들은 사고 발생 3년 뒤부터 체르노빌의 생태계가 회복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고향을 끝내 버릴 수 없던 사람들도 돌아왔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체르노빌에 돌아온 주민이 현재 4,000여명이나 된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노인과 야생동물만 사는 체르노빌은 20년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세계는 에너지 안보 논리에 빠져 체르노빌의 교훈을 망각하고 있다. 세계가 더 많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443개의 원자로가 가동중이며 사고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에서만 15개가 가동중이다. 피해국 중 하나인 벨로루시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도 원자력 발전은 필수라며 러시아의 도움으로 원전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을 비롯해 전 세계로 원전건설 플랜트를 수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원전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 같아 보인다.

체르노빌 원전폭발 20년…여전한 폐허의 땅

그러나 체르노빌 재앙의 규모를 생각하면 결코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 IAEA와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 러시아 정부가 주축이 된 체르노빌 포럼은 직접 피폭 및 암으로 인한 사망자수를 4,000여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피해규모가 대폭 축소됐다고 주장한다. 그린피스는 지난 18일 방사능 누출로 인한 암 발생건수가 27만건으로 이중 9만3천건이 치명적인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원전의 공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윤민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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