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콕스 희생’ 여파…적대감 몰아치던 템스강엔 침묵만 흘렀다

2016.06.19 22:37 입력 2016.06.20 14:47 수정
런던 | 정동식 통신원

[정동식의 유럽 리포트]‘콕스 희생’ 여파…적대감 몰아치던 템스강엔 침묵만 흘렀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둔 마지막 휴일인 19일. 조 콕스 하원의원의 피격사건으로 중단됐던 찬반 유세전이 이틀간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영국을 쪼개놓을 듯 격렬했던 적대감은 치열한 선상시위가 벌어졌던 템스강 아래로 가라앉은 듯했다. 양 진영은 이날 TV와 신문을 통한 ‘점잖은’ 여론전을 전개했다. 탈퇴 쪽으로 기우는 듯했던 여론이 콕스 의원의 죽음을 계기로 크게 출렁이자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정동식의 유럽 리포트]‘콕스 희생’ 여파…적대감 몰아치던 템스강엔 침묵만 흘렀다

요란한 버스투어가 자취를 감추고 도시 전체에 충격의 침묵이 흐르던 전날 템스강 동쪽 타워브리지 부근에 위치한 와핑 하이스트리트 16번지를 찾았다. 이곳은 영국의 북부지방인 웨스트요크셔 출신 콕스 의원이 살던 곳이다. 그의 집은 특이하게도 템스강 위에 떠 있는 보트다. 콕스 의원의 집이 속한 거주지 공동체 출입문 앞에는 그를 기리기 위한 꽃들이 수북이 쌓였다. 문 곳곳에 그의 평소 모습이 담긴 사진과 추모글이 붙어 있었다. 방명록에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들이 수백개 넘겨 남겨져 있었다.

콕스 의원이 살던 ‘보트 마을’은 현재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채 이웃들이 그의 보트하우스를 관리해주고 있다. 보트도 온통 꽃과 사진, 초, 추모글로 덮여 있었다. 보트 옆에는 콕스 의원이 평소 쓰던 자전거가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이웃은 “그는 30분이나 걸리는 의사당까지 항상 자전거를 이용했다”면서 “바빠도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주고 힘들 때도 늘 미소를 잃지 않아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즐거움을 줬다”고 회고했다.

이 공동체의 주민 의장인 앤 웨인라이트는 “조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좋은 면뿐만이 아니라 나쁜 면까지 보여줬다”며 “그의 죽음은 우리 모두가 잠시 멈춰서 그가 꿈꾸던 행복한 세상을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시민들이 찬반을 떠나 미움과 증오가 아닌 영국의 미래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곳에는 부부끼리 오거나 자녀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두 아이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아서는 “조의 죽음은 증오에는 신념도 인종도 종교도 없으며 그저 유독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 맞서 싸워야 할 것이 뭔지 알려주려고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런던 시민 조지프 뉴먼은 “그의 죽음으로 탈퇴 캠페인이 증오를 바탕으로 너무 과격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투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심의 의회광장에 마련된 추모소는 인파로 북적였다. 콕스 의원이 활동했던 의사당 바로 건너편이어서인지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으며 헌화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우리가 조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제목의 게시판, 사진 주변에 놓인 추모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는 ‘증오’였다. ‘희망·평화·사랑·단결’ 같은 말이 함께 있었다. 콕스의 사진 앞에는 ‘우리는 그녀를 죽인 증오에 맞서 단결해야만 한다’고 쓴 큼지막한 종이가 놓여 있다. 자신을 드레이라고 밝힌 한 미국인은 “나는 미국에서 와 당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당신은 정말 특별한 사람인 것 같다”면서 “당신이 보여준 인류애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적었다.

이곳을 찾은 추모객들은 대부분 콕스 의원에 공감하는 이들로 브렉시트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익명의 한 영국인은 “콕스 의원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용의자에 대해선 아무것도 증명된 것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우리 정부는 유럽으로부터 완전한 주권을 되찾아야 하며 이민도 규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큼 역량이 크지 않다”고 당당히 말했다.

언론에 종사하고 있다는 샘 그레고리는 “나는 보수당 지지자지만 보수당이 당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당 바깥으로 끄집어내 나라를 분열시킨 데 대해 분노한다”면서 “캐머런 총리는 투표 결과 잔류로 결정되어도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